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라! 가로수의 아우성
공방은 집에서 20km 정도 떨어져 있어 주말 중에 하루 차를 몰고 간다. 차창 너머 도로 양옆으로 도열해 있는 가로수(街路樹)들이 눈에 들어온다. 중심에 있지 않고 비켜서 있어 늘 무심코 지나치기만 했던 친구들이다.
저렇게 키가 큰 가로수가 목재로 쓰인 적은 없는지 먼저 궁금해졌다. 또 누가 무슨 나무를 심은 것인지도 궁금해졌다. 그리고 언제부터 가로수를 심기 시작했을까 등등 물리적이고 역사에 대한 질문들이 떠오르다 문득 길거리의 거친 삶을 버티고 서있는 가로수의 수고로움을 느낀다.
산이나 계곡, 들에 자라난 나무들은 자연이 선택한 나무들이지만 가로수는 분명 사람이 선택한 나무들이다. 어쩌다 사람에게 끌려 나와 매연 가득하고 시끄러운 기계음이 넘치는 곳에서 마냥 버티게 되었을까? 가로수끼리는 서로 신세한탄을 하고 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까지 해본다.
1970년대 생태학자들이 아프리카 사바나 지역의 가젤이나 기린이 하는 독특한 행동을 발견했다. 나무의 잎을 뜯어먹다가, 바로 옆의 나무가 아니라 한참 떨어진 다른 나무들로 이동해서 잎을 뜯는 것 아닌가. 이유가 무엇일까?
그들이 먹던 아카시아(acacia)는 공격을 받으면 잎에서 타닌 또는 독성 물질을 급격히 늘린다. 또 그 신호를 접수한 이웃 나무들은 동물이 오기 전에 미리 독성물질을 준비하게 되고, 동물들이 계속 먹을 경우 죽거나 위험해질 수 있어 (신호를 접수할 수 없는) 멀리 떨어진 나무로 이동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현재 식물학자들은 나무가 화학물질을 이용한 소통 체계를 갖추고 있을 것으로 추정한다. 생물학자 최재천 교수는 아예 "숲은 고요하지 않다" 라고 한다. 최교수에 따르면 숲의 나무들은 자기들끼리 수다를 떨고 있을 뿐 아니라 인간에게 들리지 않는 "소리 없는 아우성"을 지르고 있을 것이다.
숲의 나무들이 수다를 떨고 있다면, 도로옆으로 끌려 나온 가로수들은 무슨 말을 하고 있을까?
우리나라의 가로수들은 말라비틀어진 나무, 군데군데 썩어가는 나무 등등 유독 고생이 많다. 공해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관리하는 사람들이 나무를 생명체로써가 아닌 도시의 장식품 정도로 보는 인식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길을 걷다 보면 소위 "닭발 가로수"라고 '너무 많이 잘라내 흉측한' 가로수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키가 크고 잎이 넓은 가로수가 상가의 간판을 가리거나 주변 건물에 닿는 경우 쏟아지는 민원들 때문이다.
지방자치단체는 민원이 들어오면 "과도하게/한 번에/크게" 처리하려 한다. 들어온 민원이 실제로 피해가 큰지, 간판을 얼마나 가리는지, 낙엽이 하수도를 얼마나 막는지 등에 대한 추가 조사는 잘 이뤄지지 않는다. 한 번에 많이 잘라야 재민원이 없기 때문에 과도한 가지치기가 벌어진다. 그래서 외관을 다듬는 약한 가지치기(약전정)가 아니라 굵은 가지까지 댕그렁 잘라내는 강전정(Strong Pruning)을 많이 한다.
문제는 강전정한 가로수는 흉측해 거리의 미관을 심하게 해치고, 보는 이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는 것을 넘어 나무의 생명까지 위협한다는 점이다. 굵은 가지는 잘못 자르면 나무 스스로의 회복력으로는 버티지 못해 결국 죽는다. 나무가 말을 할 수 있다면 굉장히 큰 볼륨의 아우성을 들어야 할지 모른다. 혹여 나무들도 대규모 민원을 넣을지 모르겠다.
나무의사 자격을 갖춘 차분하고 조용한 성격의 내 직장동료는 강전정되어 흉측해진 가로수를 볼 때마다 '저게 우리의 수준'이라며 분통을 터트리곤 한다. 말도 못 하고 민원을 넣을 수도 없는 나무 입장에서는 주기적으로 생명을 위협하는 가두 폭행을 당하는 것일 수 있다.
