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가난 따위를 이유로….
“안개꽃 꽃다발 한 묶음 부탁합니다.”
태수는 얇은 지갑에서 꾸깃꾸깃한 지폐를 한 장 꺼내 내밀었다. 사거리 위치한 작은 꽃집에는 좁은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꽃들이 한가득이었다. 꽃집의 주인이 꽃다발을 만드는 동안 태수의 시선이 장미에 머물렀다. 아른거리며 퍼지는 붉은 향기가 매혹적으로 느껴졌다. 태수는 장미 꽃잎을 조심스레 매만졌다. 보드라운 것이 꼭 그녀의 입술만 같다. 태수는 장미꽃을 한 송이 들어올렸다. 오늘같이 특별한 날에는, 한 송이 정도 선물하는 게 어떨까… 태수는 지갑을 매만졌다. 그럼 데이트 후 집에 돌아갈 차비가 부족해지는데. 태수는 낡은 운동화를 내려다보았다. 한참을 머뭇거리던 그는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그래, 조금 힘이 들더라도 오늘 같이 특별한 날에는.
“저기, 이 장미꽃 한 송이도 꽃다발에 더해주세요.”
태수는 안개꽃 꽃다발에 더해진 탐스런 붉은 장미를 보고 흡족하게 웃었다. 그녀가 좋아해 주었으면, 기쁘게 웃어주었으면.
***
도심에 위치한 멋스러운 갤러리, 유리창에는 미희의 이름이 적힌 포스터가 여러 장 붙어있었다. 공모전에서 좋은 성적을 낸 그녀의 첫 번째 단독 전시회였다. 갤러리에는 작품들이 벽면마다 큼지막하게 걸려있었다. 미희는 머리를 짧게 자르고, 몸의 곡선이 잘 드러나는 아이보리 색 정장을 갖춰입었다. 색이 옅지만 화장도 했고, 굽이 높은 구두도 신었다. 공모전 수상자의 첫 사진전이라, 규모가 큰 언론사에서 취재도 나왔고 어설프게나마 인터뷰도 할 수 있었다. 홍보가 되었던 걸까. 관람객은 극히 적었으나, 전시된 작품은 삼일째 되는 날 모두 판매되었다. 기뻐하시는 아버지, 눈가가 촉촉히 젖으신 어머니, 기뻐하며 소리치는 여동생들. 그 많은 사람들이 건낸 축하의 말 틈에서, 미희는 그리운 얼굴을 계속해서 찾았다.
넷째 날, 전시 마감이 한 시간 가량 남았을, 저녁 일곱시 즈음이었을 것이다. 텅 빈 전시회장에 허름한 사내가 들어섰다. 장미꽃이 한 송이 섞인 안개꽃 꽃다발을 보고, 미희는 눈을 크게 떴다. 전시회 첫 날부터 기다리던 사람, 태수였다. 그는 평소보다 더 단정한 차림으로 말쑥한 모습이었다. 머리는 뒤로 넘겨 멋을 부렸고 면도도 깨끗히 한 상태였다. 미희는 반가운 마음에 태수에게 다가갔는데, 전시장을 지키는 직원은 대뜸 그를 막아섰다. 감출 수 없는 가난을 눈 여겨 본 까닭이었다. 드레스코드에 맞지 않는, 과하게 캐쥬얼한 옷을 입었다는 이유로, 입구에서 제지를 당한 태수가 당황해 어쩔 줄 몰라하자, 미희는 얼른 직원을 옆으로 밀어냈다. 유독 낡아보이는 태수의 운동화에 시선이 갔지만, 미희는 알아차리지 못한 척 했다. 직원은 의아한 표정이 되었다.
“작가님, 이 분은 옷 차림이 전시회장 입장에 적합하지 않습….”
“그래도 되는 분이세요.”
“네?”
“당신은 전시회장에 상주하는 직원이면서, 작품도 둘러보지 않습니까?”
미희의 말에 태수는 입구에 서서, 전시회장의 작품을 살폈다. 자신의 사진들이 큼지막한 사이즈로 인화되어 벽마다 걸려있었다. 직원은 그제서야 태수가 작품 속의 청년임을 알아차리고, 쩔쩔맸다. 옷차림이 워낙 편안해 보여, 관람 매너에 어긋난다고 판단했다는 거였다. 직원은 죄송하다며 머리를 몇 번씩 숙이고서, 도로 데스크로 향했다.
