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을 타기 위해 순번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말을 타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으나 제주에 왔는데 말 정도는 타봐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근거 없는 당위감이 있었다. 앞에는 초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남녀 아이가 보호용 헬멧과 조끼를 착용하고 서 있었고 라인 밖에서 그들의 부모가 팔짱을 끼고 흐뭇한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아이들은 남매로 보였고 부모는 내 또래이거나 나보다 어려 보였다.드디어 내 차례가 되었다. 역시 내 또래로 보이는 남자분이 한 손으로 말의 고삐를 잡고 다른 한 손으로 나에게 손짓하며 말했다.
어머니, 이쪽으로 오세요.
어머니????
핸드폰 화면에 얼굴을 비춰보며 손등으로 양 볼을 쓰다듬었다.
어디를 봐서 어머니인 거지!!!
작년 일이 생각났다. 허리를 바로 세우는 데 좋대서 몇 개월 발레 학원에 다녔는데 그때 산 발레슈즈의 밑창이 더러워져 세탁소를 방문했었다. 세탁소 할아버지는 내 이름을 받아 적으며 물었다.
자제분이 발레를 하세요?
어머니 소리를 듣고도 남을 나이가 되었지만 좀 억울한 기분이 드는 건 사실이었다. 절대 익숙해지지 않을 말들. 어머니, 아줌마, 사모님, 이모님. 지금과 같이 무방비 상태에서 허를 찔리면 상당히 따끔했다.
내가 탄 말의 이름은 한량으로 몸과 갈기가 하얀 백마였다. 말의 얼굴을 가까이서 본 것은 처음이었는데 말에게도 앞머리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퇴역한 말일 텐데 풀뱅이 있어 상당히 어려 보였다. 경주마가 다섯 살쯤 퇴역하니까, 말의 수명이 25년 이상임을 감안하면 정말 어린애일 수 있었다. 한량이가 이름처럼 느긋하게 걷다 갑자기 멈춰 섰다. 츄르륵 츄르르륵. 어디선가 불길한 소리가 났다. 나를 어머니라 부른 아저씨한테 이게 무슨 소리냐고 물으니 아저씨가 뒤를 쳐다보고는 자신의 말을 세우며 말했다.
한량이 오줌 싸니?
내 얼굴이 굳어지자 아저씨가 한 마디 더 했다.
원래 말들은 길 가다 오줌 싸고 그래요.
내 흰색 트레이닝 복에 오줌이 튀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자, 이제 한 번 뛰어볼게요.
남자의 말을 따라 한량이도 뛰기 시작했다. 엉덩이가 3센티미터가량 공중부양 했다 안장으로 떨어지는데 꼬리뼈가 닿을 때마다 윽윽, 소리가 튀어나왔다. 똥침을 연사로 맡는 것 같아 기분이 언짢았다. 안 그래도 꼬리뼈 통증도 있는데...
다시는 말을 타나 봐라.
동네 주민들로 보이는 일행이 제주 사투리를 쓰며 식당 문을 열고 들어왔다. 자연스럽게 소리가 나는 쪽을 보다 그중 한 할아버지와 눈이 마주쳤다. 오랜 기간 햇볕에 그을려 피부가 거멓고 얼굴의 뼈 윤곽이 도드라질 정도로 마른 것으로 보아 평생 농사꾼으로 살아오신 분 같았다. 아버지가 농사꾼인 나는 그을림 정도만 보아도 그가 몇년차 농사꾼인지, 어느 정도 규모로 농사를 짓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가볍게 목 인사를 하고 핸드폰으로 시선을 옮겼다. 이윽고 주문한 고사리 흑돼지 두루치기가 나왔다. 쌈을 싸서 입을 크게 벌리고 먹는데 또다시 할아버지와 눈이 마주쳤다. 할아버지는 아예 내 쪽으로 비스듬히 앉아 대놓고 나를 힐끔거리고 있었다. 모르는 척하고 먹는데 계속 신경이 쓰였다.
여자 혼자 밥 먹는 거 처음 보시나. 부담스럽네.
