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받지 않으려면 비슷하게 좋아해야 한다구.
“소라야, 나 하진이랑 사귀기로 했어.”
한비가 속삭이듯 말했다.
나는 책상 모서리를 손끝으로 문지르며 짧게 대답했다.
“그렇구나.”
한비와 주하진이 사귀게 된 건, 여름방학이 시작되기 조금 전이었다. 한비와는 고등학교에 와서 친해졌다. 볼수록 예쁜 애였다. 말투는 부드럽고, 눈웃음이 자연스러웠다. 사랑을 줄 줄 아는 애였다. 사람을 챙길 때도 거부감이 들지 않았다. 그래서 여자애들도, 남자애들도 한비와 친해지고 싶어 했다. 그런 한비가 주하진을 좋아한다고 했을 때, 나는 기분이 이상했다.
“왜 주하진이야?”
주하진에게 악감정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냥, 너무 평범한 애였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키, 마른 체격, 조용하지만 적당히 웃고, 별로 튀지 않는 애. 받는 것에 익숙해 보이는 애였다. 한비가 좋아할 이유를 찾기 어려웠다.
하지만 한비는 말했다.
“그냥, 좋더라.”
나는 그 말에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연애를 시작한 한비는 더 예뻐졌다.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원래 그런 걸까? 반짝반짝한 눈빛, 싱그러운 웃음. 한비는 주하진과 함께 있을 때, 정말 행복해 보였다. 말로 표현하기 어렵지만, 나는 내심 그게 못마땅했다.
한비처럼 반듯하고 배려심 있는 예쁜 애와 연애를 시작했으니, 주하진도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애정을 쏟을 거라 생각했다. 한비가 하진을 좋아하는 만큼, 그 감정이 하진에게도 스며들기를 바랐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깨달았다. 더 좋아하는 쪽은 언제나 한비였다.
방학이 시작되던 날, 한비는 나에게 주하진과의 데이트 계획을 세세하게 떠들었다. CGV에 가서 권상우가 나오는 ‘동갑내기 과외하기’를 볼 거라고. 캔모아도 가서 토스트를 10번 리필할 거라고. 시내에 가서 아딸 떡볶이집도 가 볼 거라고. 한비는 설레어 보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한비가 귀엽다고 생각했다. 첫 연애니까. 주하진도 한비 같은 애가 자신을 만나주는 걸 신기해하는 눈치였으니까.
방학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한비와 카페베네에서 만났을 때였다. 나는 한비가 시켜준 아이스라떼를 한 모금 마시며 말했다.
“근데, 하진이는 너한테 뭐 해줘?”
한비가 빨대를 휘휘 저으며 눈을 깜빡였다.
“응?”
“너는 늘 뭔가를 해주잖아.”
나는 손가락으로 컵 옆면의 물방울을 닦으며 말했다.
“근데 하진이는?”
한비는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된다는 듯 나를 바라보았다.
“소라야, 나는 내가 주고 싶어서 주는 거야.”
“아니, 주는 건 좋은데, 균형이 맞아야 한다는 거지.”
“하진이는 그냥... 내가 좋아서 해주는 걸 다 받아줘. 좋아해 줘.”
나는 잠시 말을 멈췄다가 다시 말했다.
“한비야, 그래도 이게 당연한 게 아니란 건 알아야 해. 뭐든 균형이 중요하잖아. 연애가 특히 그래. 온도도 속도도 무게도 비슷해야 해. 상처받지 않으려면 비슷하게 좋아해야 한다구.”
한비는 귀엽게 고개를 갸웃하며, 말없이 웃었다.
방학 동안, 나는 그들의 연애를 지켜봤다. 한비가 어떤 연애를 하는지, 주하진이 어떤 태도를 보이는지. 아무도 내게 어떤 역할도 자격도 주지 않았지만, 나는 한비를 위하는 마음으로 주하진의 마음을 파헤치기로 했다.
한비는 나와 연락할 때마다 알아서 주하진과 있었던 이야기를 들려줬다. 주하진이 더운 날씨에도 집 앞으로 일찍 와서 기다려주고 헤어질 때는 집까지 데려다준다며 다정하다고 했다. 나는 주하진이 그런 애였나 생각했다. 그냥 조용한 애라고만 생각했는데, 한비한테는 이런 면도 있었나 보다.
가끔 한비는 나까지 불러서 주하진과 만나기도 했다. 그럴 때 나는 빠지지 않고 따라갔다. 둘이 함께 있는 모습을 보면 나쁘지 않다고 생각될 때도 있었다.
그러나 좋은 생각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데리러 오는 시간이 늦어지고, 한비가 연락하지 않으면, 연락이 오지 않는 날도 있다고 했다. 어느 날 떡볶이집에서 한비는 내게 주하진이 조금 이상한 것 같다고. 예전보다 좀 덜 다정하고 많이 바빠진 것 같다고 말했다. 매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만나 놀았는데, 이제는 일주일에 한두 번 만난다고 서운하다 말한 것이다.
“그냥 원래부터 그런 애 아닐까?”
나는 별일 아니라는 듯 대답했다. 하지만 한비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처음엔 안 그랬어.”
“처음엔 먼저 연락도 하고, 데리러도 오고, 가끔이지만 선물도 줬어...”
나는 한비를 바라봤다. 떡볶이를 입에 넣은 채 한참 씹고 있는 얼굴이, 평소보다 덜 즐거워 보였다.
<계속, 매주 2편씩 올립니다>
(Image.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