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안하다 May 15. 2023

나쁜 것 속에서도 웃으며 다르게 존재할 수 있다

오늘 건넬 문장: 『해가 지는 곳으로, 최진영 (민음사)』

하루하루 소중한 것을 소중하게.




눈을 뜨는 것도, 감는 것도 무서운 시간이 있었다. 눈앞이 캄캄 앞날을 어찌할 바를 몰라 아득한 시간들.


사랑하는 이의 죽음, 그 후.

살아남은 것도, 살아보겠다고 애쓰는 것도 죄책감이 들었다. 내 삶에 점점 드리우는 불행이라는 그림자. 그림자는 길어지고, 나 자신을 견뎌 낼 자신이 없었다.


웃어야 행복하다고 생각한 내가, 웃으면 안 될 것 같았다. 즐거운 순간에도 슬퍼야 한다생각했다. 웃음을 점차 잃어갔다. 그렇게 텅 빈 채 덩그러니 남겨졌다.


서글펐다. 다 포기하고 싶을 때 나를 다시금 찾을 수 있게 도와준 최진영 작가님 책, 『해가 지는 곳으로』.


불행과 절망에 지친 사람들 틈에서 나는 바로 그런 것을 원하고 있었다. 먹을 수도 입을 수도 없지만 나를 좀 더 나답게 만드는 것. 모두가 한심하다고 혀를 내두르지만 내겐 꼭 필요한 농담과 웃음 같은 것.

과거를 떠올리며 불행해하는 대신, 좋아지길 기대하며 없는 희망을 억지로 만들어 내는 대신 지금을 잘 살아 보려는 마음가짐. 불행이 바라는 건 내가 나를 홀대하는 거야. 내가 나를 하찮게 여기고 망가트리는 거지. 난 절대 이 재앙을 닮아 가진 않을 거야. 재앙이 원하는 대로 살진 않을 거야.

『해가 지는 곳으로, 최진영 (민음사)』


'나를 좀 더 나답게 만드는 농담과 웃음',

'지금을 잘 살아 보려는 마음가짐'

일을 슬픔 속에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생각하며 하루하루 살아가마음들에게 절실히 필요하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주는 책 속의 문장들. 



텅 빈 나의 일상을 좋아하는 것들로 하나씩 다시 채워가기로 마음먹었다. 좋아하는 단어로 이루어진 문장을 구성하고 그 문장이 곧 일상이 될 수 있도록. 예를 들면 이렇게.


가족/할머니/친구/강아지와 함께 산책하면서 하늘/바다 바라본다.  

북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책 읽고 좋은 문장 필사한다.

북토크 참석해서 작가님 이야기를 듣고 작가님과 대화한다.

강아지랑 눈 맞추고/손잡고 잔다.

문장을 적으면서 웃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반은 성공이다.


최근 들어 가장 환하게 웃은 순간은, 좋아하는 마음이, 간절히 원하는 마음이 담긴 문장이 현실이 된 순간이다.

읽는 사람에서 쓰는 사람으로 나아가다.



내가 쓴 글이 실린 책, [글리프]가 최근에 나왔다. 최은영 작가님 『쇼코의 미소』로 읽는 사람이 되었는데, 나를 살린 작가님과 관련된 글로 쓰는 사람이 돼서 더 뜻깊고 어느 때보다 행복하다. 이 순간을 저장해 두었다가 힘든 순간이 찾아오면 꺼내보며 괜찮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농담과 웃음으로 가득 찬 순간들이 따스한 햇살이 되어 나의 일상을 비추자 불행의 그림자가 서서히 아져 가는 것을 느낀다. 그 자리에 남은 온기를 남김없이 모두 저장해 두고자 한다. 어김없이 돌아오는 오늘을 잘 살아가기 위해서.


눈을 뜨면,

반려친구 '뽀야' 뒤태가 나를 반긴다. 이제는 눈을 뜨는 게 무섭지 않다(눈앞이 뽀얗기 때문에). 농담이고, 내가 좋아하는 단어로 이루어진 문장 하나오늘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기에.



책방에 오신 분들에게,  『해가 지는 곳으로』를 건네며 소중한 나를, 사람을, 하루하루를 더 이상 나중으로 미루지 말자고 얘기하고 싶다, 환하게 웃으면서.



이전 03화 어린 시절 기다리던 어른을 어른이 되고 만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