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하는 희서에게 선물했던 스카알렛 레드의 주홍색 실크 슬립과 진주의 연한 핑크가 은은한 흰색 실크 슬립 두 개를 예복과 파티복으로 업사이클링했다.
흰색의 슬립 위에는 눈송이 같은 안개꽃을 가슴 위쪽에 잔잔하게 달아 새롭고 순수한 시작이라는 의미를 넣었다. 허리 라인과 아래쪽 단은 같은 천으로 작은 프릴을 만들어 나선형으로 몸을 휘감아 덧대어 우아함을 갖추고 무릎 아래로는 왼쪽과 오른쪽의 길이를 달리 해 예복을 완성했다. 안개꽃 화관은 결혼하는 신부라는 것을 말해 주었다. 준하 또한 흰색의 턱시도 왼쪽 앞 주머니에 안개꽃 다발을 작게 만들어 꽂았다.
시간에 맞춰 온라인으로 둘의 결혼식이 공개되었다. 배경 화면으로 희서와 준하가 처음 만났던 독서 토론 동아리에서 토론할 때 찍었던 사진을 걸었다. 동아리 회장이었던 준하가 선택한 사진에는 희서의 대학교 3학년 때 모습이 들어 있었다. 마치 소년처럼 짧은 머리를 하고서 뭔가 발표하는 준하를 바라보는 희서였다.
읽으며 같이 토론했던 책들 중에서 사랑에 관한 철학, 플라톤의 향연과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에서 서로 좋아하는 문장들을 뽑았다. 토론하듯이 서로 주고받으며 희서와 준하의 인연이 시작된 곳부터 온라인 스트리밍이 본격적으로 진행되었다.
두 사람의 가족들과 친구들 그리고 우연히 들어오게 된 모르는 사람들까지도 축하의 글을 올려 주었고 간간이 그 메시지들을 읽으며 기뻐하고 감사하며 둘 만의 방식으로 부부가 되고 있었다.
설레는 첫 만남의 기억과 온라인으로 주고받는 기쁨의 메시지들로 흥분의 분위기가 익어갈 때쯤 준하와 희서는 칼릴 지브란의 '결혼에 대하여'라는 사랑에 관한 시를 다정하게 낭독했다. 서로 마주 보며 준하가 한국어로 읽으면 희서가 영어로 그 부분을 한번 더 읽으면서 결혼 서약을 대신했다.
칼릴 지브란의 '결혼에 대하여'
On marriage by Khalil Gibran
함께 있되 거리를 두라.
Let there be spaces in your togetherness.
그래서 하늘 바람이 너희 사이에서 춤추게 하라.
And let the winds of the heavens dance between you.
서로 사랑하라, 그러나 사랑으로 구속하지는 말라.
Love one another, but make not a bond of love.
그보다 너의 혼과 혼의 두 언덕 사이에 출렁이는 바다를 놓아두라.
Let it rather be a moving sea between the shores of your souls.
서로의 잔을 채워 주되 한쪽의 잔만을 마시지 말라.
Fill each other’s cup, but drink not from one cup.
서로의 빵을 주되 한쪽의 빵만을 먹지 말라.
Give one another of your bread, but eat not from the same loaf.
함께 노래하고 춤추며 즐거워하되 서로는 혼자 있게 하라.
Sing and dance together and be joyous, but let each one of you be alone.
마치 현악기의 줄들이 하나의 음악을 울릴지라도 줄은 서로 혼자이듯이.
Even as the strings of a lute are alone though they quiver with the same music.
서로 가슴을 주라. 그러나 서로의 가슴속에 묶어 두지는 말라.
Give your hearts, but not into each other’s keeping.
오직 큰 생명의 손길만이 너희의 가슴을 간직할 수 있다.
For only the hand of life can contain your hearts.
함께 서있으라. 그러나 너무 가까이 서 있지는 말라.
And stand together, yet not too near together.
사원의 기둥들도 서로 떨어져 있고
For the pillars of the temple stand apart
참나무와 삼나무는 서로의 그늘 속에선 자랄 수 없다.
And the oak tree and the cypress grow not in each other’s shadow.
한 시간으로 예정한 예식이 후반으로 들어서자 희서는 준하가 만들어준 주홍색 슬립에 다양한 색깔의 실크 장미를 입체적으로 달아 만든 업사이클링 파티복으로 갈아입었다.
머리에는 쓰고 있던 안개꽃 화관 대신 스카알렛 레드의 주홍색 머리띠를 50년대 복고풍 스타일로 이마를 가로질러 둘렀다. 준하 또한 준하가 만든 검은색의 턱시도를 입었다. 아름다운 음악에 맞춰 둘의 댄스가 시작되었다.
희서와 준하가 가장 많은 시간을 들여 배우고 연습했던 스윙 댄스와 왈츠, 그리고 마지막으로 마룬 5의 Moves like jagger에 맞춰 춤을 추며 댄스파티를 마쳤다.
결혼이라는 형식을 취했지만 희서와 준하는 축의금을 따로 받지 않기로 했다. 그 대신 친구인 동후가 다니는 성당에서 운영하는 보육원에 자립 준비를 해야 하는 고등학생 아이들을 돕기 위한 기부금을 받기로 했다. 기부금의 액수와 이름을 밝힐 건지는 기부하는 사람들에게 맡겼다.
신혼여행은 자동차로 2주간 전국을 누비는 것이었다. 쉬고 싶은 곳에서 마음껏 쉬며 시골길을 걷고 바다를 보러 가고 때로는 뒹굴거리며 음악을 듣거나 책을 읽으며 둘만의 가장 여유 있고 행복한 휴가를 보냈다.
희서는 모든 것들이 원하는 대로 되는 그 기쁨에 가슴이 벅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