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딸에게 알려주는 비밀
“딸, 힘든 거 있으면 엄마한테 다 털어놔도 돼.”
숙향은 소파 아랫목에 기대어 새우깡을 먹고 있는 딸에게 말한다. 딸은 멍한 눈빛으로 의미 없이 켜져 있는 티브이를 바라보며 고개를 천천히 끄덕인다. 티브이 속에는 선거철이라 그런지 한창 유세하고 있는 후보자들의 모습이 연신 나오고 있다. 숙향은 소파에 누운 채로 딸의 옆모습을 찬찬히 뜯어본다. 더 날렵해진 턱선과 쇄골, 전체적으로 몸에서 수분이 20%가 사라져 바스락 소리가 날 것만 같은 피부가 눈에 밟힌다. 숙향의 눈에는 여전히 어린양처럼 보였지만, 어느덧 누가보아도 어른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 분명 몇 달 전까지만 하더라도 생글생글 잘 웃고, 잘 먹던 아이였는데 엊그제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갑작스럽게 숙향의 집에 찾아온 딸의 얼굴은 반쪽이 되어 있다. 다이어트를 심하게 해서 그렇다는 딸의 말에는 선의의 거짓말이 잔뜩 숨겨져 있다. 딸이 제일 좋아라 하는 숙향의 고기반찬과 된장국에도 먹는 둥 마는 둥 몇 숟가락 떠서 먹고 내려놓았으니 말이다.
내일이면 다시 서울로 돌아간다는 아이에게 어떤 말을 건네줄 수 있을까 숙향은 고민한다. 먼저 물어보아도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알려주지 않을 게 뻔했으므로 숙향이 먼저 딸을 품어보기로 한다. 비극엔 더 큰 비극으로 묻어버리는 것이 숙향이 자신의 삶에서 배운 유일한 교훈 중 하나이다. 어떤 이야기를 건네줄지 과거를 되짚어보는데 얼마 채 지나지 않아 이야기 하나가 떠오른다.
“엄마가 재밌는 얘기 하나 해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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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향은 팔 남매의 여덟 번째로 태어난 막내로 살았던 동네에서 ‘예쁜이’로 통했을 만큼 어렸을 때부터 예쁘장한 얼굴로 인기가 많았다. 그중 둘째 언니와는 17살씩 차이가 났는데, 그 언니는 결혼을 일찍 해서 어린 자식들도 있었다. 숙향과 다르게 예쁜 외모를 물려받지 못한 둘째 언니는 그 자식들도 어여쁘지 못했었고, 자식들의 나이가 비슷한 탓에 숙향과 자주 비교를 당했다. 숙향 아버지의 사업이 망해 자식들의 집을 돌아다니며 살고 있었던 숙향 어머니와 숙향은 둘째 언니 집의 셋방에서 살았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방값을 내놓으라며 으름장을 놓았었다. 당시 숙향은 고등학생이라 큰돈을 벌기엔 무리가 있었기에 둘째 언니의 조카들 숙제나 과외를 해주면서 몇 푼 씩이라도 돈을 갚아나갔다고 했다. 어느덧 대학등록을 앞둔 시기, 당시 대학교 등록금이 55만 원이었다. 당장 내일모레면 등록금을 가져다줘야 하는 상황이었다. 숙향 어머니는 자식들과 함께 모은 곗돈에서 55만 원을 꺼내어 숙향의 등록금을 충당하려고 했었다. 그 소식을 들은 둘째 언니가 어느 날 숙향에게 찾아와 삿대질하며 머리를 툭툭 쳤다.
야 이년아, 니 주제에 무슨 대학이냐. 이년아, 그 돈 내놔라. 당장 돈이나 벌러 갈 것이지 뭔 대학 타령이냐.
그 모습에 화가 난 숙향의 엄마는 둘째 언니에게 큰 소리를 치며 숙향을 감싸주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둘째 언니는 다른 형제들과 다르게 고졸이었고, 대학 갈 형편이 되지 못하여 바로 돈 벌러 갈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었다. 자신보다 한참이나 어린, 본인의 자식과 매번 비교되는 어여쁜 얼굴, 고졸인 자신에 비해 대학입학을 앞둔 막냇동생. 그런 동생에게 핏줄의 농도는 옅어질 대로 옅어졌고, 둘째 언니 자신의 눈에는 오직 한 맺힌 자신의 억울함 뿐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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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거운 이야기를 가볍게 말하는 숙향의 모습에 딸은 놀라움을 자아낸다. 자신에게 벌어진 일은 숙향의 일에 비하면 정말 아무것도 아닌 이야기였으니까.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하려고 하면 눈물부터 쏟아져 나오는 본인과 다르게 숙향은 평소와 다름없는 표정으로, 또 어떤 부분은 이야기의 재미를 위해 과장하며 말하기도 하는데, 그런 모습이 오히려 지금까지 버티며 살아온 생에 대한 외침으로 다가온다.
이 세상엔 사연 없는 사람은 없다. 모두 각자만의 사연이 있고 그 심각성은 제각각 다르지만 깊이는 분명히 우물만큼 깊을 때가 있다. 딸은 비극엔 비극으로 덮어라는 말을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다. 숙향에게 연민의 감정을 느끼고 자신의 문제에 대해 조금은 흐려졌다고 생각한다. 이래도 되는 것인지에 대한 죄책감는 없다. 다만 위로를 받을 뿐이다. 이것이 숙향만의 위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