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나는 삶의 아름다움을 본 것이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자꾸 던져보자. 그러면 그 질문은 쉬운 길이 답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줄 것이다. 그렇게 어떤 종류의 삶을 살아야 하는가라는 식으로는 절대 답을 찾을 수 없다는 생각에 이르게 되었다면 이제 내 차례가 되었다. 나랑 같이 이 지긋지긋한 생각을 같이 해 보자. 오늘은 결판을 내릴 수 있을 지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어떤 종류의 삶을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아니라는 것은 분명해졌다. 어떤 직업을 선택하고 어떤 일들을 하며 살아가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우리는 더 이상 만족할 수 없다. 삶은 내가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선택이라는 것을 하도록 만들어 버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조금 살아봤더니 이제 그걸 알게 되었다. 우리가 도착한 곳에서 그 질문은 이미 바뀌어 버렸다. 이런 모습으로: ‘삶은 나를 통해 무엇을 하고자 하는 것일까?’ 아까 말한 그 지긋지긋한 생각이란 이것이다. 도대체 이 삶이라는 것이 나를 통해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그래서 지긋지긋하다. 그러면서도 나는 전전한다. 아침밥을 먹고 점심밥을 먹고 저녁밥을 먹고 졸리고 잠을 잔다. 어제의 아침이 금세 지나간 오늘 아침이 된다.
이런저런 주워 온 물건 같은 잡다한 생각들을 다 치우고 나서 정말 있는 그대로 생각하고 말해 보자면 그래도 삶은 우리에게 한 가지는 알려 준다. ‘삶이 무엇인지 생각하지도 묻지도 않아도 사실은 별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 살아가는데 있어 삶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은 정말 꼭 필요한 것이 아닌 것 같다. 나는 지금 대충 막 살자는 얘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사실이 그렇기 때문에 싫지만 그렇게 얘기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분명 내가 삶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삶이 나를 선택하는 것일 텐데, 그 삶이 나를 가지고 무엇을 하려는지 알 수도 없고, 실은 몰라도 정말 멀쩡할 정도로 상관이 없다. 이것이 문제이다. 그리고 멀어지고 싶지도 않다.
몰라도 상관이 없는 질문을 나는 도대체 왜 자꾸 던지고 있느냐는 말이다. 음악을 들어도 정리가 안되고 글로 잘 써지지도 않는다. 억지로 내가 내디딘 한 발짝은 이것이다. ‘삶은 자신이 무엇인지,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잘 보여주지 않는다. 그리고 아마도 그럴 필요가 있을 것이다.’ 삶은 자신을 보여주지 않는다. 내가 모르는 그럴 어떤 필요가 있는 것 같다. 이 정도라면 나는 타협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그 잠정적인 해결책에 머물러 있다. 그래도 아직 그 지긋지긋함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또 이것인 것 같다. 나는 왜 아까 그 집착이라는 것을 했던 것일까?
혹시 내가 잘 보이지 않는 삶에 집착하는 것은 아마 나도 모르게 삶이 무엇인지 약간은 보았기 때문이 아닐까? 누군가를 보면서 마음이 끌리듯이 삶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나는 어디에선가 보았기 때문에, 물론 기억은 전혀 나지 않지만, 그 아름다움에 나도 모르게 이끌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얼굴이 보이지 않는 여학생을 매일 버스정류장 반대쪽에서 숨어 기다리는 사춘기 남학생의 마음이 그럴 것이다. 나는 삶의 아름다움을 본 것이다. 내 마음이 아주 자연스럽게 그리로 가고 있는 것이다. 삶이 나를 통해 무엇을 하려는 것일까라는 질문은 답이 아니라, 어쩌면 내가 그 가까이에 가려는 첫사랑 같은 마음인지도 모른다. 다만 첫사랑에 빠진 소년이 익숙하지 않은 자신의 모습에 당황하고 있을 뿐이다.
삶이 나를 이끌고 있고 나는 그 이유를 알고자 한다. 하지만 삶은 그 이유를 잘 보여주지 않는다. 내가 다 알 수 없는 이유가 있나 보다. 그래도 나는 끝내 자신을 보여주지 않을 그 이유로부터 멀어지고 싶지 않다. 이게 나를 지긋지긋하게 했던 것인데, 생각해 보니 이 모든 것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던 것 같다. 설명할 수 없는 뭔가를 좋아하고 있는 내 순수한 마음을 부끄럽게 여기고 숨기고 싶었던 것 같다. 철학자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것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