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결) 궤도를 이탈하는 그녀

[단편소설 연재] < 중독되었다 > 유정 이숙한

by 유정 이숙한

아내와 나 두 사람 중 한 사람이 주민센터에 가서 이혼한 사실을 신고하면 인연이 끝난다. 위자료로 사천만 원을 주기 전에는 신고서를 아내가 갖고 있어 받을 수 없다. 아내는 변호사를 사서 날 벗겨 먹을 계획을 세웠다.

내가 그런 사실을 인지하지만 구질구질하게 연정에게 밝히고 싶지 않았다.



내가 연정과 깊은 사랑을 나누고 물었다.

“우리 이렇게 뜨거운 밤을 보내는데 날 쉽게 보낼 수 있어? 어떤 여자든지 나와 잠자리를 하면 절대로 날 잊지 못해! 20년 넘게 섹스 파트너 지내는 여자는 남편과 이혼하고 나랑 만나서 회포를 풀며 살고 있어. 동생을 만나지 않았으면 그 친구에게 갔을 거야. 나 보고 아내랑 이혼하고 같이 살자고 했어.”


연정은 내 말에 묵묵 부답이었다. 그렇다면 내 물음에 대한 답은 뭘까? 내가 연출한 사랑의 황홀경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여자는 부지기수다. 연정은 내 품에서 노는 한 마리 백조였을까, 연정은 죽은 남편과 같이 보낸 세월이 있으니 유머 감각을 지닌 남편과 문화적인 교류를 많이 쌓은 터라 문득문득 생각나는가 보다.

가요를 부를 때, 남편을 떠올리는 것 같다. 아직도 남편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한 걸까?

‘가로수 그늘 아래서’, ‘그대 그리고 나’ 광화문 네거리를 활보하던 시절이 생생하게 기억나는가 보다.



나는 연정과 미래를 생각하며 행복한 상상에 잠겼지만 가끔은 궤도를 이탈하는 그녀를 본다. 잠자리에서 200% 만족을 주건만 대체 왜 그럴까, 내 차에 타서 노래를 부르는 연정의 목소리가 사랑스럽다.

내가 연정의 사랑 중독증에서 헤어날 수 있을까, 연정은 나를 잊고 살 수 있을까.


길에서 만난 사람이 아는 척하며 어디에 사느냐고 물으면 가슴이 쿵 내려앉는다고 하는 연정이다. 막 돼 먹은 여자도 아니니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니 금지된 사랑은 아니라며 떳떳한 사랑을 하고 싶다고 하던 그녀다.

그녀는 궁하다고 남의 남편을 빼앗을 만큼 뻔뻔하지는 않다. 아내는 조강지처는 아니지만 20년을 함께 한 호적상 아내이니 내가 남편인 건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위자료로 사천만 원을 준다고 약속했다. 차용증을 써주고 아내와 헤어졌다. 20년 살았는데 얼굴 찌푸리며 헤어지고 싶지 않았다. 돈 앞에 지독한 여자에게 질렸다. 아내 지은은 내 돈도 내 돈, 네 돈도 내 돈이어야 했다.


지은이 지독하게 구는 이유는 자식들 때문이다. 밤이면 넓은 집에 혼자 있으면 이런저런 생각이 나겠지만

아내와 상의도 없이 집을 떡 하니 샀으니 배신감이 들었을 테고. 다른 여자와 모텔을 드나드는 걸 알고 나니 치가 떨릴 것이다. 나는 일이 꼬이자 될 대로 되라고 방치했다. 힘들게 일하고 오면 밤이면 종아리가 뭉쳐 끙끙 앓고 있는데 걱정은커녕 찬 바람이 쌩쌩 부는 아내 지은이다.



연정이 대출을 받아 위자료를 준다고 하니 육천만 원 대출금 이자와 원금을 어떻게 갚을 거냐며 뜯어말렸다. 지은과 자식만 챙기고 남편이 나는 뒷전이다. 지은이 살고 있는 집을 담보로 시동생이 대출받았는데 이자와 원금을 같이 갚아나갔다. 그런 것을 기억하지 못하는 지은은 기억상실증에 걸린 걸까, 그 반면에 순수하고 때 묻지 않은 깨끗한 심성을 가진 연정이 옆에 없다고 생각하니 세상살이가 시들하다.


시간이 지나고 몇 개월 후에 전화를 걸었다. 연정이 받았다.

“어디세요? 누구세요?”

라고 물었다. 연정은 내 번호를 삭제해서 기억해내지 못한다.

“오빠야, 전화가 안 되네. 나 보고 싶지 않아? 난 보고 싶어 죽을 거 같은데?”

“저는 다 잊었습니다. 내 마음속에서 정리했습니다. 오빠도 나 잊으세요.”


그날 이후로 그녀의 목소리를 영영 들을 수 없었다. 나와의 녹아드는 섹스에 중독되어 헤어나지 못할 거라고 장담하던 내 콧대를 꺾어주고 싶은 걸까?


-- 끝 --


지금까지 "중독" 소설을 읽어주신 독자님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유정 이숙한 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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