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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림 May 28. 2024

우선 불합격을 통보받았지만, 출근하게 되었습니다.

"해림 씨는 묘한 매력이 있어요. 그래서 자꾸 홀린 듯이 이야기를 듣게 돼요"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는 길에 들은 말이다. 나대지 말라고 마음에 속삭이지만 어째서인지 설레발이 빼꼼 고개를 내민다. 이번에는 예감이 좋다. 벌써부터 합격하면 어떤 이야기를 써 내려갈지 기분 좋은 고민에 쌓인다. 




지난 화요일 친구와 노래방에서 열창을 하던 중 1차 서류 합격을 했다는 문자를 받았다. 친구에겐 미안하지만 문자를 보고 더는 친구의 노래가 귀에 들리지 않았다. 인터뷰 일정을 마무리하는 와중에 노래가 끝났고, 왜 이리 노래가 짧냐고 물었지만 친구의 대답은 의외였다.


"이 노래 엄청 긴데?" 



인터뷰는 바로 다음 날에 잡혔다. 문자를 뒤늦게 확인해 부랴부랴 예약창에 들어갔지만, 이미 좋은 날은 예약이 끝난 후였다. 그래 매도 먼저 맞는 게 낫지, 안절부절 마음 졸이며 한 주를 보낼 바에 빨리 끝내고 결과를 기다리자. 좋은 소식에 긍정적 마인드를 발휘하는 건 쉬운 일이다.



인터뷰 당일, 

심장이 떨리고, 무언가에 집중하기 어려웠다. 이것은 불안인가 설렘인가. 이 상태가 무엇인지 정의하는 건 오로지 나의 몫이다. 나는 설레기로 선택했다. 그래, 이건 불안이 아니야. 미지를 경험하기 전 찾아오는 설렘이자 신남이야. 


그럼에도 주체 못 하는 설렘을 잠재우기 위해 두 눈을 감고 두 손을 모았다. 그리고 신께 기도했다.


'신이시여, 좋은 결과가 있길 바랍니다. 그러나 내가 생각한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고 그것이 나쁜 결과는 아니라고 믿습니다. 다만 당신의 인도하심이 있길 바랄 뿐입니다.'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한 시간 정도 일찍 도착해 근처 카페에 앉아 공자의 <논어>를 읽었다. 

책의 한 대목에서 초조함에 대한 내용이 나왔다. 요지는 초조함은 정상적인 상태이며, 우리가 멀리해야 할 것은 초조함 그 자체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인정하지 않는 태도라고 했다. 책의 조언대로 나는 다음의 문장을 손으로 써 내려갔다.


내가 지금 초조해하는 건 정상이야. 공자도 겪었던 일이잖아!


인터뷰가 시작되었다. 면접은 상당히 편한 분위기로 흘러갔다. 잘 보이려고 하기보다 솔직한 내 이야기를 전했다. 부족함을 꾸미지 않았고, 완성되지 못한 부분을 억지로 채우지 않았다. 그저 현재의 내가 쓸 수 있는 최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리고 묘한 매력을 가졌다는 말과 함께 그곳을 떠났다.




시간이 흘러 결과 발표 날이 되었다. 이런 날은 괜히 눈이 일찍 떠진다. 밥을 먹고, 할 일을 해도 시간이 느리게 간다. 그러다 직감이 초인적인 힘을 발휘한다. 곧 어떠한 연락이 올 것 같다는 설명불가한 느낌이 든다. 


지잉-


문자가 왔다. 그토록 바란 문자이지만 쉽사리 확인하지 못한다. 그만큼 기대했다는 뜻이겠지. 화면을 통해 미리 볼 수 있는 내용 중 유독 한 단어가 튄다.  


[우선]


우선이라. 묘한 기분이 든다. 반전을 내포하는 단어에 마음을 비운다. 가볍게 누른 문자에는 예상된 결과가 쓰여있었다. 마음이 차분해진다. 


'그래 이번에도 나와 그들의 니즈가 달랐던 거야.' 라고 정답을 생각한다. 그러나 누적된 복수 정답은 괜한 오해를 피어오르게 한다. 혹시 내가 부족한 건 아닐까, 나를 포장해야 했던 건 아닐까. 


마치 도르마무와의 거래를 시도하는 닥터 스트레인지처럼 나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나는 또다시 어딘가를 지원할 테고, 그 결과를 기다리겠고, 면접을 보겠고, 또 결과를 기다리겠지. 근데 이번엔 변칙이 발생했다. 면접 불합격을 통보받은 그날 아주 우연한 계기로 영상 편집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게 되었다. 당장 이번 주 금요일부터 시작이다. 


이럴 때마다 생각한다. 

다만 앞으로도 당신의 인도하심이 있길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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