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저마다 자신의 직업을 가지고 살아간다. 매일 자신의 일을 하며 반복되는 말과 행동을 하다 보면 어느새 자신의 습관이 된다. 아나운서는 주변에서 들리는 말 중에 어법에 안 맞는 말이 귀에 거슬린다. 브런치에 어느 글을 보니 승무원을 직업으로 가지고 있는 사람은 습관적으로 화장실 청소를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고 한다. 초등교사는 어떤 직업병을 가지고 살고 있을까?
초등교사는 반 아이들에게 지시형 어휘를 많이 사용한다. '책 펴라.', '자기 자리 깨끗하게 청소하세요.', '밥 먹으러 가게 손 씻고 줄 서라.' 등. 일터에서 주로 사용하는 그 말을 집에서도 사용하기도 한다. 본인의 배우자나 자녀에게 말할 때 지시형 어조로 강하게 말하여 가족에게 마음의 상처를 입힐 때가 있다. 특히 본인의 컨디션이 나쁘거나 주변을 돌볼 여력이 없을 때 더욱 그러한 말투가 나온다.
동기모임을 하면서 한 동기가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내 와이프가 나를 자기 반 아이들 말고, 옆 반 선생님처럼 대해주면 좋겠어."
"맞아. 맞아. 나는 자기 반 학생이 아닌데."
"옆 반 선생님한테 말할 때는 존칭 쓰면서 공손하게 말하잖아."
부부교사가 많은지 그러한 대화 속에서 다들 공감하는 분위기이다. 아마 와이프도 그렇게 나를 대한 적이 있고, 나도 와이프에게 그렇게 대한 적이 있을 것이다. 마음은 안 그런데, 직장에서 사용하던 말이 툭 튀어나오기도 한다. 그러면 상대방은 상처를 받게 된다.
바닷가에 놀러 간 적이 있다. 우리는 가족들과 함께 바닷물에 발을 담그고 게를 잡고 놀고 있다. 조금 떨어진 곳에 아이들끼리 놀러 온 무리가 보인다. 아마 동네 아이들인가 보다. 그 아이들이 하는 말이 귀에 거슬린다. 아이들의 입이 거칠어 말 끝마다 욕이다. 그냥 그런갑다하고 신경을 끄고, 우리끼리 잘 놀면 그만인데. 계속 그쪽에서 들리는 욕이 나의 귀를 때린다. '아, 이것도 직업병이구나! 욕 하는 아이들을 보면 참을 수가 없구나!' 하는 마음이 든다.
공연장에 뮤지컬 공연을 보러 갔다. 아직 시간이 남아 앉아서 기다린다. 옆의 애들이 장난을 치고 소란스럽게 떠들고 있다. 그 애들의 말과 행동이 거슬려 한 마디 뱉는다.
"조용히 하고 똑바로 앉아라!"
장난을 치던 아이들의 표정이 순간 굳어지면서 자기도 모르게 자세를 고쳐 앉는다. 학교에서 많이 들어보았던 어투이고, 담임선생님과 비슷한 기세로 자신을 쳐다봄을 아는 것이다. 초등교사 경력이 쌓이면 아이들을 제압하는 특유의 기운을 풍기는 것 같다.
출처: 웹, dogdrip.net
흡사 개장수가 지나가면 개들은 그가 개장수임을 알고 흠칫 놀라고 뒷걸음질 치는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아이들 특유의 발랄함이, 초등교사 특유의 아우라에 눌려져 순간 자신도 모르게 경직되는 것이다. 어떤 선생님은 같은 아파트에 잘 지내던 이웃이 있었다. 자신의 아들과 같은 또래의 친구는 그 선생님을 '이모'라 부르며 친하게 잘 지냈다. 어느 날 그 친구 아이가 잘못된 행동을 하여서, 한 마디 하였다고 한다.
"000. 너 그런 행동은 나쁜 행동이야. 당장 사과해!"
그 말을 들은 잘못된 행동을 한 그 아이는 한 마디 뱉으며 더욱 서럽게 울었다고 한다.
"이모, 그건 선생님 말투잖아. 엉엉엉."
상대방과의 대화 도중 자신이 말한 것을 상대방이 잘 이해하고 있는지를 확인하려 한다. 수업시간에 실컷 설명한 것을 학생 누군가에게 물어보는 것처럼. 대화 사이사이 이런 말을 한다.
"내가 하는 말이 무슨 뜻인 줄 알겠나?"
"내가 방금 뭐라고 말했게?"
"내 말 잘 듣고 있나?"
이건 그냥 그 사람의 말버릇일 수도 있지만, 초등교사가 이런 말을 하면 정말 초등교사답다.
초등교사가 펜션이나 파티룸에 놀러 가면 주인이 안내한 사항을 거의 다 준수한다. 재활용은 이렇게 해주십시오, 설거지는 이렇게 해주십시오 등. 다들 상식이 있고 교양이 있는 사람들이라 잘 지키겠지만, 특히나 초등교사는 주어진 안내사항을 더욱 잘 지키는 것 같다. 펜션이나 파티룸 주인 입장에서는 정말 좋은 손님이다. 그 일행이 가고 나면 청소 및 정리가 훨씬 수월할 것이기에.
한 번은 둘째 생일을 기념하여 파티룸을 빌린 적이 있다. 비용이 좀 비싼 느낌도 들긴 하지만, 5시간 정도 소품이 예쁘고 놀거리가 풍부한 공간에서 파티를 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었다. 아이의 사진을 메일로 보내주니 예쁜 생일 축하 영상도 만들어서 틀어주고, 파일도 보내주었다. 12시부터 오후 5시까지 노래방기기로 노래도 부르고, 보드게임도 하고, 점심을 시켜 먹으며 시간을 보내었다. 놀다가 갈 시간 즈음 되어 설거지 및 쓰레기 정리를 하였다. 주인이 해달라는 대로.
우리가 나가고 난 후 주인이 청소를 하러 와서 파티룸의 상태를 보고 청소 보증금을 돌려주는 형식이다. 파티룸 주인에게서 연락이 왔다. 청소하느라 놀지도 못한 것 아니냐면서. 이렇게 깨끗하게 공간을 사용해 주는 손님은 본 적이 없다면서. 우리 일행은 주인이 해달라는 대로 했을 뿐이데, 사장님은 우리에게 정말 고맙다면서 당장 보증금을 돌려드리겠다고 한다. 이러한 상황도 초등교사의 직업병이 아닐까.
나의 직업이 초등교사이니, 학교라는 직장 공간에서만 교사의 말과 행동을 하면서 사는 것이 맞는데. 왜 이리 일상생활에서도 '초등교사 다움'을 버리지 못할까? 이건 분명 '초등교사 직업병'이다. 학교에서는 교사, 가정에서는 남편과 아빠, 사회에서는 사십 대 아저씨, 이렇게 나의 모습을 잘 구분하여 말과 행동을 해야지. 그래야 나의 가족에게도, 나의 정신 건강에게도 이로울 것이다. 과연 '초등교사 직업병'을 고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