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리지 않길 잘했다

[ 에세이 ] 유정 이숙한

by 유정 이숙한
바로 이 바지입니다.

몇 년 전 봄이었다. 오른쪽 발목이 아파 디디지를 못해 산본의 대학병원. 발목 전문인

명의에게 진료와 정밀검사를 받았다. 그 결과 연골이 찢어져서 그토록 아픈 이유였다.

검사결과물을 가지고 화성 향남 수앤수 병원에서 척추마취하고 발목에 다섯 개 구멍을

뚫고 찢어진 연골을 갈아내는 수술을 받았다. 척추마취를 하고 다리에 소독약을 발랐다.


수술대에서 보니 모르는 다리가 내 위에 들려져 있다. 눈에 익은 다리였다.

상체는 마취를 하지 않아서 수술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알고 보니 그건 내 다리였다.

퇴원 후 집에서 한 달 동안 기브스 상태로 목발을 짚고 왼쪽 발에 의지해서 걸어 다녔다.


수술하고 나을 때까지 긴 시간 왼쪽 발목에 의지하여 살았다. 왼쪽 발목의 연골도 많이 닳은

상태인데 군말 없이 한두 해를 잘 버텨주더니 무리가 갔는지 파업을 선언했다.

약침을 맞으러 화성에서 제기동까지 버스를 세 번이나 갈아타고 제기동 H한의원에 갔다.

약침을 맞고 나왔다. 바람이 차다. 얇은 바지를 입고 가서 찬바람이 안으로 파고들었다.


오십여 미터를 걸었다. 발목도 쉬게 해 줄 겸 편의점 옆 의자에 앉아 잠시 쉬었다.

그 옆 작은 옷가게에 걸려 있는 바지가 눈에 들어왔다. 입고 벗기 편한 고무줄 바지라서 입고

벗기가 복잡하지 않고 푸짐한 덩치도 가려질 거 같아 망설이지 않고 만 원을 주고 샀다.


입어보니 청바지 종류 기지인데 스판이라 잘 늘어났고 타이트하고 푸짐함을 가려주었다.

내 느낌인지 모르겠지만.. 그 후 바람이 차면 이 바지를 입는다. 마트에 가고 수채화 배우러

주민센터에 갈 때나 문협 행사에도 입고 다녔다. 한 겨울이 아니면 언제든 입을 수 있다.


버스를 타고 여행을 갈 때도 이 바지를 챙겨 입었다. 입고 아무 데나 주저앉아도 부담이 없다.

자주 입었고 세탁도 여러 번 했다. 5년 넘게 입었지만 새것 같아 입을 때마다 기분이 좋았다.

옷에 뭐가 묻으면 세탁하면 되니까, 부담이 없고 보온이 잘 돼 따뜻하기까지..



어느 날 보니 바지 옆에 대준 비닐 가죽이 너덜거리기에 뜯어냈더니 보기 싫다. 버릴까 말까

망설이다 마트에 갈 때 입고 버리려고 접어주면 또다시 미련이 남는 걸 어쩌나?


옷 수선하는데 가서 다른 천으로 대 달라고 할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옆지기에게 말했더니,

미련 없이 버리고 새로 사라고 한다. 헌 옷 수거함이 몇 걸음 되지 않는다. 하지만 난 바지를 버릴

마음이 준비되지 않았다. 버릴까? 생각하다 또 주저앉는다. 허드레일 할 때 헌 바지도 필요하다.


내 마음에 딱 드는 너! 어쩜 좋으니? 만 원 주고 샀으니 본전을 몇 배 뽑고 남았지만

돈이 문제가 아니다. 이 바지가 맘에 드는 것이 더 문제인걸!


그렇게 두어 달을 망설였다. 수선하는 곳에 맡겨 비닐가죽을 댄 곳을 없애고 감쪽같이 연결했다.

그랬더니 타이트해서 보기 좋고 잘 늘어나서 앉고 서기가 편해서 좋다. 버리지 않길 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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