“나름대로 차려입고 온 거였는데, 부끄럽게 해서 미안합니다.”
“사과하지 말아요, 전시회에 드레스 코드가 어딨어. 그저 편하게 오면 되지. 마음 쓸 것 없어요, 발가벗고 온 것도 아닌데….”
미희는 그에게 건내받은 꽃다발을 품에 껴안고 미소지었다.
“와줘서 고마울 뿐이에요.”
태수가 머쓱한 듯 입구에서 걸음을 떼지 못하자, 미희는 그의 손을 부드럽게 잡고 전시장으로 이끌었다. 손을 마주잡자, 놀라 얼었던 마음이 조금 녹았는지, 태수는 미희를 따라 미소지었다. 그는 길게 숨을 내쉬고, 작품들로 눈을 돌렸다. 마지막 회차의 도슨트를 대신 해, 미희는 작품을 하나씩 설명해 주었다.
첫번째 사진은 ‘그대 발 아래 피어오르는 색.’이었다. 층고가 높은 전시회장의 벽면, 커다란 폭포 사진이 인쇄되어 있었다. 그리고 하단에는, 물에 발을 담그고 있는 자신이 자리하고 있었다. 폭포에서 튀어오르는 물방울로 커다란 무지개가 형성되어 있었는데, 사진의 압도적인 크기와 무지개의 아름다운 색상이 보는 이로 하여금 전율을 느끼게 했다.
두번째 전시작품은 ‘숲을 이루는 마음’ 과 ‘당신을 이루는 숲.’이었다. 눈을 감은 채 팔을 벌리고서 나무들 틈에 서 있는 사진은 고요하고 적막함이 느껴지는 동시에 강인한 힘이 서려있었다. 두 다리는 마치 땅을 움켜쥔 뿌리같았고, 굳은 표정은 결의마저 서려있었다. 그에 반해, 나무에 등을 대고서 앉아 하늘을 우러르는 사진은 한결 편안했다. 얼굴이 클로즈업 되어있는 작은 사진과 그보다 조금 더 큰 흉상까지 나온 사진. 마지막으로 한 쪽 벽면을 꽉 채운 전신 사진은 나란히 놓여 있어 각각의 사진들은 더욱 감각적으로 보였다. 전신 사진의 경우 숲의 전경이 모두 보여, 숲에 온 듯 마음이 후련하고 또 편안해 졌다.
“이 사진은….”
승강장에서의 뒷모습이 찍힌 사진을 발견한 태수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흑백으로 처리된 주변 인물들과 달리, 태수만 컬러로 연출되어 있었고, 네임택에는 ‘연 緣’이라 적혀있었다. 인연이라는 의미의 작품 앞에서 태수는 오랫동안 머물렀다.
“내 뒷모습을 언제 찍은 건지 모르겠지만, 조금… 슬픈 느낌이 드는 군요.”
왜인지, 슬픈 마음이 든다는 말에 미희는 다음 작품을 보여주길 꺼려했다. 자신이 사진을 찍을 당시의 감정을 함께 느껴주는 것은 감사한 일이었으나, 그의 기분을 가라앉게 만들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여기까지 왔으니 전부 보고 싶다는 태수의 설득에 미희는 결국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작품인 ‘너의 부름’을 보여주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검은 바다에,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죽음을 향해 거침없이 전진하는 태수의 뒷모습이 흑백사진으로 인화되어 있었다. ‘너의 부름’은, 공모전 수상작품이기도 했다.
“너의 부름이라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요. 삶의 절망 혹은 죽음의 부름?”
“아뇨, 태수씨가 자신의 삶 속으로 나를 부른다는 의미예요.”