공기의 절반을 비웠을 때 슬슬 한계에 다다르고 있었다. 가슴이 답답해지는 압박감을 느끼며 한 숟갈이라도 더 떠먹기 위해서 심호흡을 했다. 혼자 여행하면서 가장 아까운 게 식비였다. 가격이 문제가 아니라 버려지는 음식물 쓰레기 때문이었다. 음식물 낭비를 절반으로 줄이면 전 세계 식량 공급량이 20% 늘어난다.* 0.7인분이 있다면 천 원 정도만 빼줘도 수요가 있지 않을까, 현대인들은 과도하게 먹는단 말이야. 그런 생각을 하며 꾸역꾸역 입 안으로 밀어 넣고 있는데 식당 아주머니가 오더니 탁 소리가 나게 접시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달래 좀 들어요.
감사합니다, 라고 했지만 흑돼지도 남길 판에 달래까지 들어갈 공간이 위에 남아 있지 않았다. 이걸 어떻게 해치우지 난처해하고 있는데 그 할아버지가 멀리서 한 마디 했다.
내가 갖다 주라고 했어. 달래가 아주 맛나더라고.
맛있네요, 라고 했지만 인스턴트에 길들여진 내 혀는 달래의 톡 쏘는 매운맛을 선호하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내가 잘먹는지 확인하기 위해 또다시 힐끔댔다. 가만히 보니 상대를 마주 보는 것이 어색해서 그러는 거 같았다. 평소 말이 없고 무뚝뚝한 분이 틀림없었다. 그 세대 남자들의 공통적인 특징이다. 그런 사람이 내 주위에도 있다. 보고만 있어도 고구마 백 개를 먹은 듯 숨이 턱턱 막히는 우리 아버지.
봄나물이 벌써 나왔나 보네요. 여긴 봄이 따로 없어. 항상 봄이여. 아... 그렇군요. 여행? 네. 어디서? 서울이요. 서울은 춥겠네? 네.
할아버지는 짧게 몇 마디를 건네고 가게를 나가버렸다. 같이 온 일행도 나도 아직 식사 중이었다. 간다는 말도 없이 가버리셔서 잘 가시라고 인사도 하지 못했다. 고춧가루에 버물어진 빨간 달래를 보았다. 말수가 없는 할아버지는 젊은 여자 혼자 밥 먹는 게 안쓰러웠고 뭐라도 챙겨주고 싶어 챙겨준 게 이 달래 한 접시였다. 자기표현이 서툰 자가 낸 용기였다. 흰 밥에 달래를 올려 입 안 한가득 넣었다. 알싸한 향이 올라오며 혀가 얼얼해졌다.
흑돼지는 남겨도 달래는 다 먹어야지.
한 어르신이 낸 용기에 대한 감사 표시였다.
b에게서 전화가 온 건 점심을 먹고 성읍민속마을을 걷고 있을 때였다.
지금 몇 시야. 일하고 있었어. 자기 필요할 때만 연락하고. 내가 필요할 땐 없고.
내 목소리에는 짜증과 원망과 서운함이 섞여 있었다. b는 피곤한 얼굴로 답했다.
바빴잖아. 어제 무슨 일 있었어?
됐어. 어쨌든 잘 해결된 거지? 오래 통화 못해. 그럼 왜 전화했어. 금방 끊을 거면.
언성이 높아졌다. b가 낮게 숨을 내뱉는 게 보였다. 전화를 끊으려던 b가 다시 말을 걸었다.
지금은 어디야? 하늘 되게 맑다.
궁금하긴 한 거야? 내가 매일 어딜 다니는지? 누굴 만나는지?
b가 다시 한숨을 쉬며 답했다.
들어가 봐야 돼.
됐어. 전화하지 마. 또 왜 그래.
b는 여전히 피곤이 가득한 얼굴로 나를 보더니 알았다, 하고는 끊어버렸다. 어젯밤 숙소 이야기는 꺼내지도 못했다. 늘 이런 식이지... b가 그리울 때 나는 언제나 혼자였다. 바람에 날아가지 않게 밧줄로 엮어놓은 초가지붕 너머로 파란 하늘이 시야에 들어왔다. 연일 흐린 날씨가 계속되다 맑게 갠 하늘이 유난히 파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