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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름다움 Sep 03. 2024

[소설] 사고 싶어요, 매력_소민의 몸 (3)

<소민의 첫 번째 이야기>

https://brunch.co.kr/@beyonce1983/230




<소민의 두 번째 이야기>

https://brunch.co.kr/@beyonce1983/231





<세 번째 이야기>

소민의 몸_안소민 41세 도쿄 대학교 법학부 수석 졸업, 글로벌 자동차 회사 법무팀 최연소 팀장, 6살 아들 엄마




영어 유치원 중에서도 원비가 워낙 비싼 축에 속하는 곳이라 H 영어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들은 대부분 경제력이 어느 정도 이상인 집들의 자녀들이다. 물론, 이민이나 유학을 준비하는 집, 영어에 특출 난 재능을 가지고 있는 친구, 아이 교육에 올인하여 교육비가 생활비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가정, 부모가 모두 전문직이라 회사에서 자녀 교육비가 지원이 되는 집 등 다양한 케이스가 존재하긴 하지만, 사업을 하거나 건물이 있거나 조부모가 지원을 해주거나 하여 월에 250만 원은 족히 넘는 비용이 크게 부담되지는 않는, 경제적으로 풍족한 집들이 상당했다. H 원의 또 다른 특징 중 하나는, 부모의 참여와 지원이 필요한 행사나 일정이 자주 있는 편이라 부모들 간의 만남이 꽤나 있다는 것이다. 소민은 남편과 번갈아 가며 연차를 내어 참석하거나 해외 출장이 잡혀 있거나 하여 정 여의치 않을 때는 소민의 엄마가 그녀를 대신하여 참석하였다. 자연스레 플레이데이트(Play date, 부모들끼리 잡는 자녀들의 놀이 약속)가 늘어나면서 개인적인 이야기를 나누며 친분을 쌓아갔다. 마흔 한 해를 살아오며, 중고등 학창 시절, 일본에서 유학하던 시절은 물론, 회사에서도 소민은 가장 부유한 측에 속했다. 나이가 들수록, 그리고 시우가 커갈수록 삶에서 경제적인 부분이 차지하는 게 크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그런 소민에게 시우를 통해 만나게 된 H 영어 유치원의 엄마들 특히, 자기보다 훨씬 부유하고 여유로운, 대한민국 경제력 상위 1% 정도에 속할 법한 이들과의 만남은 무척 색다른 경험이었고, 만남이 거듭될수록 중학교 시절부터 회피해 왔던 열등감이란 감정이 스멀스멀 피어오르 시작했다.






입소하기부터 하늘에 별 따기라는 이 H 영어 유치원의 입학 테스트를 최고 성적으로 통과한 시우는, 원에서 매달 열리는 'Speaking & Presentation Top'에서도 부동의 1위를 유지 중이라 시우네 Stanford Class 엄마들 사이에서는 이미 유명 인사였다. 엄마들의 관심이 시우와 소민에게 꽤나 집중되어 있음을 알기에 오늘 있을 세 번째 부모참여 수업은 더욱더 신경이 쓰였다. 룩(look), 태도, 매너 등 모든 면에 있어 최상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기에 스타일링에 심혈을 기울였다.



오전 8시 45분, 영어 유치원 셔틀에 탑승한 시우에게 두 시간 후에 만나자고 말하며 유리창으로 온갖 손 하트를 만들어 보낸다. 부모 참여 수업에 입고 갈 의상은 미리 다 세팅을 해 두었다. 메이크업과 머리만 하면 된다. 나이가 들수록 옷, 가방, 액세서리도 중요하지만, 투명하고 반짝이는 피부와 헤어 스타일이 외모에 미치는 영향력은 나날이 커진다. 고급스럽고 부티가 나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피부와 머리 결이 좋다. 소민은 담당 헤어 디자이너인 현정 실장에게 양해를 구해 기존 근무 시간보다 이른 시간으로 예약을 해 두었다. 가뜩이나 볼륨이 없어 신경 쓰이던 정수리 부분의 머리숱이 최근 들어 더 줄어든 듯한 느낌에, 이마도 M자 형으로 넓어지고 있는 것 같아 거슬리기 시작했다. 환갑이 지난 엄마, 아빠 모두 머리 숱이 풍성하기에 유전적 요소는 아닌 것 같은데 생각해 보니 학창 시절부터 가늘고 숱이 없었다. 그래서 친구들과 외출할 때면 모자를 착용하기 시작했다. 피부과와 두피센터를 다니고 있기는 하지만 드라마틱한 효과는 아직이다. 소민의 담당 헤어 디자이너 현정 실장은 그녀가 원하는 포인트를 아주 잘 살리는 실력자라 예약이 어렵고 비용도 꽤 비싸지만 몇 년째 단골이다.  






“소민 님, 요즘 스트레스 받으시는 일 있으신 가 봐요.”

“… 왜요?”

“전보다 두피 상태가 안 좋아지셨어요.”

“그래요?”

“정수리 부분 머리카락이 많이 가늘어졌어요. 두피에 열감도 있고 염증도 살짝 올라왔어요.”

“두피 케어 프로그램 바로 할 수 있나요?”

“네. 잠시 만요.”



드라이와 스타일링만 할 예정이었는데 두피케어까지 추가했다. 그래도 역시 현정 실장의 센스는 최고다. 오늘의 TPO에 딱 떨어지게 세팅해 주었다. 소민이 고심을 거듭한 끝에 선택한 아이템은, 연한 핑크 빛이 도는 이자벨마랑 니트(132만 원), 다리를 길어 보이게 해주는 코스의 화이트 하이웨스트 슬랙스(18만 원), 고급스러움을 살릴 에르메스 벨트(140만 원), 단정하면서 세련된 룩에 캐주얼함을 한 스푼 더해 줄 디올 북 토트 (470만 원), 짧은 목에도 잘 어울리는 빈티지 알함브라 펜던트 (414만 원), 키 높이 구찌 스니커즈 (122만 원)이다.



