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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나 May 02. 2024

네 목의 점이 되고 싶어

우린 한 달 전에 헤어졌다

   남자는 반가운 듯 그리웠다. 아니, 그리운 듯 반가웠다는 게 좀 더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새어 나오는 웃음을 숨기기 어렵다. 힘들게 용기 내어 찾아온 여자의 노력을 알고 있다. 오면 반갑게 맞이해 줘야겠다는 마음가짐대로 그는 부드러운 미소를 장착한다. 비 내리는 어제의 날씨와는 상반된 살랑거리는 봄바람이 불어와 남자의 뻣뻣한 마음에도 조금은 부드러워지는 감각을 느낀다.


   남자와 여자는 한 달 전에 헤어졌다.


*


   남자는 언제쯤 올까- 하는 마음을 애써 무시한 채 재료를 준비한다. 하나둘씩 채워지는 칸을 볼 때마다 풍족함이 차오른다. 차곡차곡 마음의 양식을 쌓아가는 것처럼 정성을 채워나간다. 그리고 다듬을 부분이 있는지 꼼꼼히 살핀다. 여자의 발가벗은 몸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하나하나 다 뜯어볼 기세로. 로메인의 상한 부분을 뜯으며 그녀의 몸에 대해 생각한다. 어느 부위에 점이 있는지, 어떤 부위에 흉터가 있는지, 내밀한 관계여야만 알 수 있는 작은 타투 같은 것들. 그녀의 오른쪽 가슴과 목덜미 사이에는 버뮤다 삼각지처럼 구성된 세 개의 점이 다양한 크기로 구성되어 있다. 각각의 점 사이즈는 다 다르다. 점 하나하나마다 그녀의 특정 시기를 상징하는 듯하다. 제일 얇고 흐릿한 점은 최근에 생긴 점인 것 같았다. 형성해 나가는 느낌으로 여기서 멈출지 아님 더 진해질지 그건 알 수 없다. 오른쪽 아래에 조금 두꺼운 모양의 점은 남자를 만나기 훨씬 이전부터 있었던 점 같다. 아마 그녀가 어린 시절부터 아빠에게 손찌검을 맞았을 때부터라든지 말이다.


   여자가 문을 열고 가게 안으로 들어온다. 조금 어색한 미소를 띠며 자리에 앉는다. 올 때마다 앉는 자리는 바뀐다. 마치 메뉴를 하나씩 먹어보면서 판단하는 뷔페의 하이에나처럼. 저번주엔 창가 쪽 자리, 엊그제는 중앙의 왼쪽 자리, 오늘은 출입문과 가까운 자리에 앉는다. 오늘은 머리를 옆으로 모아 하나로 땋았다. 그녀의 헤어스타일도 매번 바뀐다. 어떤 기준으로 변화가 적용되는지 궁금하다. 그녀가 아침에 거울을 보며 머리를 만지는 모습을 그려본다. 머리를 묶었다, 풀었다 반복한다. 또는 길죽하고 납작한 기계로 폈다가 꼬았다가 반복한다. 마침내 그날 입은 옷에 가장 어울리는 머리가 완성됐을 때 그녀가 거울을 바라보며 싱긋 웃는 미소를 상상한다. 두터운 입술. 그 위에 걸린 보조개.


   주문서를 가져다주고 남자는 고민한다. 이른 시간이라 아무것도 먹지 못했을 여자를 위해 어떤 걸 내어줄지. 지난주에 산 초콜릿 하나를 꺼낸다. 음료와 마시면 궁합이 좋다. 견과류도 같이 꺼내든다. 작은 접시에 예쁘게 플레이팅 하여 가져다준다. 더 어색해하는 그녀의 표정이 남자에게 일정 목적을 달성한 듯한 희열을 느낀다. 그녀를 난처하게 했다는 사실이 남자에게 있어 기분을 상당히 좋게 만들어주었고 이는 그녀를 더욱 구석에 내몰리게 만들고 싶은 욕구를 자극한다. 쳐다보지도 못하게, 말도 하지 못하게. 하지만 그런 표정과는 반대로 행동은 자석의 극처럼 이끌려올 수밖에 없이 매일 이곳으로 저항없이 올 수밖에 없도록. 거부할 수 없는 끌림에 완패하도록 말이다.


   여자에게 카드를 건네주며 남자는 말한다. “머리 잘 어울려요.”

   남자에게 카드를 건네받으며 여자는 답한다. “초콜릿 잘 먹었어요.”


   주고받는 언어의 선물. 필요의 산물에 의해 나타나야만 하는 순간에 떠오른 말. 낯 간지럽지 않다. 그저 머릿속에 떠오른 말을 내뱉을 뿐이다. 그것이 긍정의 말이라면 더더욱. 여자가 가게를 나선 뒤 남자는 생각한다. 우리가 왜 헤어졌던 걸까. 정확한 이유는 없다. A라는 명확한 이유로 헤어진 것이라고 콕 찝어 말하기 어렵다. 이것을 앞에다 두고 논리와 전개를 펼칠 수 있는 연인들이 세상에 과연 존재할까 의심이 든다.


   문을 나서는 여자를 눈으로 배웅하며 남자는 생각한다. 당장이라도 달려가 네 손을 잡고 싶다고. 그리고 으스러질 정도로 꽉 껴안고 말할 거라고. 보고 싶었어. 그리웠고. 네 바뀐 머리를 쓰다듬어보고 싶었어. 가느다란 목에 내 얼굴을 묻어 네 체취를 맡아보고 싶었어. 그리고 말할 거야. 네 곁에서 힘이 돼주고 싶다고. 내가 널 보면 힘이 났듯이. 널 존중하고 싶어. 그리고 나를.


   네가 되고 싶어. 네 목의 점이 되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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