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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수인 Oct 01. 2024

나 혼자서는 안 죽지.

4장 저녁 식사(2)






LED TV의 만류에도 성준은 안방으로 들어가버리고 말았다.  영정 사진을 들고 나타난 성준을 본 성진은, 방 안을 차분히 살피며 서 있는 성준을 향해, 그건 왜? 했다. 성준은 놔야지. 하고서는 날짜 지난 건강 기능 식품들을 버려 조금 허전해진 화장대 쪽으로 다가갔다. 야, 거긴 좀 아니지 않아? 성진이 훈수를 뒀다. 성준은 그를 잠시 쳐다보다가 그런가? 하고 다른 곳을 찾았다. 이번엔 가족 사진이나 비상 약통 등이 올려져 있는 서랍 위였다. 먼지부터 닦아야겠다며 돌아서는 성준을 성진이 또 말렸다. 야, 넌 저기 어설픈 거 안 보이니? 그러자 성준이 미간을 구겼다.


“아니. 저럴 거면 자기가 놓지?”


“그랴도 성진이 말이 좀 맞는 것두 같긴 혀. 준이가 골라서 둘라는 데는 어딘가 다 좀 안 맞어.”


“그래. 나도 저 이의 말에 동의하는 바이다. 구색이란 것이 없질 않느냐.”


그러고 보니 자유분방한 에쎄 담배가 보기에도 그런 감이 없지 않아 있었다.  


“풍수에도 맞게 둬야 할 것인데, 어찌하실 건지 궁금하구나.”


본윤 에센스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성준이 침대 옆으로 다가가 스텐드 테이블 위에 영정을 갖다댔다. 아니, 너 엄마 매일 그거 보고 울다 잠 들라고 그러는 거니? 성진이 결국 한심하단 투로 핀잔했다.


“아니, 그럼 진짜 어디다가 둬?”


약간 톤이 놓아진 에쎄 담배처럼 성준도 발끈했다. 성진은 잠시 무슨 생각을 하는가 싶더니 성준에게서 영정 사진을 받아들고서 거실로 빠져 나왔다. 여기에 놓자. 성진이 그렇게 말하자 성준이, 이거 버리고? 라고 물어 응답했다.


“우덜을 왜 버려?”


“아니, 언니, 우덜을 지금 버려불게따고요?”


고개를 끄덕인 성진에게 원앙 인형들이 당혹스러움을 드러냈다.


“아니, 뭐 그게 그렇게 대수야? 그 자리가 아버지 영정 사진 자리로 쓰이는 거면 영광스럽게 가는 거지.”


리모컨이 건조하게 붙였다.


“옘병! 쩌, 고약헌 거 보게! 너 지금 니 일 아니라서 나오는대로 싸지르는가 본데, 알야, 너 그러는 거 아니여. 따른 방 애들 허는 것 쫌 함 봐 봐. 걔들은 그래도 누가 간다 허면 눈물 콧물도 안 나오는 것들이 같이 짜고 우는 시늉이라도 허고 그려. 근디 야, 너는 이 상황에서 그런 척도 한 번을 안허냐? 어?”


“아니, 내가 처음부터 그랬잖아. 오늘 여기서 누구라도 죽을 수 있다고!”


“긍께. 울 서방님도 뭐를 한참 몰릉갑네. 저 썩을 것헌티 뭔 기대를 해싸요. 시방 우덜이 허는 말귀도 하나 못 알아 먹는구만. 암만 혀도 그랗지, 산 정이 얼만디.”


“아이, 아이. 다들 그만들 해. 야, 리모컨아. 너 이번엔 네가 좀 심했어. 원앙 쟤들이 서운하겠어.”


TV가 또 중재를 맡았다.


“서운? 야, 너 말 잘했다. 아깐 뭐 너는 두고 나만 바꾸면 되는 거 아니냐더니, 뭐 서운? 나야 말로 지금 이 상황이 아주 서운한데, 너 어떻게 생각하냐?”


“에이—, 그건 그냥 그때 한 장난이지. 왜 그렇게까지 진지하게 굴어.”


“뭐? 장난? 너 내가 전원 버튼 빠지고 나서부터 살살 약 올리면서 채널 돌릴 때마다 괜히 신호 느리게 먹는 척 하는 거 내가 모를 거 같았어? 그러면서 틈만 나면 언제까지 이러고 살아야 하냐고 한숨 푹푹 쉬면서 괜히 내 신경 거슬리게 만들고! 근데 이제 와서 장난인데 왜 이러냐고? 너넨 고장난 나 혼자 죽는 거야 별 문제도 아니었잖아. 근데 오늘처럼 유품 정리하고 거기다가 성진이 언니가 대청소도 겸하니까, 이제 와서 의리니 정이니 편 먹고 날 몰아세우는 거잖아. 지금! 내가 그런 거 하나도 눈치 못 채고 있는 거 같애?”