이런 상황을 설정해 만들어진 영화가 있다. 2008년 나이트 샤말란 감독이 연출한 <The Happening>이라는 영화로 어느 날 갑자기 미국 북동부 여러 도시에서 사람들이 이유 없이 자살하는 사건이 속출한다. 처음엔 테러나 생화학 공격을 의심하지만, 진짜 원인은 나무와 식물들이 방출한 독성 화학물질. 소위 '자살바이러스'로 인간의 신경계를 교란시켜 자살 충동을 유발한다. 견디다 못한 식물들이 인간을 생존위험으로 여기고 마지막 방어 수단으로 '자살바이러스'를 방출해 인간에 대한 직접 공격을 감행한다는 내용이다.
나무와 식물이 인간 스스로 자살하도록 유도한다는 설정은 당연히 영화적 "해프닝"이다. 그러나 우리가 '말 못 하는' 나무와 식물의 말을 계속 못 들은 척한다면 자연은 어떤 방식으로든 인간에게 해가 되는 결과를 만들어낼지 모른다.
감독은 이러한 영화적 설정을 하나의 "해프닝"으로 받아들여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제목을 정한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고, 아무리 경고해도 인간은 하나의 "해프닝" 정도로만 여길 것이라는 냉소적 제목 같기도 하다.
언젠가부터 '인간을 지구의 적'으로 설정하는 영화들이 나타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영화 <킹스맨 : 시크릿 에이전트>의 악당 '발렌타인'은 환경문제를 기반으로 한 철학(?)까지 갖고 있다. "우리 몸에 바이러스가 들어오면 몸에서 열이 나. 지금 지구가 뜨거워지는 것은 지구에 인간이라는 바이러스가 있기 때문"이라며 사람의 수를 강제적으로 줄이려는 계획을 세운다. 나름의 이데올로기처럼 보이지만 살릴 자와 죽을 자를 정하는 기준은 매우 세속적이다. 돈과 권력을 가진 자 우선이고 발렌타인은 천문학적 부를 손에 넣으려 한다.
또 다른 영화 <어벤저스> 시리즈의 우주 최강 악당 '타노스'는 우주의 질서를 위해 손가락 튕김을 통해 '우주 생명 절반'을 없애야 한다고 주장하고 실제로 성공한다. 타노스는 더 진지하다. 심지어 부와 명예 등의 사적 이익을 전혀 추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발렌타인보다 진정성까지 느껴진다.
그럴듯한 철학과 결합한 극단적 계획이지만, 21세기가 시작된 이후 나타나는 이러한 영화들은 현대인들의 환경 파괴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물론 아직까지는 "지구를 지키는 선한 무리"들이 결국은 막아내지만 특징적 현상은 발렌타인이나 타노스처럼 "사상가가 된 악당들의 등장"이다.
도시 속으로 끌려들어 와 말없이 버티고 있는 가로수들이 이젠 새롭게 보이기 시작한다.
<해프닝>을 떠올리고, <킹스맨>이 생각나고, <어벤저스>를 소환하는 것은 지나친 오버겠지만 도시 곳곳 힘겨운 가로수들이 하고 싶은 말은 꽤 있겠다 싶다. <가디언스 오브 갤럭시>에 나오는 그루트처럼 "I am Groot"라고 같은 말만 반복할지 모르지만...
우리나라의 가로수는 언제가 시작이었을까
도시의 첫 발생 시기부터 가로수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작은 초기 도시의 경우 멀지 않은 주변이 수목으로 가득했기 때문에 도시 내에 녹지를 조성해야 할 이유가 크지 않다. 즉, 가로수는 도시의 대형화에 따른 결과다. 도시가 대형화되면서 자연과의 거리가 멀어졌고, 삭막해진 도시 속으로 다시 자연을 불러들인 것이 가로수일테다.
우리나라의 가로수(일 수 있는) 역사는 삼국사기, 고구려본기에 기록된 고구려 양원왕 2년(546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봄 2월, 왕도의 배나무가 가지가 서로 붙었다"(春二月, 王都梨樹蓮理)라는 기록이 있다. 그러나 이 문헌으로는 배나무 두 그루의 가지가 붙어 한 몸이 되는 연리(蓮理)가 된 것은 알 수 있지만 길가의 가로수인지는 불확실하다.
