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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없는 사람

JOB담(談) ; 열두 달의 에피소드

by 시골쥐 Feb 13. 2025

양아치라고 부르면 딱 어울리는 사람과 일했던 적이 있다. 능력과 노력이 부족한 대신 술 부심과 주사가 넘쳤다. 출근에 숙취, 퇴근 후 만취를 노상 반복했다. 전생이 있다면 틀림없이 일본 앞잡이였을 거라 확신 되는 비양심 기회주의와 권위적 꼰대력까지 겸비한 기피 대상 중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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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양아치가 큰 사고를 쳤다. 그동안처럼 뻔한 핑계를 대거나 윗사람에게 아부해서 넘어갈 만한 수준이 아니었다. 그가 선택한 돌파구는 떠넘기기였다. 아무 잘못 없는 후배에게, 너무 내성적이라 아무 말도 못 할 것 같은 막내 동생뻘에게 책임을 넘겼다.

출근길, 흡연장, 식당, 회의실에서 그 아이가 실수를 저질러 자신이 수습 중이라고 떠들었다. 반나절이 되지 않아 사건의 범인이 바뀌었다. 거짓이 사실을 덮었다.


그날 저녁, 양아치가 분위기 전환이 필요하다며 회식을 제안했다. 미안하면 사과부터 했어야 하는데, 밥조차 법인카드로 먹이려는 속내에 피가 끓었다. 그래서 안 간다고 했다가 분위기 망치는 놈 취급을 받아서 끌려갔다.

참 신기하게도 억울할 후배 녀석이 티를 내지 않는다. 그 일에 관해 일언반구 말도 없고 정우성처럼 사과하라고 울부짓지도 않는다. 오히려 양아치 옆에 딱 붙어 앉아 기분 맞추며 술을 따른다. 심지어 노래방까지 따라가서는 어깨동무도 했다. 1차, 2차, 3차 내내 보필하다 만취한 양아치를 택시까지 태워 보냈다.


다음 날 아침, 양아치가 노래방에서 방금 나온 것 같은 몰골로 출근했다. 한 시간이나 늦어 팀장에게 된통 깨졌다. 그리고 오전 내내 사무실 전화기를 붙잡고 있는데, 통화가 되지 않는 모양이다. 그 덕에 지각한 놈이 일도 안 한다고 또 깨졌다.

사연을 들어 보니 휴대폰을 잃어버렸다. 최신형 최고급 사양이라고 자랑하던, 커버달린 가죽케이스까지 씌워 애지중지 아끼던 두 달 된 사과 전화. 마지막 위치가 노래방인데 다시 가봐도 없고, 전화도 꺼져있어서 속을 태우고 있다. 좀생이 양아치에게 휴대폰을 앗아가다니, 천벌이다.


후배와 흡연장에서 쌤통이라며 킥킥거렸다. 너의 억울함을 하늘이 대신 풀어준 것 같다고, 내 속이 다 시원하다고. 잠시 침묵했던 후배가 답했다.

“제가 그런 거에요. 휴대폰 노래방에 있어요. 우리가 갔던 그 방에. 전원을 끄고 소파와 소파 사이 아주 깊숙한 곳에 넣어 놨어요. 그러니까 노래방에서 없다고 했을 거에요. 보통 바닥만 찾아보지 소파를 다 떼서까지 찾진 않으니까.”

억울하다고 항변해 봐야 해결될 것 같지 않고, 오히려 양아치와의 이후 관계가 더 걱정이라 아무 말 않았다. 어쨌든 수습은 본인이 하고 있으니 더 엮일 일도 없었다. 그래도 화는 당연히 남아서, 어떻게 복수 해줄까 하다가 선택한 방법이다. 속없이 맞춰준 게 아니라 치밀하게 계획한 것이다. 회식 내내 인내하고 인내하면서.

하긴 세상에 당하기만 하고 사는 사람이 어디있겠는가, 화나지 않는 사람이 존재하겠는가.


사무실로 돌아오면서 생각이 많아졌다.

‘혹시, 내가 얘한테 잘못한 건 없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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