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의 나에게 #14
어느 야키니꾸(재일교포들에 의해 일본에 들어가 그 후 독자적인(?) 진화를 보인 고기구이) 집이 있었다.
일본 중부지방 중 북쪽에 위치한 니이가타현.
겨울에는 눈이 많이 오고 쌀의 산지로도 유명하다.
동해와 접해 있어 생선도 맛있는 곳이다.
그 야끼니쿠집은 니이가타 시내, 니이가타 항 근처에 있다.
니이가타 항에는 러시아와 니이가타를 왕복하는 선박이 들어오고, 또 그 근처에는 섬유를 다루는 공장도 많다.
그래서 선박 운행 관련 업무를 하는 분들이나 공장 근무를 하는 분들이 많이 찾아가는 식당이었다.
매일 다니는 사람도 있었다.
그렇다고 고기를 매일 구워 먹는 건 아니었다.
그 식당에는 라면류(일본에서 흔히 먹는 중화소바라 불리는 간장 라면), 볶음면, 카츠동, 카레, 오므라이스 등 식사 메뉴가 다양했다.
메뉴판에 없어도 사장님(무서운 할머니였다) 기분에 따라 말만 하면 만들어주기도 했다(계란말이, 팔보채 등)
가까운 곳은 종업원이 직접 배달도 해주고(그냥 쟁반을 들고 찾아가는 것 같았다) 사장님 가족들도 가끔씩 가게 음식을 먹고 있었다(계산은 사장님이 하셨다).
한 때는 건물 1층, 2층 영업을 했었고 저녁에는 옥상에도 손님을 받았다고 한다.
사장님이 서서히 이동이 힘들어지자 1층에서만 장사를 하게 됐다.
그 후에는 옥상은 1년에 한 번, 사장님 손녀들이 니이가타 불꽃놀이 축제를 볼 때에만 올라갈 수 있었다.
오래 근무하는 종업원이 4명 정도 있었고 사장님 며느리도 거기서 일했다.
그래서 손녀들은 엄마도 할머니도 없이 때로는 할아버지와, 때로는 둘이서만 집에서 시간을 보내야 했다.
바쁘게 일하다가 돌아온 할머니와 엄마에게서는 야키니꾸 냄새가 풍겼다.
아 참, 한가하면 손녀들이 아르바이트 놀이(?)를 하기도 했고 용돈을 주는 손님도 많았다.
내가 그 손녀들 중 한 명이다. 나머지 한 명은 언니다.
아무래도 학교 생활, 가족과의 관계 때문에 그 가게를 자꾸 까먹게 되지만.
잘 생각해 보면 아주아주 다양한 경험을 한 곳이 아닐까 싶다.
가게로 오는 도매업체 분들과의 대화, 시장 사람들의 하소연, 종업원들의 가정사, 얼굴이나 몸에 피어싱을 엄청 많이 한 아르바이트생(그리고 갑자기 사라졌다), 먹튀사건, 다른 야키니꾸집과의 경쟁...
온갖 인간드라마를 봤던 곳이다.
또 엄마의 고생과 나와 언니의 섭섭함이 그 야키니꾸집 냄새에 함께 녹아있는 것 같다.
그 식당은 지금은 없다.
무려 60년 동안이나 영업했지만 할머니께서 80세를 넘으신 시점에서 폐업하셨다(현재 93세, 건강하시다).
타지에 와서 혼자 아기를 보고 있으니 그 북적함이 조금은 그립기도 하고... 그렇다고 다시 돌아가고 싶은 시절은 아니고...
특별히 긍정적이지는 않은 그리움이랄까.
그래도 나를 키워준 곳.
이건 확실하다.
어제의 너에게
지금도 힘을 내고 싶을 때 카츠동을 먹어. 할머니표 카츠동이 훨씬 맛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