이후 고려시대 기록까지 내려오면 명종 27년(1197년) "회오리바람이 갑자기 일어 흥국사 남쪽 길가의 나무가 뿌리째 뽑혔다"(拔興國寺南道傍樹木, 고려사)라는 문장을 만날 수 있다. 그러나 "길가 옆"이라는 단서는 있지만 이 또한 가로수로 특정하기 어렵다.
조선시대에 들어서는 기능적인 표지목으로 기록된 것이 나타난다. 세종 23년 (1441년) "새로 만든 보수척으로 측량하여 매 30리마다...... 수목을 심어 표지 하게 하소서"라는 세종실록 기록을 볼 수 있다. 수목을 심어 거리를 계산할 수 있도록 한 것인데 이후 5리(里)마다 심었다는 오리나무라던가, 20리(里)마다 심었다는 시무나무 이야기로 연결된다.
단종 1년 (1453년)에 좀 더 확실한 가로수 실록 기록이 나온다. "주나라 제도(帝道)에 나무를 세워 도로를 표시했다는 글이 있습니다..... 청컨대, 오는 봄부터 경외의 큰길 좌우에 흙의 알맞는 데에 따라서 소나무(松), 잣나무(栢), 배나무(梨), 밤나무(栗), 회화나무(槐), 버드나무(柳) 등을 심고 그것을 벌목하는 것을 금지하소서"라고 하는 기록에서 조선초기부터는 확실히 가로수가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주나라가 기원전 5세기의 나라임을 감안하면 삼국시대, 고려시대도 가로수의 존재를 충분히 유추할 수 있다. 다만 현존하는 기록으로는 조선초부터 확실하게 나타난다.
고종대에 와서는 수목의 환경과 보건 기능에 주목하고 있다는 점에서 근대적인 의미의 가로수가 기록된다.
고종 32년 (1895년) 내무아문에서 "도로 좌우에 나무를 심어 가꾸는 것을 장려하고 집집마다 울타리 안과 빈 땅에 과일나무나 뽕나무(桑)를 각별히 심도록" 훈시했고 1896년 8월 11일 자 독립신문에는 다음과 같은 기사가 실렸다. "나무 중에 제일 속히 자라고 매우 요긴한 나무는 백양목(白楊木)이니 많이 심고.....(중략).... 위생에 해로운 공기를 이 나무들이 빨아들이고 또 위생에 유조한 공기를 내어 보내는 고로 이런 동리에는 전염병이 없어지고... 백가지로 생각하여도 매우 유조한 일이라"
여기서 백양목은 경기북부 이북에서 자생하는 사시나무(Populus davidiana)를 뜻한다. 다른 나무에 비해 잎자루가 길어 미세한 움직임에도 잎이 크게 떨어 '사시나무 떨듯 한다'는 표현의 그 나무다. 개항 이후에는 사시나무를 대신해 미국산 버드나무인 '미류(美柳)나무'도 많이 들어왔고 이후 다시 '미루나무'라는 이름으로 바뀐다. 사시나무도 버드나무과이므로 근대적 의미의 초기 가로수는 주로 버드나무류가 많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역사적으로 가로수는 권력자의 권위나 도시의 위상을 과시하는 "장식"으로 시작해 점차 거리 표식, 환경 개선과 같은 "기능"적 목적으로 변화되고 이젠 인문학적 스토리와 연결하고 도시인의 감성과 이어지는 "문화"로 진화하고 있다. 문화의 아이콘이 되어가는 가로수들은 이젠 어떤 나무들로 채워지고 있는지 궁금해진다.
(누가 정한 것인지는 미스터리지만) 세계 3대 가로수라 일컫는 나무들이 있다. 마로니에, 양버즘나무, 백합나무로 공통적으로 대기오염에 강한 나무들이다. 그중에 우리나라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나무는 마로니에와 양버즘나무다.
