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나 Apr 11. 2024

팬티학계론

내 팬티가 전시될 때의 그 느낌은


   - 하필 못생긴 팬티를 입어버렸네, 이를 어쩐담.


   치마가 바람에 휘날렸다. 집에서 나온 지 10분 뒤에 깨달은 일이었고 다시 돌아가 갈아입기엔 마치 도서 대출반납일이 하루정도 연체된 시답잖은 일이었다. 지켰으면 얻었을 자그마한 성취감, 페널티는 크지 않은, 그저 개인적인 아쉬움이 남을 뿐이다. 현재 입고 있는 팬티는 민무늬의 상아색에다 허리와 허벅지의 포인트로는 연보라색이다.


   바람이 세게 불어 치마가 뒤집힌다거나, 지하철 계단 같은 곳에서 변태새끼가 보게 된다면 이내 풀이 죽어 실망할 것 같았다. 이 얼마나 비통한 일인가. 이쯤에서 분명히 짚고 넘어갈 점은 변태새끼의 쾌가 아닌 나 자신의 쾌를 위한 것이다. 톰 크루즈는 매번 폭발하는 비행기에서 성공적으로 탈출에 성공하고, 코난은 언제나 범인을 밝혀내는 클리셰적인 장면 연출이라고 해야 할까. 뻔한 장면에서 오는 어여쁘게 포장된 안정감. 귀여운 여성의 치마가 들춰졌을 때 보이는 팬티가 쭈그렁망태기의 칙칙한 할머니 같은 팬티라면 개인적으로 매우 절망적이다. 상상 속 장면의 완성도를 올리기 위해서라도 나는 열심히 노력하고 싶었다. 잘 보이지 않는 곳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아니, 잘 보이지 않은 곳이니 더더욱.



   

   하와이에서 사 왔던 파란색 줄무늬 패턴의 앙증맞은 하얀 리본이 달린 팬티를 입었어야 했을까. 치마가 아이보리 색이라 비쳤을 것 같다. 작년에 그를 위해 한번 사고 안 입었던 흰색의 티팬티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고 인스타 둘러보기에서 봤던 모델의 탐스러운 애플힙에 속아 샀던 회색의 레이스 티팬티도 괜찮았을 것 같다. 길거리 노판상에 펼쳐놓고 파는 아무 속옷을 가져다줘도, 치마 속에 있는 칙칙한 면 쪼가리보단 낫다는 판단이 섰을 때쯤, 지하철 플랫폼에서 열차가 철컹 소리를 내며 들어오고 있었다.


   물론 내가 권태로운 표정으로 앉아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건 아무도 모를 것이다. 맞은편 체크남방에 짙은 색의 바지를 입은 채 꾸벅꾸벅 졸고 있는 남자도, 오른쪽 뚱뚱한 갈색의 가죽 백팩을 끌어안으며 현란한 손놀림으로 캔디크러쉬 게임에 몰입하고 있는 남자도, 왼쪽 유행에 맞춰 가방에 치렁치렁한 키링을 단 여자도 모른다. 지하철이라는 공간은 철저하게 각자가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하는 곳이었고 나도 나의 역할을 수행하며 이동 중이다. 기간이 얼마 남지 않은 전시회를 보러 가는 길이다.


*


   팬티 쪼가리와는 다르게 작품을 볼 때는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는다. 작가의 말을 보면 이걸 만드느라 오 년이 걸렸다고 한다. 앞에 놓인 이 덩어리를 보니 미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걸 미련 덩어리라고 하나보다. 플라스틱의 커다란 고철 덩어리에다가 여러 색이 덧칠되어 있고, 그 안에는 복잡하게 붉은 끈으로 묶여 있었는데 알 수 없는 여러 소재를 가져다 쓴 것 같았다. 작품의 제목은 ‘희망’.


   부정적인 느낌이라도 들면 다행이다. 정말 무의 감각이 느껴질 때가 있다. 주변 관람객들은 이 작품이 멋지다며 원형으로 둘러싼 채 사진을 찍고 어떤 이들은 감탄사를 터트리기도 했다. 나 혼자만 우두커니 서있다. 내가 기이한 작품이 되었다. 그 작품을 멋있어하지 않는 유일한 작품이었다. 어디선가 보았던 연구결과가 생각난다. 영국 여성을 대상으로 한 조사였는데, 평생 동안 오르가슴을 한 번도 못 느껴보지 못한 여성의 비율이 40퍼센트에 육박한다는 내용이었다. 정말 슬픈 일이지 않은가. 그러니까 내 이야기가 말이다.


   주목받고 있는 이 작품 대신 내 상아색 팬티가 전시되어 있다면 어떨까 생각한다. 여러 해 입어 면이 닳아있고 아무 무늬가 없는 밋밋한 팬티. 구멍의 라인으로 연보라색으로 포인트색이 되어 있는, 어쩐지 초라해 보이는 심플함. 아래에서 위로 쏘아 올린 눈부신 조명을 받는다. 나는 밤마다 그곳에 가 다른 팬티로 교체하고 전시된 팬티를 입고 나올 것이다. 작품의 제목은 ‘a series of Panties’.


   궁금해졌다. 그때도 나는 내가 입었던 팬티가 걸려있는 작품에 대한 무감각을 느낄 것인지, 아니면 관람객들처럼 감탄사를 터트릴지, 그게 아니라면 평론가들처럼 날마다 바뀌는 팬티에 대해 작가의 정신감정을 내릴지 말이다.




이전 06화 매주 카페에서 마주치는 그녀에 대해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