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doctor flotte Oct 20. 2024

반계리 은행나무 앞에서

- 그들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무가 된 것이다

문막 반계리에 가면 어마어마한 은행나무가 있다. 나무가 유명하다보니 또 주변환경 조성이다 해서 억지로 공원을 만들려고 호들갑을 떨고 있는 것 같은데, 한 번 가볼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나마 아직 보도블럭이 깔리지 않은 얼마 남지 않은 마지막 기회를 누려 보기 바란다. 아직은 마지막 시골풍경이 몇 조각 남아있다. 조금 일찍도 좋고 조금 늦게도 좋다. 빨강 노랑 아웃도어를 입고 검은 선글라스를 낀 사람들이 무리 지어 와서 단체로 사진을 찍는 번잡한 시간을 피하고 싶다면 말이다.


많이 가보진 않았지만 내가 그 나무를 좋아하는 이유는 인터넷 사진들처럼 노랗고 화려한 은행잎 때문이 아니다. 인간은 눈이 아니라 귀로 보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나무 가까이 야트막한 펜스에 바짝 붙어 눈을 감으면 저만큼 커다란 은행나무에서만 들을 수 있는 우아한 바람소리가 들린다. 바람과 수많은 나뭇잎이 만들어내는 그 소리 말이다. 사람들이 없을 때에는 나무 가까이에 있는 벤치에서도 들을 수 있다. 가을은 나무가 소리를 내는 계절이다. 그 소리를 들어보면 나도 모르게 내가 없어져 지금 이 바람이 되어도 좋을 것 같다는 동의를 하게 된다. 800년을 더 산 이 나무에서 들리는 저 소리와 하나가 되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요즘 내 생각, 요즘 내 마음 다 버리고 말이다. 이건 욕심도 아니고 겸손도 아니다. ‘무’에 대한 향수이다.


언젠가이겠지만 반드시 없어져야 한다면 사는 동안 먼저 그렇게 없어져 살 수는 없는 것일까? 사람들 눈에 보이고 싶지 않다는 것이 아니다. ‘내 마음’이라는 불필요한 것을 버리고 싶은 것이다. 반계리 은행나무의 바람소리에 잠시 내 자리를 비워두고 있으면 정말 그게 가능한 것 같다.


어쩌면 우리는 정말 그렇게 살 수도 있을 것 같다. 점점 공사판이 되어가는 반계리까지 오지 않아도 말이다. 그나마 내가 찾은 일들, 물론 내가 약간은 좋아하고 노력을 통해 보다 좋은 결과를 만들어내고 싶은 그런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이 있다면, 내 모든 자리를 그것에 내어주는 삶을 살아보자. 대단한 의욕과 야심이어서는 안 된다. 남들과의 경쟁에서 뒤쳐질까 두려워 허겁지겁 도망치듯 만들어내는 결과물이어서도 안 된다. 나무가 가을바람을 맞아들이고 자기 나뭇잎이 떨어지는 것도 모르면서 같이 노래를 만들어내듯 해야 한다. 또 그렇게 노래를 부르다 보면 날이 추워지고 삐죽삐죽 나뭇가지 몸뚱이만 남아 더는 사람들이 찾아오지 않는다 해도 말이다. 내가 해야 할 생각은 하나이다. '나는 처음부터 저 나무와 하나였으니 없어져도 손해볼 것이 아무것도 없다.'


나는 철학자들이 먼저 그런 삶을 살았으면 한다. 종교적인 순명도 아니고 외떨어진 고독도 아니다. 사람들 사이를 걸어다니고 같이 전철을 타고, 줄지어 키오스크에서 음식을 주문하고 밥을 먹고 뉴스를 보며 정부 욕도 하고 핸드폰으로 시간낭비를 해도 좋다. 단 철학을 할 때에는 제자리에서 아무렇지 않게 가을바람을 맞는 저 나무처럼 유치하고 쓸데없는 덜 자란 자기 생각과 자기 욕심 좀 버렸으면 한다. 나무는 이미 무가 되어 준비하고 있으니 나만 무가 되면 되는 것이다. 그럼 나무와 나는 하나가 된다. 철학에 대한 철학자의 태도는 이래야 한다. 자기 이름을 버리고 남은 평생 필사를 하며 사라져가는 철학책들을 옮기던 고대 필사가들의 삶이 그랬을 것이다. 그들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무가 된 것이다.

이전 01화 행복할 자격이란 게 있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