마로니에(marronnier)는 프랑스어 밤(marron)에서 유래된 이름이지만 이 나무에 열리는 밤은 먹을 수 없다. 밤나무에 속하고 싶었으나 실패(?)한 나도밤나무과로 높이가 30m까지 자란다. 대학로의 마로니에 공원과 '칵테일 사랑'이라는 대중가요로 널리 알려져 친숙한 이름이다. '마로니에'하면 매우 세련된 이름으로 들리지만 우리말로 바꾸면 갑자기 시골느낌이 확 풍겨온다. 이름하여 "칠엽수"(七葉樹), 말 그대로 '잎이 일곱 개'라는 매우 직접적이고 '칠'때문인지 컨츄리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혹자는 대학로의 마로니에는 진짜 마로니에가 아니라고 전문가스럽게 이야기한다. 엄밀히는 프랑스 샹젤리제 거리의 마로니에는 '가시칠엽수'고 대학로에 있는 나무는 일본이 원산인 일반 '칠엽수'로 다르긴 하다. 하지만 이 칠엽수나 저 칠엽수나 굳이 구별할 필요가 있을까 싶다. 가시칠엽수는 열매껍질에 가시모양이 나타난다고 하지만 열매를 맺기 전까지는 구별하기도 어렵다. 혹시 "나는 끝까지 구별하고야 말겠어"라고 결심한 사람이 있다면 덕수궁 석조전 뒤로 가보라. 1913년 네덜란드 공사가 고종에게 선물한 가시칠엽수가 두 그루 있다.
양버즘나무에서 '양'은 서양에서 왔다는 뜻이고 '버즘'은 나무껍질이 피부에 생기는 버즘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이 나무 또한 영어 명칭으로 바꾸면 갑자기 세련되게 들린다. 이름하여 "플라타너스"(platanus)다. 어쩌다 우리는 피부병인 버즘을 나무 이름에 붙여버리고 말았을까? 우리나라의 민간 일부와 북한에서 부르는 이름인 '방울나무'가 훨씬 정겹다. 열매가 방울처럼 열리는데 겨울엔 덩그러니 방울만 달려있다.
페르시아 지방이 원산지로 알려져 있으며, 그리스 시대 때부터 유럽에 들여온 것으로 여겨진다. 50m까지 자라는 큰 나무로 우리나라 도시에서도 꽤 자주 보이는 나무다. 플라타너스(platanus)는 그리스어 'platys'(넓다)라는 단어에서 유래했을 정도로, '잎이 넓은 나무'다. 잎이 커서 그늘을 많이 만들어 도시인에게 휴식을 주지만 최근엔 잎이 넓어 간판을 가린다는 상인들의 민원에 많이 시달리고 있다.
칠엽수나 양버즘나무나 모든 키가 큰 나무들로 목재로 많이 쓰일 것처럼 보이지만 대량으로 자주 사용되는 목재는 아니다. 대개 가로수가 대량으로 베어져 사용되는 경우는 총동원령이 떨어지는 전쟁 때다. 세계 1,2차 대전 때 유럽에서는 가로수를 베어 전쟁물자로 많이 사용했다고 전해진다. 믿거나 말거나지만 오래전 트로이 전쟁의 유명한 목마(木馬)가 양버즘나무로 만들어졌다는 설도 있다.
칠엽수는 사람은 먹으면 안 되지만 말은 먹어도 되는 밤이라는 의미로 Horse chestnut(말밤나무)이라는 이름으로, 양버즘나무는 sycamore(시커모어)라는 이름의 목재로 생산된다. 하지만 우리나라 목재상에서는 찾아보기 쉽지 않다. 인터넷 목공카페에서 알음알음 구할 수는 있는 정도다. 혹시 궁금하면 구해봐도 좋다. 두 나무 모두 중간정도의 경도를 가진 무난한 목재다.
이제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가로수는 무엇일까?
서울 가로수 트리맵에 따르면 2025년 현재 서울에는 총 287,714그루의 가로수가 있고, 그중 가장 많은 것은 34.7%나 차지한 은행나무(암나무 포함)다. 또 산림청 자료에 따르면 전국단위에서 가장 많은 가로수는 벚나무다. 2022년 기준 전국 1천98만 그루에 이르는 가로수중 164만 그루를 차지했다.(왕벚나무+벚나무)
서울에서는 은행나무, 전국에서는 벚나무가 가로수로 가장 많다. 지역에 벚나무가 많이 있는 것은 아무래도 벚꽃축제의 영향으로 보인다. 수명도 긴 편이 아니고 공해에 강한 수종이 아님에도 국내에서 가장 많은 가로수가 된 것은 축제의 영향외엔 다른 요인을 생각하기 어렵다.
