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모 상담을 준비하면서 그 학생의 학급 생활 모습 자료를 작성하였다. 매일 아침 구김 없는 순박한 웃음에 또래보다 낮고 굵은 목소리로
"안녕하세요!"
를 외치며 등장하고 바로 친한 친구들에게
"야, 어제 어쩌고 저쩌고."
수다를 시작하는 어울림을 좋아하는남학생. 수업시간에도 틈만 나면 자기 자리 주위의 남녀를 가리지 않고 이야기꽃을 피우고, 쉬는 시간, 점심시간 어느 누구와도 부담 없이 있을 수 있는 모두의 클래스메이트였다.
그리고 시작된 학부모 상담주간. 전화상담을 원하셨길래 신청하신 날짜, 시각에 학생 어머니께 전화를 걸었다. 학생의 생활모습, 친구관계, 과목별 공부 내용에 대한 이해, 학습 태도 등을 이야기하다가 참관 소감에 대해 조심스레 여쭈어 보았다.
"선생님께서 기억나는 일 물어보셨잖아요."
"네, 가족들과 공원 갔었다고..."
"네, 그런데 그전에 학습지에 기억나는 일 적는 거 있었잖아요."
"아, 네. 이야깃거리 정할 때 처음 칸이요."
"그때 처음에 거기에'없다'라고 썼다가 지우더라고요."
그래, 그날 발표 전에 학습지에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을 하나 쓰고 발표하기로 했었다.너무 많은 사람이 와서 교실 뒤쪽으로 가기 어려울 정도였던 교실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 학생의 자리가 맨 뒤였음도 기억났다.그 학생 바로 뒤에서, 그 학생 부모가 자식의 학습지를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순간 말문이 막혀 수화기 너머로 듣기만 했다.
"바로 뒤에서 쓰는 것을 보는데 몇 자 못 쓰더라고요. 저희가 가게를 같이 하는데, 부부가맨날 바쁘다 보니 제대로 챙겨주지도 못하고 어디 제대로 놀러 간 적도 없고 그래서... 보니까우리 애만 경험이 없어서요...애한테 너무 미안해서요..."
나 역시 학급 담임교사로서 지난 몇 년간 코로나에 걸리면 안 된다는 부담감이 있기 때문에 내 아이들이
"우리는 언제 안 놀러 가요?"
물어보면 항상 아내는
"아빠한테 물어봐."
토스를 하고
"아빠가 선생님인데 어떻게 놀러 가."
나는궁색한 변명을 한다.
"우리 반에서 나만 개근이야."
작년 중반 이후부터 아이들이 학교 친구들이 체험학습을 신청하고 놀러 갔다고 이야기를 전할 때면 차마 미안해서 바로 화제를 딴 곳으로 돌렸다. 집에서 대화할 때의 나도 이럴진대 하물며 학교에 와서 목도한 불편한진실은 그 부모의 마음을 크게 헤집어 놓았을 것이다.
여기저기 다른 학생들의 자신 있는 발표 모습과 그들의 즐거운 이야기들. 그 모습을 흐뭇하게 보며 좋아하는 주위에 있는 다른 학부모들. 코로나로 인해 가족이 더 가까워지고 많은 이야기들이 있을 줄 알았던 공개수업 주제가 어떤 학생에게는 초라함을, 그 가족에게는 죄책감을 주었다는 게 너무 미안했다.
동학년 다른 선생님들처럼 같은 여자라면 수다를 떨듯이 '저희 집도 그래요. 바쁘신데 그럴 수도 있죠. 앞으로 잘 챙겨주시면 되죠.' 하고 친근하게 위로를 건네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말주변이 별로 없어 학교 생활 즐겁게 잘하고 있다고 위로하고 걱정 마시라고 마무리지었지만 전화를 끊고도 한동안 가슴이 먹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