스타일은 한 끗 차이라는 유명 스타일리스트의 조언대로 스팀다리미로 화이트 슬랙스도 미리 쫙 다려 입고 나왔다. 럭셔리에서 본 코디 그대로를 구매했기에 착장 아이템 몇 개만 합쳐도 이미 천만 원이 훌쩍 넘지만, 스타일만 보자면 옷 잘 입기로 유명한 셀럽들도 극찬한 아이템들이기에 보장이 된 것들이었다. 고급스러운 아이템, 세련된 스타일링, 그럼에도 소민이 그토록 보여지길 원하는 귀티나 우아함은 배어 나오지 않았다. 애석하게도 묘하게 촌티가 흘렀다. 무엇 때문일까. 소민의 키? 피부과를 그렇게 다녀도 지긋지긋하게 따라다니는 입 주위의 트러블? M자 형 이마를 가리기 위한 헤어 스타일? 가지런하지 않은 치열? 사실 교정을 했어도 진즉 했을 소민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잇몸은 타고나기를 매우 약했다. 그녀의 엄마를 닮은 탓에 여러 군데 유명하다는 치과를 다녀 봤지만 기능상의 문제가 없으니 일단은 지켜보자는 답변이 돌아왔다. 래미네이트를 할까도 생각해 알아보았지만 일본에서의 유학, 한국에 귀국해서는 취업, 한창 일하면서 출산까지 하다 보니 세월이 훌쩍 지나 있었다.  






“Jason, 오늘도 정말 잘하던데요. 집에서 영어는 어떻게 봐주세요?”

“저랑 남편이랑 퇴근하면 영어 책 읽어주고 있어요.”

“회사 일도 바쁘실 텐데 대단하세요."

“많이는 못 읽어줘요. 대신 집안일은 뭐 이모님이 다 해 주시니 저는 시우 숙제만 봐주는 거죠.”

“아 그때 좋다고 하신 시터 이모님..?

“네, 정말 너무 좋으세요.”

“Eric 말로는 Jason네 영어 책 선생님? 오신다고...?

“아… 영어 책 읽어 주는 선생님이 오세요.”

“매일 오세요?”

“아니요, 주 3회요.”

“어때요, Jason이 잘 따라가죠?"

“영어 책 읽고, 읽은 내용들 관련해서 어휘랑 표현 정리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수업이에요. 선생님이 꼼꼼하게 잘 봐주셔서 그런지 시우도 좋아해요.”

“우리 Eric은 매일 숙제하는 것 만으로도 힘들어해요. 저도 그래서 자꾸 잔소리하게 되고."

"저도요, 진짜 할 게 왜이리 많은지, 저녁 먹고 하면 졸려해서 그 전에 하려고 하는데 쉽지 않아요."

"Harvard 반 Julie 도 영어 책 선생님 수업 시작한다고 그러던데, 같은 선생님인가? 유명하신 분이라고."

“선생님은 어디서 알아보셨어요?”

“소개도 받았고요, 제가 아파트 카페에서 알아본 분들도 있었는데 상담하고 시우랑 잘 맞을 것 같은 선생님으로 결정했어요."

"Jason은 야무져서 좋겠어요."

"원 숙제 같은 건 알아서 하는 편이긴 해요.^^"

"와 진짜 부러워요."

"연락처 필요하시면 알려주세요.”

“어머. 감사해요.”

“저도 알려 주세요.”






다양한 분야에 박학다식한 소민과 대화를 할수록 상대는 주옥같은 정보들을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딱 그뿐이었다. 대화를 통해 소민에 대한 호감이 깊어지거나 그녀에 대해 더 알고 싶다거나 궁금하다는 마음은 쉽사리 들지 않았다. 그녀가 풀어놓는 정보 중에는 네이버에 떠돌며 무한 재생산되는 흔해 빠진 정보가 아닌, 고급 정보들도 꽤 있었기에 그녀와의 대화는 어째튼 무언가를 건질 수 있는 시간임에는 분명했고 그래서 때로는 고마웠지만, 대화 자체가 편하거나 즐겁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정보 제공자로서의 소민이 아닌, 소민이라는 사람 그 자체에 대해서는 신묘하게도 끌리지가 않았다. 끌리는 마음, 그 사람에 대해 왠지 더 궁금해지는 마음, 소민에게는 결정적으로 이 것이 부족했다. 그녀 자신도 본능적으로 알아서였을까? 소민은 사실 엄청난 노력 파였지만 남들에게는 타고나기를 똑똑하고 유능한 잘난 모습으로만 비춰 지기를 바랐다. 그 모습을 위해 평생을 피나게 애쓰며 살았다.



한, 중, 일 중 가장 아담한 사이즈인 일본 여성의 평균 키는 158cm. 157cm 그녀의 키는 일본에서도 작은 축에 속했지만 비율이 좋았기에 실제 키보다 커 보였다. 그럼에도 소민은 키에 대한 콤플렉스가 상당했다. 하지만 입 밖으로 키에 대한 자격지심을 꺼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작은 키에 살집까지 있는 건 스스로 용납할 수 없었기에 소민은 몸매 관리에 필사적이었다. 트렌드에 민감한 그녀답게 크로스 핏, 필라테스, 골프, 테니스, 클라이밍, 발레, 번지 피비오, 바레(발레+필라테스) 등 유행하는 여러 종목의 운동을 배웠고, 생활 체육인치고는 각 분야에 상당한 실력을 갖추게 되었다. 역시 소민이었다.





to be continued










[사진 출처: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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