대략 전국 Top5와 서울 Top5가 겹치는데 벚나무, 은행나무, 이팝나무, 느티나무, 양버즘나무를 꼽을 수 있다. 벚나무의 벚꽃인 '사쿠라'는 일본색이 강해, 우리나라 제주가 원산지인 왕벚나무로 교체하자는 운동이 일어나기도 하지만 국내 가로수 1위를 당당히 차지했다.
안톤의 직장이 있는 여의도의 경우, 섬의 외곽 가로수로는 벚나무, 여의도 안쪽 길은 남북으로는 은행나무와 느티나무가 동서로는 은행나무와 양버즘나무가 번갈아 심어져 있다. 여의도에서 목동으로 가는 노들길 변으로는 양버즘나무가 줄지어 서있고, 노들길 가운데 중앙에는 종종 칠엽수(마로니에)가 나타난다. 가끔 걸어 다니는 당산역에서 선유도역 사이의 길에는 이팝나무가 줄을 이룬다.
계절이 바뀌어가며 나무의 색도 따라 변해가는 모습을 보는 것은 참 즐겁다. 봄을 알리는 벚꽃이 피었다 지면 바로 이어 여름이 시작될 거라며 이팝나무가 꽃을 피운다. 뜨거운 여름의 진녹색이 거리를 채우고 나면 가을부터는 '나무가 몸으로 피는 꽃, 단풍'이 시작된다. 빨강, 노랑, 주홍 등의 향연이 지나면 가로수는 옷을 모두 벗는다. 겨울나무의 '맨 몸을 들여다보는' 또 다른 매력이 있다. 수형이 이쁜 나무는 '누드' 상태에서도 눈길을 끈다. 혹자는 겨울의 누드상태가 진짜 나무의 모습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바쁜 도시인들이 가끔 하늘을 올려다보면 시야의 한쪽 귀퉁이에 걸린 가로수들은 바뀌는 계절을 알린다. 나는 나무의 변화에 따라 걷는 길을 바꾸곤 한다.
먼저 서울 가로수중 단연 1위를 차지한 은행나무를 살펴보자.
가을에 몸으로 노란 꽃을 피우는 나무가 은행나무다. 다른 나무들과 완연히 다른 색을 만들어 존재감을 키운다.
은행나무는 2억 7천만 년 전부터 지금까지 버텨 온 고대 식물로, "살아 있는 화석"이라 불린다. 침엽수도 아니고 활엽수도 아닌 독자 군에서 여러 종류의 은행나무 중에서 모두 멸종하고 유일하게 지금의 은행나무(Ginkgo biloba) 1종만 살아남았다. 꽤나 독한 녀석이다.
"은행(銀杏)"은 "은색 은(銀)"과 "살구 행(杏)"으로 은빛 살구라는 뜻이다. 열매의 색깔은 다르지만 형태가 살구와 비슷해 붙여진 이름이다. 1970~80년대 급격한 산업화와 도시화에 은행나무를 가로수로 대량으로 심었다. 병충해, 공해에 강하고 토양의 조건을 크게 가리지 않으며 1,000년에 가까운 수명도 최적의 조건이다. 공기정화 능력도 월등하다. 게다가 가을철 노란색으로 물들인 은행잎은 도시미관에 한몫 톡톡히 해낸다.
가로수로서 만능일 것 같은 은행나무 가로수도 민원을 피할 수 없는 문제가 있다. 은행나무는 암꽃과 수꽃이 각각 다른 개체에 존재하는 자웅이주(雌雄異株)다. 즉 암나무와 수나무가 따로 있고 암나무에서만 열매가 열리는데 이 열매가 떨어져 뿜어내는 악취가 또 민원의 대상이 된다. 악취의 독성때문에 병충해를 막아내지만 사람들도 참기 어렵다. 그래서 최근에 암나무를 수나무로 교체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가로수들도 모두 목재로 사용이 가능하겠지만 표의 나무 중 목공방에서 비교적 자주 만날 수 있는 목재는 '느티나무'와 '벚나무'다. 벚나무 목재는 '체리목'이라고도 부르는데 이 두 나무는 모두 얀카지수가 1,000을 넘기고 있다. (1,000이 넘으면 꽤나 단단한 나무라고 생각하면 된다)
외국에서 느티나무를 뭐라고 말해야 알아들을까 궁금했던 적이 있다. 외국 목재시장에서 느티나무를 부르는 또 다른 이름, 케야키(けやき)는 일본어 명칭이고, 일반적으로는 젤코바(Zelkova)라고 불러야 외국인들이 알아듣는다. 물론 나무를 아는 외국인들만...
