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호성 Jun 26. 2023

지하철은 오늘도 나를 우주로 데려다준다

버스나 지하철 같은 대중교통을 타고 출ㆍ퇴근을 한다. 그럴 수 있는 거리에 일터가 있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복 받은 것 같다.



어렸을 때는 집에 자가용이 없어 어딜 가든 자연스럽게 대중교통을 타고 다녔다. 명절엔 할아버지, 할머니가 계시는 경기도 화성까지 가려면 새벽부터 출발해서 기차 비슷한 전철을 타고 수원역에 내려 시골버스를 30~40분 타고 달리다가 정류장에서부터 또 30분 정도를 걸어가다 보면 할머니가 저만치에서 마중을 나오고 계시는 장면이 아직도 생각난다.   

  

그런데 지금은 추억이라고 하지만 어린아이 둘을 데리고 짐을 양손 잔뜩 들고 대중교통을 타고 가야 하는 아빠, 엄마는 얼마나 고됐을지 부모가 된 입장에서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하긴 사실 나에게도 수원역에서 인파에 밀려 몇 번이나 고아가 될뻔한 상황을 겪어봐서 마냥 좋은 추억만은 아니다.     

그러나 좋고 안 좋은 추억과는 별개로 지하철이 ‘서민의 발’이라는 표현에는 백배 공감하는 바이다. 그리고 지하철의 변화과정을 몸소 체험한 사람으로서 점점 편리해지는 시대의 발전과 높아지는 시민의식이 고마울 따름이다.


생각해 보니 지하철과 관련하여 어릴 때부터 관심이 많았던 것 같다. 초등학교 때 선생님께서 지하철은 곡선구간을 어떻게 돌 수 있는지 생각해 보라며 반 전체 아이들에게 퀴즈 비슷한 질문을 했던 기억도 있고, 중ㆍ고등학교 때도 수업시간에 지하철은 출발할 때만 동력을 쓰고 그다음부터는 관성으로만 가다가 멈출 때 다시 제동을 걸어 정지한다는 사실이라던지, 1호선이 지하에서 지상으로 전환될 때 전원이 차단되는 이유는 전원방식이 직류에서 교류로 바뀌기 때문이라는 사실 등에 상당히 호기심을 가지고 선생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였던 기억이 있다. 아무래도 그때부터 의식의 한쪽에 내가 이동하는데 소중한 수단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지하철은 땅 밑으로 다니며 땅 위로 사람들을 올려다 놓는다. 어떨 때 보면 마치 SF영화의 주인공이 된 것 같은 느낌을 줄 때도 있고, 좀 더 나름의 감성을 발휘하자면 다른 데로 길을 잃고 돌아가거나 시간낭비 하지 않도록 직진으로 쭉쭉 뻗어 가고자 하는 곳에 내려줄 테니 한눈팔지 말고 네가 하고 있는 일에만 집중하라고 이야기해 주는 것 같기도 하다. 이럴 때는 듬직하고 덩치 큰 친구가 나만 믿고 따라오라고 ‘파이팅’을 불어넣어 주는 것 같은 느낌이다.     



별안간 갑자기 시간이 아주 많이 생긴다면, 지하철을 끝에서 끝까지 한번 타보자.

요즘은 노선이 많이 연장돼서 너무 시간이 걸리니 힘들 수도 있겠지만, 내가 가보지 않았던 구간까지 한번 지하철에 몸을 맡겨보는 것도 괜찮은 경험인 것 같다. 더불어 내가 평소에 타지 않았던 시간을 이용해 보는 것도 마찬가지 색다름을 느낄 수 있다. 우리가 몰랐던 공간과 시간에 어떤 다양한 사람들이 지하철을 이용하는지 보는 것은 재밌는 체험이 된다. 계속 고개를 숙인 채로 들여다보고 있는 눈앞의 스마트폰만 잠시 멀리하면 지하철 안은 엄청난 다양한 삶을 사는 사람들이 거쳐가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들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각자의 삶을 짊어지고 나와 같은 통로를 지나, 같은 출구를 통해, 같은 우주로 내보내진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또한 그들은 지하철 안에서 각자의 우주를 만나기 위해 나름 치열한 준비를 했음을 알게 된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지하철에 고마움을 표한다.

이전 13화 지하철 - 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