리모컨이 악을 쓰며 대지르자 다들 말 붙일 엄두를 못 냈다. 그 사이 성진의 손에 의해 원앙 목각 인형이 방바닥으로 내려왔다.


“잉야. 그려. 너 잘 살어라. 나 죽는 것도 똑똑히 봐불고.”


“잉, 우덜 몫까지 다 해가지고 너는 천년 만년 살어부러! 흥!”


무탈 장수를 비는 건지 저주를 하는 건지 알 수 없는 말을 퍼붓고는 입을 꽉 닫아버린 원앙 인형 앞으로 성준이 두 무릎을 꿇었다. 어때? 제상이 넉넉하게 웃고 있는 모습이 거실에 있는 모두를 감쌌다. 자리는 괜찮네. 성진이 조금 뒤로 물러나며 말하자. 성준도 같이 따라왔다.   


“근데 저렇게 두면 좀 허전하지 않나?”


그때 미감에 민감한 커다란 가족 사진 액자가 말했다.


“어. 나도 같은 생각이야. 차라리 쟤들을 좀 아버지 양 옆으로 해서 하나씩 놓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싶어. 뭔가 좌청룡, 우백호 같은 느낌도 들 수 있고.”


가죽 소파가 부드럽게 제안했다. 그 순간 성진이 뒤를 한 번 돌아봤다. 그 곳에는 오래 됐지만, 유일하게 온가족이 찍힌 옛날식 스튜디오 사진 액자가 걸려 있었다. 흠…… 약간, 좀 어색하네. 성준이 혼잣말로 그랬다. 그치? 너도 느끼지? 허전한 건가? 우리 가족 사진처럼 안정감 있게 꽉 차 보이면 좋겠는데, 저걸 좀 배치해볼까? 성진이 원앙 인형 한 쌍을 가리켜 물었다. 그러나 원앙 인형들은 좋아하는 기색이 없었다. 단단히 토라진 게 분명했다.


“아이, 결국 이렇게 될 거였나 보네. 우리는 여기서 단 한 물건도 죽을 운명은 없나 보다. 그렇지? 화분아.”


“네에……, 근데에…… TV님 지금은 좀 가만히 계시는 게 나으실 거 같아용.”


“아, 그런가? 하하.”


 파랑 원앙은 왼쪽, 빨강 원앙은 오른 쪽. 정말로 기사단처럼 제상의 영정 사진을 지키게 생긴 인형들은 기쁜 내색 대신에 큼큼 헛기침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으이구. 아웅다웅. 코미디가 따로 없다. 그냥 처음부터 죽을 이유를 만들어 놓지 않으면 되는 걸.”


돼지토끼 알람시계가 꼴이 우스운지 비웃었다.


“아따, 저것은 왜 오늘에서야 입이 터져불고 그르냐. 영 듣기가 껄적찌근 헌기, 야 너 공준지 공주병 말긴지 허는 아야. 너 그냥 전처럼 청순인지 청승인지 떨믄서 가마안히 앉어 있음 안 돼불 것냐?”


“아니, 저 잡것헌티 먹이 주지 말랑께요. 나 말이 말 같지 않소?”


“아이, 알엇어. 우덜 살어난 기념으루다가 나가 좋은 맴으루 기분 쪼까 풀라고 이빨 좀 턴 겅께. 화는 내지 말라고. 잉?”


“아, 글면 또 뭐, 그라야죠. 여그 다시 올라와서 아부지 양 옆에 딱 붙어 있어봉께, 옛날에 왕헌티 붙은 호위무사 같구 그라요. 히히.”


그들의 희희낙락거리는 소리에 리모컨이 한숨을 쉬었다.


“너넨 진짜 새대가리가 맞긴 맞다. 고새를 못 참고 조동아리 놀리는 것도 그렇고. 왜? 저 알람시계는 조용했음 좋겠고. 너넨 그 부리로 아무렇게나 놀려도 되고, 그런다니?”


“저거슨 꼭 우리가 잘 되믄 저러는 같어. 저 버릇을 으째야 쓰것냐.”


“뭐 저렇게 속갈딱지 부리다가 디져불 것죠잉. 것두 인제 신경쓰덜 말어요.”


“아이, 나는 빨리 그랐으믄 좋겠어서 글제.”


“하! 이젠 대놓고 죽으라고 굿을 하네. 야, 근데 너네 그건 아냐? 나는 죽어도 절대로 혼자서는 안 죽어.”


“아유. 그라셔요? 그름 머 혼자 안 뒤지불믄 다 같이 뒤져 불게요? 예예, 그라믄, 그라세요. 나가 그때꺼졍 모가지 깨끗허게 씻구 기둘릴 랑께.”


“어. 두고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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