어릴 때는 눈에 띄지 않다가 성목이 되서야 커다란 존재감을 뽐낸다하여 '뒤늦게 티가 난다'해서 '느티'라는 이름의 유래를 갖고 있는 느티나무는 목공에서는 꽤 만능 목재다. 도마재, 목공예, 가구 가리지 않고 만들 수 있고, 건축재로도 사용했던 목재다. 유명한 부석사 무량수전의 '배흘림'기둥이 모두 느티나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무려 700년을 무난히 버텨내고 있다.
'버찌'(영어로는 cherry)라는 열매를 맺어 이름이 벚나무인 체리목도 널리 목공예와 고급가구재로 널리 사용된다. 오일마감 후 색도 우아하게 올라오는 고급 목재다.
위 표에서 보면 이팝나무는 얀카지수와 비중의 조사결과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목재로써 거래되어 본 이력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만능 국내 인터넷 카페에서조차 구할 수 없을 정도다. 빨리 자라는 속성수이기 때문에 다른 물푸레나무과에 비하면 단단할 것 같지는 않지만 접해본 적이 없어 목공인으로서는 많이 궁금하다. 무늬와 색이 어떨지도 궁금하고 단단한 정도가 어떤지도 궁금하다.
이팝나무는 우리나라에서는 흔히 보이는 편이고 주로 한중일에 분포하고 있지만, 중국과 일본에서는 멸종위기 식물로 등록되어 있어 세계적인 희귀종이다. 결국 우리나라에서만 집중적으로 자라고 있는 나무라 봐도 무방하다.
5월에 이팝나무가 가로수로 있는 길은 하얗게 눈이 쌓인 것처럼 치장을 한다. '5월의 크리스마스'를 만들어 내는 나무다. 학명인 '치오난투스 레투사'(Chionanthus retusa)도 '하얀 눈꽃'이라는 뜻이다. 지난 5월 걸어서 퇴근하다 당산역에서 선유도역 사이에 길게 심어진 이팝나무의 꽃들에 감탄한 기억이 있다.
이팝나무 이름의 유래는 두 가지다.
24절기 중 하나인 입하(立夏 : 보통 5월 6일 전후)에 꽃이 핀다고 해서 입하목에서 왔다는 것이 하나고, 또 나무에 얹히듯 수북이 핀 하얀 꽃이 쌀밥, 즉 이밥을 닮았다 하는 것이 두 번째 유래다. 이밥은 조선의 왕족인 ‘이씨(李氏)의 밥’을 뜻하는데, 임금이 백성에게 쌀밥을 내린다는 뜻에서 유래했다. 1380년(우왕 6) 삼도순찰사 이성계가 황산에서 왜구를 토벌하고 귀경하다가 승전을 자축하는 연회를 열었는데 그 장소가 전주 한옥마을 인근의 오목대(梧木臺)다. 의도한지는 모르겠지만 여기에도 이팝나무가 많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가로수로 심을 정도로 흔하지만, 세계적으로는 매우 희귀한 나무라는 점에서 난 가로수 품종으로 이팝나무를 계속 추천하고 싶다.
수형이 곧고 가지가 주로 위를 향해 운전자와 보행자의 시야를 가리지 않는다는 점도 가로수로 적합하다. 게다가 꽃가루 날림이 적고 은행나무 못지않게 병충해와 공해에 강해 도시환경에 잘 버틴다.
너무 찬양일색 같지만 이 만하면 벚나무를 대체하기에도 적합하지 않을까? 벚꽃이 지고 나면 이팝나무의 꽃이 핀다. 어쩌면 벚꽃축제에 이은 이팝축제를 만들기도, 벚꽃축제를 대체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이팝나무와 조팝나무
봄에 거의 같은 시기에 하얀 꽃을 피우면서 '이팝'과 '조팝'으로 이름이 비슷해서 헷갈리는 경우가 많다. 이팝나무는 물푸레나무과의 교목(키 높은 나무)이고 조팝나무는 장미과의 관목(키 작은 나무)이지만 그래도 실제로 보면 이름을 자주를 혼동하게 된다. 이팝은 쌀밥인 '이밥'에서 조팝은 좁쌀밥에서라지만... 처음엔 볼 때마다 큰 게 이팝이었나? 조팝이었나? 싶다.
