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말, 치유의 힘
오늘도 고객상담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분들의 표정은 무겁다. 진료 과정에서의 불편함, 의료진과의 소통 문제, 예상치 못한 비용 발생 등 다양한 이유로 이곳을 찾는다. 그분들의 마음속에는 이미 쌓인 답답함과 서운함이 가득하다.
"안녕하세요. 어떤 일로 오셨나요?"
나는 항상 이 첫마디를 최대한 부드럽고 따뜻하게 건넨다. 때로는 이 한 마디가, 상대방의 굳게 닫힌 마음의 문을 여는 작은 열쇠가 되기도 한다.
어느 날, 한 중년 남성이 상담실로 들어왔다. 목소리부터 거칠었다.
"아니, 병원이 이게 뭐 하는 짓입니까! 예약도 제대로 안 되고, 대기는 왜 이렇게 오래 걸리는 거예요?"
나는 그분의 말을 끊지 않고 끝까지 들었다. 그리고 천천히 말했다.
"정말 오래 기다리셨네요. 많이 힘드셨겠어요."
그 순간, 그분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했다. 분노 뒤에 숨어있던 피로와 걱정이 드러났다. 알고 보니 그분은 지방에서 새벽같이 출발해 오셨고, 아픈 어머니를 모시고 오느라 몸도 마음도 지쳐 있었다.
"죄송합니다. 제가 너무 흥분했네요. 사실 어머니가 많이 편찮으셔서..."
따뜻한 말 한마디가 그분의 마음을 열었고, 우리는 비로소 진짜 문제를 함께 해결할 수 있었다.
이기주 작가의 "언어의 온도"에는 "말도 의술이 될 수 있을까?"라는 글이 있다. 그 글에서 작가는 의사의 따뜻한 말 한마디가 환자에게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지를 이야기한다. 차갑고 기계적인 설명보다, "많이 아프셨죠", "걱정 많으셨겠어요"라는 공감의 언어가 환자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치유의 첫걸음이 된다는 것이다.
이기주 작가는 의문형으로 물었지만, 나는 확신한다. 말도 의술이 '될 수 있다'. 의문의 여지없이. 매일 이 자리에서 경험하기 때문이다. 의사만이 아니라 병원의 모든 직원, 특히 우리 고객상담실 직원들의 말도 의술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우리의 언어에도 온도가 있고, 그 온도가 상처받은 마음을 따뜻하게 감싸줄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모두 의사소통하며 산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이 있다. 의사소통의 93%는 비언어적 요소이고, 언어가 차지하는 비율은 겨우 7%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괜찮으세요?"
같은 말이라도 무표정하게 기계적으로 하는 것과, 눈을 맞추며 따뜻한 어조로 건네는 것은 완전히 다른 메시지가 된다. 부드러운 표정, 공감이 담긴 어투, 상대방을 향한 시선, 조금 앞으로 몸을 기울이는 자세까지. 이 모든 것이 '말'에 포함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상담할 때 단어만큼이나 표정을 신경 쓴다. 목소리 톤을 조절한다. 고개를 끄덕이며 경청한다. 이 모든 비언어적 신호들이 "당신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듣고 있습니다", "당신의 마음을 이해합니다"라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그리고 그것이 진짜 치유의 시작이 된다.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불편을 드려 정말 죄송합니다."
"최선을 다해 도와드리겠습니다."
이런 말들이 때로는 어떤 제도적 해결책보다 더 큰 위로가 된다. 물론 실질적인 문제 해결도 중요하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건네는 따뜻한 말 한마디가, 상대방이 느끼는 전체 경험을 완전히 바꿔놓기도 한다. 한 환자 보호자분은 상담을 마치고 나가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문제가 완전히 해결된 건 아니지만, 마음만은 한결 가벼워졌어요. 제 이야기를 들어주셔서 고맙습니다."
병원은 아픈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다. 육체의 고통뿐 아니라 마음의 고통도 함께 안고 오는 곳이다. 그래서 이곳에서 만나는 모든 말에는 책임이 따른다. 고객상담실 직원으로서 나는 매일 다짐한다. 내가 건네는 말이 누군가에게는 하루를 버틸 힘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내 언어의 온도가 차가운 병원을 조금이나마 따뜻한 곳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자고.
말도 의술이 될 수 있다. 약과 수술만이 치료가 아니다. 따뜻한 말 한마디, 진심 어린 위로 한마디가 때로는 어떤 처방보다 강력한 치유의 힘을 발휘한다. 오늘도 나는 상담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분들을 맞이한다. 가장 따뜻한 목소리로, 가장 진심 어린 마음으로.
"안녕하세요. 어떤 일로 오셨나요?"
어느 작가의 지지와 격려로 브런치스토리 작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이 연재글 23화를 이어왔습니다. 머릿속에 있던 얽힌 실들을 실타래로 뽑아 옷감을 만드는 작업이 쉽지는 않았습니다. 때로는 어떤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야 할지 막막했고, 때로는 현장의 생생함을 글로 온전히 담아낼 수 있을까 고민했습니다.
이제 이 연재북 "나는 대학병원 고객상담 직원입니다"의 연재를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23편의 이야기를 통해 제가 만난 사람들, 그들의 아픔과 회복, 그리고 그 속에서 배운 것들을 나눌 수 있어 감사했습니다.
앞으로 어떤 글로 브런치스토리를 채울까 고민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부족한 연재글을 읽어주시고 응원해 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 아래는 읽지 않으셔도 됩니다
상대방의 말을 끝까지 듣기
감정을 인정하고 공감 표현하기
분노나 불만 뒤에 숨은 진짜 감정 읽기
같은 말도 어떻게 전달하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메시지가 됨
차갑고 기계적인 언어 vs 따뜻하고 진심 어린 언어의 차이 인식
의사소통의 93%는 비언어적 요소
표정, 어투, 시선, 자세 등이 말과 함께 메시지를 전달
단어뿐 아니라 전달 방식이 더 중요
내가 건네는 말이 누군가에게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책임감
형식적 응대가 아닌 진심 어린 소통
부드러운 첫인사 : "안녕하세요. 어떤 일로 오셨나요?" - 따뜻한 톤으로
눈 맞추기 : 상대방에게 집중하고 있다는 신호
열린 자세 : 약간 몸을 앞으로 기울여 경청하는 자세
끝까지 듣기 : 말을 끊지 않고 충분히 들어주기
고개 끄덕이기 : 이해하고 있다는 비언어적 신호
공감 표현 : "많이 힘드셨겠어요", "정말 오래 기다리셨네요"
이해와 사과 : "불편을 드려 정말 죄송합니다"
구체적 도움 제시 : "최선을 다해 도와드리겠습니다"
과정 설명 : 어떻게 해결할지 명확히 안내
감사 표현 :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재확인 : 문제가 해결되었는지, 더 필요한 것은 없는지 확인
따뜻한 배웅 : 마지막까지 진심 어린 태도 유지
목소리 톤 조절 : 상황에 맞는 따뜻하고 안정적인 톤
표정 관리 : 부드럽고 친근한 표정 유지
언어 선택 : 공감과 위로가 담긴 언어 사용
자기 성찰 : 오늘 내 언어의 온도는 어땠는지 매일 돌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