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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살면 혼자 밥 먹는 줄 알았지?

by 놀마드놀


혼자 밥 차려 먹는 건, 일이라면 일이다. 가족들 식사에는 꼭 찌개나 국을 끓이시고 새 반찬을 내놓으시는 엄마가, 혼자 식사하실 때는 찬밥에 물 말아 김치만 얹어 끼니 때우듯 드시는 이유를 이제야 깨닫는다. 혼자 뭔가를 차려 먹는 건 참 귀찮고 번거롭다. 그걸 하루 두세 번 해야 한다면 더욱이.







오늘도 내 점심은 라면인 건가요, 만두인 건가이야


흰 천과 바람만 있으면 어디든 갈 수 있는 지후선배의 요트처럼, 자취생은 김치와 달걀만 있으면 어느 정도까지는 버틸 수 있다. 고추장과 참기름이 도와준다면 존버 기간이 늘어난다. 김치가 없을 땐, 김치만두를 꺼낸다. 고기와 밀가루, 채소가 다 있어서, 단백질과 탄수화물, 소량의 식이섬유를 모두 섭취할 수 있고 매콤짭짤해서 밥과 잘 어울린다. 올드보이가 어떻게 만두만 먹고 15년을 살 수 있었는지도 이제야 깨닫는다.


이사하고 처음 한 달 동안은 하루 1끼 이상을 라면으로 해결했다. 간편하다는 이유로 먹은 육개장 컵라면을 시작으로 봉지라면을 사서, 끓이고, 밥을 말고, 시원하게 얼음을 띄우고, 콩나물이나 파를 넣었다가, 생으로 부숴 수프를 찍어 과자처럼 먹기도 하며 참 다양하게 즐겼다. 일요일마다 전 국민을 요리사로 만들었다가, 사나이를 울리기도 하고, 오른손과 왼손 모두 면을 비비게 하는 요물단지인 라면은, 커피믹스급의 대단한 발명품이다. 물가는 항상 빨간 맛 우상향 곡선이라, 마트에서 5개들이 라면을 3천 원 이하로 세일하면 꼭 사게 된다. 얼마 전엔 삼양라면과 배홍동을 건졌다. 광고는 아니지만, 배홍동은 생으로 큼직하게 부숴서 동봉된 비빔 소스를 뿌려 먹으면 바삭하니 참 별미다.




일용할 식량은 사람을 타고 내게로


얼마 전에 본가에서 구호물자가 도착했다. 바로 엄마의 반찬 택배. 엄마 반찬으로 텅장처럼 거덜 났던 냉장고를 배불렸다. 나물과 김치가 가장 반갑다. 나물을 만들려고 풀 한 팩을 사서 삶으면 한주먹이 되니, 자취생에게 중요한 가성비가 매우 떨어진다. 김치는 만들 엄두조차 안 난다. 내가 만들기 힘든 음식과 함께, 찬바람 불 때 간식으로 갈비처럼 뜯을 옥수수, 밤과 말린 감이 콕콕 박힌 찰떡, 찌개 끓일 때 넣을 파와 호박까지 보내주셔서 바로 냉동해 뒀다. 호랑이마저도 떡을 달라고 하는 탄수화물의 민족이자, 쑥과 마늘로 사람이 된 웅녀의 후손답게 탄수화물과 채소를 잔뜩 쟁여두니, 호환 마마도 두렵지가 않다.


며칠 전엔 아파트에서 나눔 행사라며 직접 담근 고추장을 입주민들에게 무료로 나눠줬다. 필요하면 가져가라는 방송을 듣고도 내 몫이 있을까 싶어서 가만히 있다가, 방송이 두 번째 나왔을 때 받아왔다. 이때 생긴 고추장으로 떡볶이를 만들기로 했다. 가래떡이 없어서 레시피를 찾아보니, 라이스페이퍼를 물에 적셔 돌돌 말면 떡 식감도 나고 살도 덜 찐다고 한다. 세상의 수많은 맛잘알 쩝쩝 박사들이 고매한 지적 수준을 뽐내며 전수해 준 비법으로 색다른 떡볶이를 완성했다. 배우신 분들이 마음까지 넉넉하니 참 살만한 세상이다.




혼자 살면 혼자 밥 먹는 줄 알았지?


냄비 하나로 조리되는 음식을 자주 먹어서 꺼낼 일이 없었던 세 칸짜리 반찬 그릇이 세상 구경을 했다. 엄마의 반찬과 나눔 받은 고추장으로 만든 떡볶이까지 더해 푸짐한 한 상이 차려졌다. 혼밥 하려고 앉았는데 혼자가 아닌듯한 느낌적인 느낌이 드는 건, 수많은 사람이 이 밥상을 함께 만들었기 때문이다. 라면조차도 누군가의 수고로 만들어져 내게 왔다. 내 밥상엔 늘 사람이 함께 했다. 나는 항상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었다. 경이로운 일이다. 더 놀라운 건 만든 사람은 많은데, 먹는 입은 하나라는 거다. 오예, 다 내 거!


밥상이라는 큰 상을 받았으니, 한술 뜨며 이 밥상을 차려주신 모든 분께 감사의 말씀을 전해본다. 이 상을 받기까지 항상 저와 함께 해준 우린 가족들, 정말 사랑하고요. 농부님들, 식품과 물류 관련 종사자분들, 관계자분들 정말 고생 많으셨어요. 저는 그분들이 잘 차려놓은 밥상에 숟가락 하나 얹었을 뿐이에요. 이 영광을 그분들께 바치며, 맛있게 잘 먹겠습니다. 정말 아름다운 밥이에요!








날씨가 너무 좋습니다! 잠깐이겠지만요 ㅎ

날씨가 좋아서 힐링되는 기분 오랜만이네요 ㅎ

우리 모두 스쳐가는 가을인 '갈'을 즐겨보아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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