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랑사 09화

I – 우산 한 쌍

“비가 오려나 봐.”

by 최동준


오늘도 급하게 구두를 구겨 신었어. 자기는 한번 화장실에 들어가면 한 시간은 기본인 사람, 설거지할 때마다 그릇을 깨뜨리는 사람, 쌓인 빨래를 귀찮아하는 사람, 코 수술한 것을 자랑스러워하는 사람이잖아. 그런 자기가 어제처럼 짝짝이 구두로 출근할까 봐, 나는 작은 신발장 앞에서 자기를 유심히 살펴봤어. 허둥지둥 현관을 나서는 모습이 마치 장화 신은 뽀얀 오리 같은 거 있지. 나는 그런 자기를 귀여워하는 거 있지.


편지를 자주 써주지 못해 미안해. 그치만 사랑하는 만큼 적으려면 그만한 편지지도 못 사는 걸 알지? 나는 자기를 오래 사랑하고 싶어서 그래. 아직 못 부친 편지들이 많으니까, 꼭 오래오래 나랑 놀아줘야 해. 밤늦게까지 말이야.


어떻게 자기는 비가 올 걸 알고 있으면서 우산을 두고 갔어? 게다가 비가 올 거 같다고 자기가 말했는데 말이야. 근데 사실 나도 현관을 나설 때야 생각나버렸어. 근데 ‘자기는 우산 챙겼나?’하고서는, 얼마 안 가 허둥지둥하던 자기 모습에 웃음이 나더라. 지금도 나는 자꾸 웃음이 나. 지하철역 앞에서 우산을 두 개나 들고 서 있는 나를 보고 달려올 자기가 생각나서. 항상 챙겨줘서 고맙다고 키스해 줄 자기가 생각나서.

keyword
이전 08화H - 거기선 그러길 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