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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나 Mar 21. 2024

새빨간 것들

핏줄이 뭐길래

   혹시 김혜주 님의 보호자분 되시나요?

   새벽에 전화가 걸려왔다. 모르는 여자의 목소리. 지금 응급실에 있다며 XX 병원으로 급히 와달라는 말을 끝으로 전화는 끊겼다. 곧바로 자세한 내용과 주소는 문자로 전송되었고, 나는 밖으로 나가 택시를 잡아탔다. 손끝이 덜덜 떨렸던 아까와는 다르게 병원으로 가는 길은 놀라울 정도로 차분했다. 나는 어쩌면 이런 일이 일어나기를 어느 정도 예상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나에겐 배다른 언니가 있다.

   그날은 하늘에 구멍이 뚫린 것처럼 비가 쏟아져 우산이 무용한 날이었다. 젖은 교복을 갈아입으러 집에 일찍 왔더니 낯선 교복의 여자아이, 아빠 그리고 몇 분의 친척이 함께 거실 소파에 앉아있었다. 그 애는 분류가 잘못되어 대기 중으로 처리된 택배 소포 같았다. 그 소포는 그날부터 한 지붕 아래에 살게 되었다. 어떤 날의 명절에 모인 친척 중 한 사람이 흘러가듯이 했던 말이 기억난다. ‘김 서방도 참으로 기구하지. 지 애미도 없이 어떻게 키울라고. 이렇게 핏줄이 더러운거여.’ 그 말을 들은 아빠는 쓴웃음을 지으며 담배를 마저 피웠다. 깊은 날숨에 길고 긴 연기가 구렁이처럼 흘러나왔다.


   언니는 때때로 새벽녘에 이불을 들썩이며 흐느꼈다. 엄마가 너무 보고 싶어... 이 사람이 아빠가 아니었어야 해...라고 되뇌었고 난 그때마다 MP3의 볼륨을 높였다. 다음날이 되면 언니는 멀쩡히 학교를 나갔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얼마간의 일상을 살아갔다. 다행히 나와는 거리낌 없는 사이가 되었다. 외동이었던 나에겐 하루 사이에 언니가 생겨 무엇보다도 기뻤다. 나이도, 학교도 달랐지만 방 안에서 많은 시간을 함께했다. 회색의 카세트 라디오로 주로 심야 시간대의 방송을 즐겨 들었다. 처음 우리 집에 왔을 때 그리 크지 않은 이사 박스에 들어있던 몇 안 되는 짐들 중 하나가 그 라디오였다. 엄마에게 받은 유일한 물건이라고 그랬다. 한 손에 들어오는 내 MP3도 물론 좋았지만, 길고 긴 안테나가 달려있는 물체에서 흘러나오는 깊은 소리가 더 듣기 좋았다. 디제이의 나른한 목소리, 대중가요와 발라드. 종종 클래식까지. 라디오의 주파수는 밤 열 시부터 시작해 새벽 세 시까지 이어졌다. 내가 세 시 방송의 클로징 멘트까지 들었던 기억은 손에 꼽지만 언니는 끝까지 듣고 자는 듯했다. 언니, 자? 하고 물으면 아직 안 자. 듣고 있어 라며 캄캄한 어둠 속의 목소리가 나지막이 들려왔다.

   언니는 열렬한 청취자이기도 한 동시에 열렬한 사연 신청인이었다. 인터넷, 문자, 편지 등 다방면으로 보냈다. 꾸준히 시도하는데도 마치 언니의 사연만 일부러 피해 가는 것처럼 번번이 실패했다. 사연이 시작되기 전 기대하는 눈동자, 사연이 시작된 후 빠른 속도로 내려가는 입꼬리가 기억난다. 그 표정이 참 안쓰러워서 언니의 사연이 채택될 수 있도록 내 계정까지 동원했다. 그러다 보니 나도 오기가 생겼고 매일 밤 함께 사연을 보냈다. 여전히 다른 사연이 흘러나오면 다시 해보자고 언니를 다독였고, 내 말을 들은 언니의 모습은 들장미 소녀 캔디의 모습처럼 되살아났다. 사연은 언니가 자세히 읽어보지 말라고 부탁했지만 몰래 읽어본 적이 몇 번 있다. 내용은 대체로 달랐지만 전달하고자 하는 바는 하나로 귀결됐다. 자신의 어린 날에 대한 추억과 친모를 되찾고 자는 내용이었다. 언니는 그 일이 자기 인생의 최우선인 일인 양 굴었다. 나는 그녀를 열심히 도왔고 사연 보내기는 우리의 일상이 되었다.

   그 일이 일어나기 전까지 말이다.


