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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뭘까?(2)

그녀의 29세

by 실버반지 Feb 22. 2025

디카가 유행하던 시절 카메라 한 대를 샀다.


그는 사진 찍는 기술은 없었지만 나의 가장 예쁜 모습을 잡아낼 줄 알았다.


웃는 표정에서 더 예쁘게 웃는 얼굴을,

미소 짓는 입가에서 더 상큼한 각도를,

서 있는 자세에서 라인이 더 아름다운 미세한 순간을 포착했다. 

그의 눈에 그것이 반드시 보였다.


성능 좋은 카메라가 아니어도 전문 포토그래퍼의 뛰어난 손기술이 아니어도 그가 찍은 사진 속 나는 하얀 치아를 보이며 활짝 웃고 있었다.

가장 행복한 여자의 얼굴이었다. 


그래서인지 지난 세월 사진을 넘기며 돌이켜보면 당시 찍은 사진 중 인생샷으로 고를만한 사진이 참 다.


그는 사진을 찍고 있으면서도 더 많은 사진을 찍고 싶다고 했다.


나중에는 우동을 먹거나 골목을 걷는 모습 같은 일상 장면들을 동영상으로 남기기 시작했다.


나와 떨어져 있을 때 얼굴을 근접 촬영한 영상을 노트북으로 재생해 본다고 한다.

그럴 때면 내가 바로 옆에서 움직이고 있는 것 같다며 만날 때마다 내 모습을 디카에 다.


주말 내내 나를 찍다 보면 어느새 메모리가 영상으로 꽉 차곤 했다. 그는 사랑하는 여자친구를 가득 담은 디카를 손에 꼭 쥐고 기쁨 충만한 얼굴로 대전으로 내려갔다.




성능 좋은 DSLR이 휴대의 불편함과 조작에 있어 필요로 하는 높은 수준의 전문성으로 저만치 밀려나던 시절이다.


스마트폰이 도래하기 전까지 우리가 사용했던 디카는 연애의 수품이자 산증거물이었다.


우리는 그걸 들고 놀이공원에 갔다.


입구에서 길게 늘어선 줄을 기다리면서도 지루한 줄 몰랐다. 서로를 바라보고 안에 들어가서 재미나게 놀 생각에 마냥 즐거웠다.


놀이공원 직원이 양손을 귀 옆에 대고 반짝반짝 제스처를 하며 무릎을 굽혔다 펴며 외쳤다.

"안녕하세요 고객님~"


우리도 따라 했다.

구매한 티켓을 한 손에 쥐고, 다른 손으로 서로의 손을 잡았다. 서로를 향한 한마음과 기대감으로 함박웃음을 품고 나란히 입장했다.


장내 울려 퍼지는 경쾌한 음악,

화사한 색채로 물든 정원,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놀이기구들,


어딜 가나 반기는 표정,

즐거움에 가득 찬 인파,

이목을 끌어당기는 환상적인 분위기들은 우리 마음을 한껏 더 들뜨게 만들었다.


놀이기구를 타고 구경거리를 즐기고

서로를 바라보고 하늘을 바라봤다.

한순간도 놓치지 않겠다며 행복해하는 내 모습을 연신 카메라에 담았다.


맑고 청명한 하늘 사이로 스며내리는 햇살은 행복에 젖은 두 사람의 오감을 최고치로 끌어올렸다.


드넓은 놀이공원을 걷고 또 걸었다. 힘들지 않았다.

둘이 함께 걸으니 솜사탕 위를 걷는 것처럼 가벼웠다.

목적도 의무감도 없었다.

그저 걷는 것만으로도 세상은 우리 것이었다.


놀이공원 안에서 먹은 유일한 식사는 김치찌개였다.


훗날 그가 쓴 글에서 읽었다.


"그날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김치찌개를 먹었습니다."


손맛으로 익힌 묵은지도 아니다. 시중에 파는 김치가 시어서 내는 시큼함에 화학조미료를 첨가해 단시간 끓인 그저 그런 김치찌개다.

돼지고기 양도 적고 김치 양도 적다.

다른 곳에 갈 수 있는 대안을 선택하지 못하는 놀이공원 경내에서 먹을 법한 식사다. 비싼 가격 대비 다소 부실한 식사 메뉴. 딱 그 정도였다.


그런데도 그는 너무나 맛있고 이렇게 멋진 식사는 처음이라며 환희에 차서 먹었다.


나를 향한 타오르는 그의 마음은 발로 끓여도 맛있다고 할 기세였다.


나와 함께 있는 동안 그의 눈 속에 비친 온 세상은 아름다움 그 자체였다.


별로인 음식을 먹어도 맛있다고 했다.

금세 비가 내릴 정도로 하늘이 흐린 날에도 햇살이 맑고 시원하고 상쾌하다고 했다.

하루 세 시간 잠자고 나를 만나러 와도 피곤하지 않다고 했다.


사랑이 뭘까?


부모가 자식을 향하는 것도 사랑이라고 한다.

키우는 애완견에게도 사랑한다고 말한다.

좋아하는 인형이나 사물에도 사랑의 감정을 불어넣는다.

바람둥이가 여자를 하룻밤 손아귀에 넣으려 할 때도 사랑이라는 용어를 도용한다.


누군가와 함께 있으면 주변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그 사람만 보일 때.

세상 어느 것도 두렵지 않고 온 기운이 그 사람을 향해 흘러간다고 느낄 때.

더 이상 말로 표현하기가 힘든 그 감정을 어떻게든 정의하기 위해 '사랑'이란 단어를 만든 것 아닐까.


그래 그 감정을 사랑이라고 하자.


그 단어가 무엇인지 그는 내게 온 마음을 다해 알려주었다.

아낌없이 말로 표현했고 눈빛과 행동이 증명해 주었다.

수십억 연봉을 받는 인강스타가 과외선생님으로 온다 해도 그보다 잘 설명해 줄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이 남자의 사랑인가 보다.

이제껏 겪어본 적 없는 강렬하면서도 신비한 감정.

그때 처음으로 느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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