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7
나는 잠깐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
“네...? 갑자기요? 아직 완전히 그친 것도 아니고…
조금 더 있어도 괜찮은데요. 옷도 아직 덜 말랐으니까요.”
그는 대답 없이 천천히 일어나, 현관 쪽으로 향했다.
걸음엔 망설임이 없었고, 목소리도 짧았다.
“아니요. 더는 폐 끼치고 싶지 않아서요. 그럼, 잘 지내세요.”
등을 돌린 그의 뒷모습.
신발을 신는 동작은 조용했고, 문 쪽으로 향하는 손에도 망설임이 없었다.
그런데도, 그 마음만큼은 전혀 읽히지 않았다.
나는 참지 못하고 그를 불렀다.
“저기요.”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왜 그랬는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그가 조용히 돌아보며 물었다.
“…네?”
입술을 눌렀다가, 나는 조용히 말했다.
“그... 혼자 있기 좀 무서워서요. 비도 오고…”
(왜 그런 말을 꺼냈는지는, 나조차도 설명할 수 없다.)
그는 문 앞에 멈춰, 살짝 고개를 기울이듯 몸을 기울였다.
“…비 오는 게 왜 무서운데요?”
나는 당황해 말도 안 되는 얘기를 늘어놓았다.
“그냥… 천둥이 칠 수도 있고요. 여자 혼자 살다 보면 괜히… 그런 게 좀 불안하잖아요.”
그는 조용히 말했다.
“천둥은 안 쳤잖아요. 도어락도 있고, 이중 잠금 장치도 있고…
그동안도 잘 지내셨는데요.”
그가 나를 놀리는 건지, 정말 눈치가 없는 건지 헷갈렸다.
“…그럴 수도 있는 거잖아요.”
그의 표정은 여전히 담담했다.
“그럴 수가 있나요…?”
그 말에, 나는 결국 목소리를 높이고 말았다.
“없겠죠! 근데 왜 내가 이런 말까지 하겠어요! 정말… 답답하네요.”
그는 말없이 나를 바라보다가, 아주 잠시 눈을 깜빡였다.
나는 숨을 고르며, 힘없이 덧붙였다.
“…그냥 자고 가요.”
그는 눈을 크게 뜨며 손을 들어 저지하듯 말했다.
“네!? 아니요, 절대 그럴 순 없어요.
좀 빈약해 보여도 저도 남자고요.
그리고… 전 남의 집에서 자 본 적도 없고,
특히 여자 집은… 더더욱 없어요.
그러니까 정말, 걱정 안 하셔도 돼요.”
말이 평소보다 길었다.
당황한 기색이 그만큼 컸다.
“아니, 그런 의미로 말한 게 아니에요.”
나는 그를 바라보다가 천천히 말을 이었다.
“그냥 오늘은, 혼자 있고 싶지 않아서요. 일 아니면 집이고,
저도 그렇지만 친구들도 다 바빠서… 누굴 만나는 게 점점 어려워져서요.”
그는 말없이 가만히 서서 애매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다시 입을 열었다.
“저기요, 하나만 약속해요.”
“…네? 무슨 약속인데요?”
“일단 들어주겠다고 해요.”
그는 고개를 약간 옆으로 젖히며 대답했다.
“음… 알겠어요. 너무 이상한 것만 아니면.”
“그럼 들어주기로 한 거예요?”
“…네. 뭐, 말해보세요.”
“저한테 화 안 내기로 약속해요.”
“네…? 화를 왜 내요, 갑자기?”
“일단 약속해줘요.”
그는 어이없다는 듯 웃으며 대답했다.
“네, 알겠어요. 화 안 낼게요.”
나는 그 말을 듣자마자 현관 앞으로 걸어가,
그의 팔을 살짝 붙잡았다.
그리고 조용히 끌었다.
“에? 에, 뭐 하시는 거예요. 신발이… 아직—”
“괜찮아요. 그냥 들어와요.”
“잠깐만요, 신발만 벗고요. 바닥 더러워지니까!”
“상관없어요. 얼른요.”
“아니, 그렇게 당기시면!”
쿵—
나는 그대로 엉덩방아를 찧었고,
그는 신발 한 짝을 문 앞에 남긴 채, 몸만 방 안에 쭉 뻗은 채 누워 있었다.
마치 개구리처럼.
그 모습을 보자 웃음이 터지기 직전까지 올라왔다.
“…괜찮아요?”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는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낮게 말했다.
“하아… 그래서 그 약속을 먼저 받아둔 거였군요.”
나는 입술을 꾹 누르며 답했다.
“뭐, 이렇게까지 하려던 건 아닌데요.”
그는 망연한 얼굴로 바닥을 보다, 작게 웃었다.
“진짜 별일 다 겪네요, 오늘.”
나는 웃으며 짧게 말했다.
“…미안해요. 진짜로.”
그는 고개를 푹 숙였다가, 짧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후우... 뭐, 괜찮아요. 그런데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이죠? 갑자기 사람을 끌어당기고, 자고 가라는 말까지 하고.”
그제야 나는 내가 무슨 짓을 했는지 깨달았다.
얼굴이 뜨거워지며 시선이 저절로 바닥으로 내려갔다.
“…아니, 그러니까… 혹시, 그쪽 바보예요?”
그는 고개를 들며, 어이가 없다는 얼굴로 되물었다.
“네? 끌어당긴 건 그쪽인데, 왜 제가 바보가 되죠?
이상한 사람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까지인 줄은 몰랐네요.”
나는 순간 말을 잇지 못하다가, 어처구니없다는 듯 되받았다.
“이상한 사람은 본인이죠. 밖에 나가서 물어봐요.
누가 더 이상한지, 금방 알 테니까.”
그는 가볍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예예, 그러시겠죠. 그래서, 뭐예요? 왜 이러는 건데요.”
나는 그 시선을 피하며, 애써 태연한 척을 했다.
“뭐가요? 그냥… 장난 좀 친 거죠.”
그는 머리를 헝클이며 중얼거렸다.
“정말 이상한 사람이네요. 아무튼, 오늘 고마웠어요. 가볼게요.”
그가 몸을 돌리려는 순간, 나는 나직이 말했다.
“그냥... 자고 가요. 제가 혼자 있기 싫다 그랬잖아요.”그는 잠시 멈춰 뒤돌아본 채, 움직이지 않고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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