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토에 서서 산하를 바라보다 제17화)
지명 중에서 아름다움과 상서로운 뜻을 지닌 지명이 있다. 이는 옛사람의 꾸밈과 거짓이 없는 마음 상태를 나타내고 있지만 더 깊이 살펴보면 그 심리의 배후에 광물에 대한 사랑이 연결되어 있음을 왕왕 보게 된다.
이런 지명에는 고대 지배계층 또는 지도층의 그 지역에 대한 광산개발 의도나 시도를 짐작할 수 있거나 백성의 부귀 추구 마음을 예쁘게 꾸미기도 하고 도덕적으로 포장을 하기도 하였음을 알 수 있다.
하남성 보풍현이 있는데 보풍은 북송말기 고량주 제조장 도자기 제조장 제철공장으로 이용되어 물건과 보석의 풍부한 지역으로 알려졌으며 그래서 북송 휘종이 첫 명호로 보풍을 사용하였다.
사천성 보흥현은 대리석 석탄 금 옥석 등 광물 자원이 풍부하여 이름에 백성들의 부유와 흥성을 추구하는 마음을 담고 있다. 호남성 자리현 강서성 상요시 운남성 부원현 산동성 이진현도 해당지역 사람들의 풍부한 광물 생산을 바라는 솔직한 마음을 담고 있는 이름이다.
한반도 백성들도 중국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부귀영화와 상서로움을 소망하는 마음을 지명에 담아 보기도 하였다. 이중 금 은 보석 옥등의 광물은 귀하여 재물 행운 신성함을 상징하는 지명을 만들어 내기도 하였다.
부산시 금정은 황금 우물의 뜻이며 은광동은 은빛이 나는 마을로 부와 번영을 기원하는 마음을 담고 있다. 금곡은 금이 나오는 골짜기로 재물이 많이 생기기를 바라는 염원이 담겨있으며 보석이 있는 마을이라는 뜻인 보석리도 부자 되기를 가득 소망하는 지명이다.
왜 예 사람들은 광물에 그런 기대와 사랑을 담았을까? 왕조시대에 농민들은 자기 소유 경작지가 있는 경우가 많지 않았다. 대부분 농사지을 땅이 없는 경우가 많아 광물에 일확천금의 꿈을 꾸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광산을 찾아 나서기도 하였다.
그러나 광산에 대한 인식은 처음부터 꿈을 꿀 수 있는 처지는 아니었다. 고려 시대 백성들에게 광물은 종종 고통의 상징이었다. 국가의 명령으로 광산 노동에 동원되고 세금과 공물로 바쳐야 했기 때문이었다. 조선 전기도 광산은 부역과 징발의 대상으로 백성에게는 달갑지 않은 존재였다.
하지만 조선 후기에 들어서면서 상품 화폐 경제가 발달하고 광업 정책이 완화되자 사람들의 시선도 바뀌었다.
조정은 세금을 받는 대신 민간의 채굴을 허락했고 특히 북쪽 지방 광산에는 전국 각지에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그래서 백성들의 고단한 삶을 광산에 부쳐 새로운 희망의 장소가 되기를 소망했다. 위험을 무릅쓰고 그들은 땅속으로 들어갔다. 땀을 흘리며 안전도 도외시한 채 흙과 돌 사이에서 볼 수 있는 반짝이는 한 줄기 광물의 빛은 곧 부귀의 꿈이 되었다.
그 빛나는 돌멩이 하나에 가족의 삶과 내일을 걸었다. 광물은 단순한 자원이 아니었고 그것은 백성의 마음속에 살아 있는 희망이었다. 가난 속에서도 더 나은 삶을 바라는 간절함, 그 마음이 바로 지명 속에 스며들었다.
오늘 우리가 부르는 그 이름에는 사람들의 서글픈 희망이 들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