   몇 년의 시간이 흘러 그날은 나의 엄마 기일에 맞춰 경기도 외곽에 있는 봉안당에 가기로 한 날이었다. 약속 시간 삼십 분 전 아빠는 처리해야 하는 일이 생겨 자신은 따로 가겠다며 급히 연락을 해왔다. 차량이 필요한 거리라 혹시 운전해 줄 수 있냐고 언니에게 문자를 보냈다. 전화도 받지 않길래 OO 봉안당까지 가는 광역 버스를 알아보았다. 집에 오니 시계는 밤 열한 시를 향하고 있었고 쌀쌀한 공기로 인해 완벽한 적막함을 선사하고 있었다. 언니는 아침에 가까운 시간에 들어왔고, 바닥에 펼쳐둔 코트와 머플러엔 술 냄새가 알싸하게 퍼졌다. 그러고 침대로 돌아와 하염없이 울기 시작했다. 나는 반쯤 뜬 눈으로 일어나 언니 침대에 기대어 안아주었다

   다음날 함께 해장국을 먹으러 갔다. 나는 순댓국을, 언니는 선지해장국을 주문했다. 나는 예전부터 선지를 먹는 사람들을 보면 야만적이라고 생각했다. 소의 피로 만들어진 선지. 그 시뻘건 국물과 함께 베어 무는 여덟 개의 이. 그 사이로 빠져나오는 핏물이 공포스럽게 연상되었다. 넌 참 특이해. 언니가 말했다. 이건 그냥 선지야, 먹는 거라고. 한 입 크게 벌리며 탐스럽게 먹는 언니는 되려 날 이상하게 쳐다보았다. 어제 무슨 일 있었어? 난 떠보듯 질문했다. 헤어졌어, 그 새끼랑. 언니는 크게 한숨을 푸욱 내쉬며 이어 말했다. 역시 바람피우는 놈은 믿으면 안 된다더니. 믿은 내가 미련하지, 염병할. 상대 남자에 대한 욕을 신랄하게 퍼부었다. 그리고 그 욕은 바람피우는 일반적인 남자에 대한 산발적인 증오로 이어졌다. 해장국을 다 먹기까지 내가 보낸 문자에 대한 언급은 없었고, 언니가 하는 말을 액받이무녀처럼 온전히 듣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나는 어떠한 말을 할 수 있는 입장이 못되었다.


   이런 언니가 현재 내 눈앞에 온몸에 줄이 꽂힌 채 병실에 누워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의사는 머리를 크게 다쳐 뇌신경이 손상되었을 수도 있다며 우선 의식을 되찾을 때까지 지켜보자며 건조하게 말했다. 나는 간병인과 교대하며 언니를 보살폈다. 어느 날 화병에 둘 꽃을 사 오는 대신 전자상가에서 소형 라디오 기계를 사 왔다. 집을 아무리 뒤져도 예전의 회색빛의 라디오는 온데간데없었다. 십 년 넘게 진행해 오고 있는 디제이의 잔잔하고 차분한 목소리를 배경 삼아 언니를 지긋이 쳐다보았다. 침대 옆 작은 협탁 테이블에는 내가 가져온 라디오 외에 갑 티슈, 화병, 생수와 친척 분들이 사 온 오렌지와 포도 주스의 병 음료가 놓여있었다. 단출했다. 옆 병상의 박 할머니의 것과 비교되었다. 그녀의 자식들은 손주들과 함께 격일로 번갈아 찾아와 라디오 볼륨 좀 낮춰라고 투덜거렸다.

   문득 언니의 핸드폰이 눈에 밟혔다. 비밀번호는 걸려있지 않았다. 메인화면엔 메모장 앱만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1천 개에 육박하는 메모는 ‘신청용’, ‘스케줄’, ‘단상’으로 대체적으로 잘 구분되어 있었다. 그러다 한 메모의 첫 문장이 내 눈에 들어왔다.

   - 위선 떠는 표정. 부전여전


   가끔 라디오에서 언니의 사연이 읽히는 상상을 하곤 했다. 그 이야기는 어릴 적 모녀지간이 공통으로 지니고 있는 단 하나의 반짝거리는 추억을 곱씹으며 시작된다.

   ...... 네, 다음 사연입니다. 이 분은 저희 라디오의 오래된 청취자인데요, 드디어 읽어보게 되네요! 외할머니를 뵈러 가는 기차 안이었어요. 엄마가 손수 까주었던 구운 계란과 오렌지 주스가 너무나 맛있었지요. 붉은색의 립스틱과 옷장에서 몇 번 꺼내어 보지도 않은 실크원단의 원피스를 입은 엄마가 이웃 나라 공주님 같았어요. 그때부터 엄마가 세상에서 제일 예쁜 사람이라고 생각했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해요. 날 아버지라는 사람에게 버리고 간 것에 대해 더는 원망하지 않아요. 버렸다고도 생각 안 해요. 용서할 수 있으니 단 한 번만이라도 당신을 만나보고 싶어요라고 보내주셨어요....... 디제이의 목소리를 빌린 언니의 진심이 방 안에 울려 퍼진다. 언니는 그런 장면을 원했던 걸까.

   대답 없는 언니를 바라보며 대답을 갈구하듯 계속 물었다. 우리 아빠가 아닌 다른 사람이 아빠였으면 상황이 달라졌다고 믿어? 정말 그렇게 생각해? 언니는 아빠의 피를 물려받았어. 언니가 증오하는 그 속성 말이야. 네가 적어놓은 부전여전, 참 적절하다.


   그간 못했던 말을 속이 시원할 정도로 내뱉었다. 하지만 썩 유쾌하진 못했다. 팝송이 흘러나오는 라디오의 주파수를 끊어버리고 병실 문을 닫고 나왔다. 언니의 사연은 의식 너머에 반복적으로 재생될 것이다. 그리고 그 라디오가 켜지는 일은 다신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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