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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호성 May 23. 2023

20대. 처절했던 시간을 살아내고

살다 보면 잠시 쉬어야만 할 때가 있다. 그런데 쉴수록 고통스러운 경우도 있다.     




대학교 졸업 후 장교로 군 복무를 했다. 어깨에 크게 힘이 들어갈 만한 조건은 아니지만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시기에 나름 나쁘지 않은 경험이라고 생각했고, 군복무 중 이런저런 에피소드들을 겪으며 원래 자기애가 넘치는 성격인 데다가 다양한 기억과 추억들이 더해져 내면의 자신감이 더욱 충만한 상태였다.  

    

그런데.

정확히 어느 날부터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조금씩 허리에서 다리로 이어지는 부분에 통증이 있다는 사실이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처음엔 대수롭지 않았지만 점점 그 불편한 기분이 심해지는 것을 느낀 다음부터는 치료를 받아야겠다고 생각해서 병원을 찾았다. 근처 정형외과와 한의원을 다니며 차도가 있기를 바랐지만 꽤 긴 시간을 소비했으면서도 나아지는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다른 병원을 가야겠다고 판단했고, 크게 걱정하지는 않고 큰 병원을 찾았다.     


늦가을.

겨울이 오고 있었던 어느 날 충격적인 검사 결과를 듣게 되었다. 왼쪽 골반은 이미 괴사가 진행되고 있었고 수술만이 유일한 방법이었다. 수술 후에도 상당한 시간을 재활에 쏟아부어야 하고 이전처럼 활동할 수 있을지는 경과를 지켜보면 판단해야 한다는 의사 선생님의 말씀을 들었다.

떨리지만 최대한 담담하게 부모님께 그대로의 사실을 전달한 뒤 한참 동안 병원에 앉아있었다.

그리고 몇 주 뒤 수술대에 올랐다. 9시간의 긴 수술이었고, 한차례 재수술을 더 마친 다음 그렇게 기나긴 터널로 들어갔다. 나오는 곳이 보이지 않는 터널이었다. 깜깜할뿐더러 곧게 뚫려있는 것 같지도 않았다. 그래서 앞으로 가는 듯했지만 계속 부딪혔다. 그렇게 하루하루 헤매었다.     


매일 아침.

뜨거운 물을 받아 욕조에 들어가 다리를 주물러 댔고, 목발에 의존해서 밖으로 나갔다. 아무 데나 걸터앉아 지나다니는 사람들과 내 어깨에 걸쳐있는 목발을 번갈아가면서 쳐다봤다.

사람들은 참 바쁘게도 다니고 빨리도 다녔다.

기약 없는 다짐은 자꾸만 나 자신을 거짓말쟁이로 만들어버리는 것 같아 그마저도 그만두었다.     


1년 남짓.

혈기왕성한 20대 중반을 깊고 어두운 터널 속에서 1년 가까이 보내고 나니, 그제야 조금씩 출구가 보이기 시작했다. 새벽이 얼마나 긴지 느끼게 해 줬던 불면증도 서서히 사라졌다. 그리고 거울 속 내 모습도 보였다. 정돈이 필요해 보였다. 생각해 보니 그 기간 동안 이발도 못했던 것 같았다. 미용실로 향하는 길에 다시 되돌아갈까도 고민하며 많은 생각이 들고 두려웠지만 순간의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직감했다.

그리고 그런 용기를 낼 수 있음에 눈물이 날 거 같았다.     


그 후.

그렇게 어찌 됐든 긴 터널 속에서 빠져나왔다. 그런데 막상 나오고 나니 저만치 가는 사람들의 뒤통수만 보였다. 이제 막 걷기 시작했는데... 그들은 여전히 바쁘고 빨랐다.

따라잡을 자신이 없었다. 무모한 자신감은 나를 더 이상 채찍질 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아 버렸다. 어쩔 수 없이 천천히 걷는 것에 익숙해져야 했다.

그때부터 말을 아끼고, 쉽게 쓰러지지 않는 삶에 의미를 두려고 노력했다.     




느리지만 위태롭지 않게, 지금 나는 충분히 중심을 잡으며 무게감 있게 살아가려고 애쓰고 있다.

내가 겪은 시련은 분명히 내 인생에 의미 있는 영향을 미쳐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말이다.


나는 시련이 데려다 놓은 지점에서부터 다시 걷고 있다.

그리고 걷고있는 한걸음, 한걸음의 유의미함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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