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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나 Apr 18. 2024

바코드적 망상

키스, 치실, 가글

<얘들아 나 다음 주부터 출근해! 엊그제 최종합격 문…>


어두컴컴한 방 안에서 핸드폰 화면이 연속으로 반짝거린다. 수현은 침대에 엎드린 채로 손을 뻗어 화면의 알람메시지를 눈으로 빠르게 흘겨본 후 다시 화면을 뒤집어엎었다. 깊은 한숨을 내쉬며 새우처럼 등을 굽혀 왼쪽으로 돌려 누웠다. 오랫동안 누워있으니 허리가 뻐근했다. 적막한 방에서 울려 퍼지는 소리는 수현 자신의 숨소리도 아닌, 벽시계의 초침소리뿐이었다. 오후 두 시 이십 분. 잠시 뒤면 아르바이트를 갈 시간이었다. 수현은 하루에 두 번씩 일어난다. 오후에 한번, 오전에 한번. 굳이 알람을 맞추지 않아도 새벽 여섯 시 반이 되면 눈이 절로 떠졌다. 요즘의 아침은 일찍 밝아오기 때문에 새벽 시간만 되어도 여러 새소리가 들린다. 멧비둘기의 울음소리밖에 몰랐던 수현은 이제는 박새, 울새, 직박구리 같은 도시의 새소리도 구분할 수 있게 되었다. 실제로 본 적은 없고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지만 길을 걷다 익숙한 소리가 들리면 새의 이름을 되뇌곤 했다. 그렇게 침대에 누워 창 밖 소리에 집중하다 보면 다시 깊은 잠에 빠지곤 했다. 어느덧 문득 정신이 들면 아르바이트에 갈 시간이 된다. 시간이 빠르게 흘러가는 감각은 수현에게 있어 싫으면서도 좋은 이중적인 감정이 들게 했다.


“삑- 삑- 처리되었습니다.”

수현이 새의 지저귐 다음번으로 많이 듣는 소리다. 주에 세네 번 정도 원하는 시간대에 신청하여 돈을 벌 수 있는 물류센터 아르바이트였다. 택배 상하차와는 다른 점은 수현처럼 아무런 특별한 경력이 없어도 누구나 할 수 있는 쉬운 업무였다. 화면에 나오는 개수에 맞게 상품의 바코드를 찍고 수량을 확인한 후 넘긴다. 그러면 또 다른 상품의 화면이 나온다. 단일 개수일 때도 있고 여러 개일 때도 있었다. 업무 초반에는 익숙하지 않아 단일 개수만 맡았지만 일 년째 하다 보니 이곳의 고인물이 되었고 여러 개의 복합 개수인 상품은 주로 수현이 맡았다.


주문한 고객의 상세한 정보는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수현은 고객이 주문한 상품의 리스트를 보면서 그 사람의 외모부터 시작해 구체적으로 바지폭, 머리 기장감, 손톱 모양 그리고 평소 말투까지 상상해보곤 한다. 지루한 업무과정에서 수현이 유일하게 좋아라 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오늘도 주문서가 천 개 넘게 들어왔고 수현은 천명의 사람을 멋대로 상상하곤 했다. 화면은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 새로운 주문정보가 수현의 눈을 통해 들어온다.


-덴티스테 치실, 가그린 구강청결제, 오뚜기 하프 마요네즈, 아침에좋은빵통밀100%, 바른곡물 무농약 오트밀


수현은 다섯 개의 상품이 제대로 배치되었는지 바코드를 하나하나씩 찍으며 주문자에 대해 구체적인 스케치를 그려본다. 치아에 문제가 있는 사람임에 틀림없다. 특정 부위에 과하게 신경 쓰는 사람들은 신경예민증을 앓고 있을 확률이 높다. 예민하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관리가 어려울 것이고 치석이 잘 끼는 구조일 것이다. 그리고 예전에 사귀었던 애인들 중 입냄새가 심했던 사람이 있었던 것이 분명했다. 그 사람과 혀를 섞을 때마다 헛구역질이 올라오는 와중에도 사실대로 말하긴 어려웠을 것이다. 혼자보다 둘이 낫다고 판단했겠지. 결국 육 개월 정도 만나고 헤어졌지만 그와의 관계에서 자신을 되돌아보는 교훈을 배웠을지도 모른다. 혹시 과거에 차였었던 수많은 이유 중 하나가 본인의 입냄새도 있었지 않았을까 하고 피해망상적으로 삶을 되돌아본다. 그런 가능성을 줄이고자 그때부터 입 안의 세균 박멸을 위해 집착했던 것이다. ‘하프’, ‘통밀’, ‘무농약’이라는 단어가 스쳐 지나가자 손톱이 되게 짧고 단정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키는 162센티미터에 몸무게는 평균적인 수준, 그리고 헤어스타일은 아마도…


“삑- 처리되었습니다.”

사람의 형상을 다 그려내기 전에 화면은 이미 다음페이지로 넘어가있었고 수현은 또 다른 주문자의 초상화를 그려나갈 준비를 했다. 수현은 바코드라는 검정 붓으로 하얀 페이지 위에 러프하게 스케치를 그려나간다. 여기서 지우개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게 수백, 수천 장을 그리면 퇴근시간이 다가온다.


아주 캄캄한 새벽이 다시 찾아왔다. 해가 다 뜨지 않아 새소리는 아직 들려오지 않는다. 창문을 살짝 열어놓으면 수현의 방보다 바깥세상이 더욱 적막했다. 종일 서 있어 종아리가 땅겨오지만 당장 잠에 들진 않아 이불을 뒤척인다. 사그락거리는 소리가 세상의 적막을 깰 듯이 크게 느껴진다. 배터리 충전을 위해 충전기를 핸드폰에 꼽는다. 반짝 거리는 화면 위로 새로운 메시지 알림 창이 수현의 시선을 뺐는다.


<공무원 시험 준비는 어때? 폴리텍 대학 같은 거 알아보…>

<우리 수현이를 위해 엄마 아빠가 생각해서 말하는 거…>

<너무 스트레스받지 말고. 밥은 잘 챙겨 먹고 다니…>


그렇게 쌓여가는 메시지는 983개가 되었다. 메시지 창이 1000개가 되는 날 수현은 생을 마감할 것이라고 정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하니 수현의 입가엔 편안한 미소가 그려졌고, 곧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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