결국 내가 외운 방식은 이러하다. 비속어라 절대로 권장하고 싶지는 않으니 비밀로 알려드린다. 너무 너~~무 헷갈리면 이렇게라도 외우자
조팝은 작은 녀석이라.... "어이쿠~ 이 작은 녀석은 '×밥'이네"
다시 말하지만 절대 권장하지 않는다.
이팝나무는 실제로 최근에 주목받고 있다.
양버즘나무처럼 잎이 넓어 간판을 가리지도 않고, 메타세쿼이아나 소나무계열처럼 꽃가루가 많아 재채기를 유발하지도 않으며, 벚꽃잎처럼 떨어진 꽃잎의 양이 많지도 않아 청소하기 수월하고 은행나무처럼 병충해와 공해에 강하면서도 은행 열매처럼 악취도 없다.
민원을 줄일 수 있으면서도 우리나라에서만 잘 자라고 꽃이 만발할 때는 벚꽃의 화려함에 버금간다. 세계적으로도 희귀한 나무라니 우리나라에 특화된 가로수로 키워봄직 하지 않을까?
'케이팝 나라에 이팝 가로수'... 뭔가 괜히 어울리는 것 같다. 아재개그 같지만 이팝(e-pop?) 축제에 거리에 울려 퍼지는 케이팝(Kpop)을 상상해 본다. 난 언젠가 이팝나무를 목재로 만날 날을 기다려본다.
프랑스 샹젤리제 거리가 마로니에로 유명하다해서 마로니에를 따라 심고, 일본이 벚꽃이 유명하다 하여 벚나무 가로수를 따라 심거나, 유럽 도시 전역에 플라타너스가 가로수로 있다 하여 따라 하지 말고 우리나라에 맞는 신토불이 가로수를 특징적으로 심어 보는 것도 좋겠다.
은행나무, 느티나무, 이팝나무 그리고 추가한다면 백일홍이라는 빨간 꽃을 오래 피우는 배롱나무로 우리나라 가로수를 키워가 보면 어떨까? 봄철은 하얀 이팝으로, 여름엔 빨간 백일홍으로, 가을철엔 몸으로 꽃을 피우는 노란 은행과 색색의 느티나무로 도시의 가로수를 만들어 보면 어떨까 생각해 본다. 이 나무들은 겨울의 누드도 이쁘다.
오늘은 곡 하나를 소개하고자 한다.
헨델의 오페라 <세르세>(Serse)중 라르고(Largo)라 하기도 하는 "옴브라 마이푸"(Ombra mai fu)라는 곡이다. 제목을 번역하면 "그리운 나무 그늘" 혹은 "나무 그늘 아래서"라고 하는 곡으로 주인공인 세르세는 페르시아 제국의 황제였던 크세르크세스(Xerxes)다. (나는 헨델이 주인공으로 삼을 정도로 강력했던 페르시아 제국과 크세르크세스 황제를 마치 미개한 동양의 나라로 표현했던 영화 300을 무척 싫어한다)
주인공인 세르세는 정혼자가 따로 있음에도 하필 동생과 사랑하는 여자를 보고 첫눈에 반한다. 여러 우여곡절 끝에 다행히 왕인 세르세의 속 끓는 넓은 양보로 제각각 원래의 배필과 결혼한다는 이야기다. "옴브라 마이푸"(Ombra mai fu)는 세르세가 온 세상을 정복하고 손안에 넣었음에도 한 여자의 마음을 얻지 못한 마음을 플라타너스(양버즘나무) 그늘 아래서 나무를 칭송하며 부르는 노래다.
내가 사랑하는 나무 플라타너스여
아름답고 풍성한 나뭇잎이여
가혹한 자연의 운명에도 너는 언제나 빛나지
천둥과 번개, 그리고 폭풍도 너의 평안을 위협하지 못한다네
저 사나운 갈바람마저 너는 능히 이겨내지
여기선 언제나 온화하고 유쾌한 기분이 든다네
이런 나무 그늘은 결코 없으리
..........
한번 꼭 들어보시길... 모르는 사람도 들어보면 '아 이 노래~~' 할 듯
노래는 여성음역대 소프라노를 부르는 남성 가수, 카운터 테너(Counter tenor)가 부른다.
(그런데 뮤직비디오에 나오는 나무는 플라타너스가 아닌 거 같아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