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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메리 Oct 11. 2023

한자와 한문 그리고 일본어

       

 대학 때 사학과에서 대다수가 기피하는 사료강독(史料講讀) 수업을 제대로 들어보고자 한자, 한문 공부를 했다. 내 또래 대다수가 그렇겠지만, 나는 내 이름 석 자 말고는 아는 한자가 많이 없었다.

  한자문화권 나라들 중에 가장 한자를 모르는 나라가 한국이다. 한글이라는 훌륭한 문자가 있기 때문이다. 세종대왕께서 나랏말이 중국과 달라 문자와 서로 통하지 않는다, 이로 인해 어리석은 백성들이 이르고자 하는 바가 있어도 이르지 못하는 자가 많음을 불쌍히 여겨 만드신 훈민정음(訓民正音)이 한글이다. 그러나 모든 글자를 한글로만 표기하기 시작하면서 한자를 모르는 한국인이 많아졌다. 한국어는 한글이라는 수단으로 표기하지만, 한국어는 고유어, 한자어, 외래어로 구성되고 그중  대다수가 한자어이다.



  한국어(韓國語)는 한글이라는 수단(手段)으로 표기(表記)하지만 한국어(韓國語)의 대다수(大多數)는 한자어(漢字語)이다.


  위 문장만 봐도 문장 내 조사를 제외한 명사의 대다수가 한자를 한글로 표기했다는 걸 알 수 있다.

  사실 대학 때 이렇게 한자에 대해 깊이 생각했던 건 아니었고 막연히 한자를 배우고 싶다, 사료강독 수업을 알아듣기라도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대구에서 한자학원을 찾아다녔지만 외국어학원, 토익학원, 수학학원들뿐이었다. 나는 진주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었는데 대구보다 작은 진주라는 도시에서도 당연히 한자학원이 없을 거라 생각했다. 그렇게  한자학원을 찾지 못한 채로 대학 생활을 하던 어느 날,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버스를 타고 가는데 창밖으로 '한자학원'이라는 간판이 보였다.


  ‘응? 내가 잘못 봤나.’


  다음날 다시 버스 타고 가면서 창가를 유심히 보니 진짜 한자학원이라는 글자가 맞았다.

  버스에서 내려 곧장 그 건물로 들어갔다. 사무실과 교실이 있었고 아저씨 한 분이 사무실에 계셨다. 나중에 조금씩 친해지며 알게 됐는데 선생님은 58년생이셨고 술을 굉장히 좋아하셨다. 어쨌든 한자를 배우고 싶어 찾아왔다는 나를 선생님은 교실로 데려가셨다. 긴 테이블이 2열로 여러 개 놓인 꽤 넓은 교실이었는데 학생은 나 하나였다. 나는 '아싸'라 1대 1로 대화하는 걸 더 좋아하기에 학생이 나뿐이라는 사실에 속으로 신이 났다.

  그분은 기다란 문제집 한 권을 주며 풀어보라고 하셨는데 한자 5급 모의고사 문제집이었다. 내가 거의 풀지 못하자 믿기지 않아 하셨지만, 당황하지 않으시고(?) 6급 문제집을 주셨고, 이조차 풀지 못하자 7급 문제집을 주셨다.


  '오! 드디어 아는 한자들이 나왔다!'


  동녘동, 서녘서, 남녘남, 북녘북...

  심지어 남녘남과 바람풍을 헷갈려하는 나를 보며 이 문제집으로 시작하자고 하셨다. 한자를 배우면서 한문 해석도 같이 배웠다. 한문은 한국어와 어순이 다르고 영어와 어순이 같은데, 배울수록 신기하고 재밌었다.

  그 무렵 사료강독 수업을 듣고 있었는데, 그 교수님은 학점을 엄격하게 주기로 소문난 교수님이었다. 동기들 말에 의하면 학기 끝나고 학점에 이의제기를 하면 오히려 D를 준다고 했다. 그런데 난 대학 시절 학점에 신경을 쓰지 않는,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는 학생이었고 그저 한자에 자신이 생기니 수업이 재밌어졌다.

  학기말이 되어 기말고사를 쳤다. 서술형 두 문제 모두 한문으로 된 문장들로 채워진 시험지였다. 한 문제는 한 학기 내내 수업했던 눈에 익은 사료였고 다른 한 문제는 처음 보는 생소한 글이었다. 나는 첫 문제는 배운 대로 쓰고 두 번째 문제는 영어 문장 해석하듯이 내 멋대로 해석하여 썼다. 모르는 한자는 제쳐두고 아는 한자들을 조합해서 어순을 바꿔 한국어 문장으로 써냈다.

  성적이 나왔는데 A+였다.


  '응? 내가 왜?'


  내가 보기에도 서툰 문장들을 써냈기 때문에 기분이 얼떨떨했다. 아마도 교수님 눈에 열심히 해석하려 한 게 보였기 때문이었으려나?!!

  한자학원 다닌 지 몇 달 만에 차례로 한자 3급, 2급 자격증을 딸 수 있었다. 한자를 공부하면서 당연히 안다고 생각했던 단어의 의미도 더 정확하게 알게 되는 것을 느꼈다. 어느 방송에서 한국어가 꽤 유창한 미국인이 한국어를 공부하면서, 한자도 같이 공부하는 모습이 나왔다. 그 미국인은 한국어 단어의 한자를 같이 익히면 단어 뜻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다는 얘길 하였다. 나는 그걸 보며 공감하기도 하고, 외국인이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것에 조금 놀라기도 했다. ‘한자를 알면 단어 뜻을 좀 더 명확하게 알 수 있게 되어 어휘력이 풍부해지고, 나아가 국가의 수준이 더 높아지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공부를 할수록 한자문화권 나라의 언어를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중 일본어를 배우고 싶어진 건 한국어와 한자가 비슷했기 때문이다. 대학을 졸업할 무렵 비누꽃다발을 들고 한자학원을 찾아가서 선생님께 인사를 드렸다. 일본어를 공부해 보려 한다는 나의 말에 선생님께서는 중국어가 아닌 일본어를 배우느냐며 조금 아쉬워하셨지만 응원해 주셨다.

  나는 일본이라는 나라에 대해 수도가 도쿄라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몰랐었다. 그러나 일본어를 배우다 보니 일본 문화에도 관심이 생겼다. “언어는 문화다. 사람들은 언어를 배우면서 그 나라에 대한 문화를 이해하기 시작한다.”라는 말이 조금은 이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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