태수는 입을 다물었다. 그는 마주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미희는 전시회장 더 안 쪽으로 태수를 이끌었다. 그렇게 약수를 마시며 웃고 있는 사진과 약수 물을 장난스럽게 뿌리는 사진을 차례로 보여주었다. 두 작품은 하나로 연결 되어 있었기에, 시선에 따라 사진 속 자신이 움직이는 느낌이 들었다. 작품의 제목은 ‘우리의 물’로 설명란에는 우리에게 진정 필요한 물은, 괴로운 눈물을 닮은 바다의 짠 물이 아닌 삶의 갈증을 해소 할 수 있는 산의 약수, 감로수라는 구절이 적혀 있었다. 그렇게 우리가 마주해야 할 인생의 선택지와 일반적인 정서는 서러운 죽음이 아닌 온전히 삶의 형태를 띈 기쁨이어야 한다는 작가의 말도. 벽면에 걸린 작품의 옆으로는 맑은 물이 흐르는 작은 분수대가 놓여있었다. 필터로 정수된 물임이 표시되어 있고, 누구라도 마실 수 있도록 조롱박으로 된 바가지가 놓여있었다. 태수는 조롱박을 들어 물을 한모금 마셨다. 얼음같은 물을 마시자, 명치 부근에 청량감이 느껴졌다. 그는 작게 중얼거렸다.
“우리가 마주해야 할 인생의 선택지 그리고 일반적인 정서는….”
“네, 서러운 죽음이 아닌 온전히 삶의 형태를 띈 기쁨이어야 해요, 태수씨.”
미희는 그와 눈을 마주했다. 두번 다시 생을 포기하고 바다에 뛰어들지 말라고, 서러운 짠물에 잠기지 말고, 맑은 정수로 목을 축이라고, 그녀는 작품으로 말을 건내는 듯 했다. 태수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의 말처럼 두 번 다시는, 아무리 외롭고 또 괴롭더라도 나, 두 번 다시는….
미희는 전시회의 작품들이 담겨있는 사진집을 태수에게 건냈다. 표지에는 미희와 태수가 함께 자전거를 타는 사진이 첨부되어 었었다. 웃는 모습이 얼마나 해맑던지, 웃는 소리가 들릴 것 같은 사진. 태수는 사진집 한 권을 받아들고 얼굴이 조금 어두워졌다. 장미꽃을 사느라 남은 돈이 한 푼도 없었던 것이다. 미희는 그가 말을 잇지 못하고 머뭇거리자, 먼저 입을 뗐다.
“선물이에요.”
미희는 활짝 웃으며, 사진집 맨 앞장에 큼지막하게 사인을 해 주었다.
“태수씨 덕분에 공모전에서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었고, 이렇게 멋진 전시회도 할 수 있었어요. 앞으로 살아가며 다양한 방식으로 은혜를 갚겠지만, 우선 이 사진집을 선물로 받아줘요.”
태수는 사진집을 받아들고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한참을 아무 말도 하지 않는 태수에게 미희가 다가왔다. 그리고 그를 조심히 끌어안았다. 말하지 않아도 그의 기분을 느낄 수 있어. 미희는 태수의 마음이 다치지 않도록 소중히 그의 영혼을 어루었다. 곤란하고 부끄러워하는 당신의 속상함이 느껴져. 미희는 태수의 등을 연신 부드럽게 쓸어내렸다. 하지만 그는 아랫입술을 깨문 채 꼼짝도 하지 않았다. 한참 침묵을 지키던 태수는 미희를 천천히 밀어내고, 몸을 돌려 전시회장을 떠났다. 마치, 자신이 있을 장소가 아니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처럼.
“태수씨!”
미희는 황급히 그를 따라나섰다. 뒤에서 태수의 이름을 몇 번이나 크게 불렀음에도, 그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굽이 워낙 높은 구두 탓에 미희는 바닥에 세게 넘어지고 말았다. 미희는 깨져 피가 흐르는 무릎보다 마음이 아파서, 그리고 태수의 마음이 걱정이 되어서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손에 들려있던 안개꽃 꽃다발이 품에서 떨어져 바닥을 나뒹굴렀고, 그 탓에 장미 꽃잎 여럿이 바람에 흩어졌다.
미희가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는지, 태수의 걸음이 일순간 멈춰졌다. 미희는 울먹이며 그를 올려다보았다. 몸을 돌려, 넘어진 자신을 바라보는 태수의 일그러진 표정, 그 젖은 눈가에 미희는 작게 중얼거렸다.
“부탁이야, 가난 따위를 이유로 내게서 달아나지 말아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