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어릴 때 자주 구워주던 갈치를 가격이 비싸졌다는 이유로 둘째에게는 많이 해주지 못했다. 미안한 맘에 쿠팡으로 장을 보며 손질된 냉동 갈치와 임연수를 구입했다. 냉동이라 그런지 구웠는데 맛이 별로다. 양념이 들어간 조림을 해서 먹으면 좀 나으려나 싶어 한 번도 해보지 않은 갈치조림에 도전했다.
레시피 검색에 들어갔다. 한번 쭉 읽어보니 양념도 들어가는 채소도 간단하다. 가장 중요한건 생선 손질인데 이미 손질된 생선을 사서 그 부분은 패스다. 손질되지 않은 생물 갈치일 경우는 지느러미를 깔끔하게 정리하고 내장도 제거해서 깨끗이 씻어 준비하면 된다.
채소는 무와 양파를 준비한다. 무는 큼직하게 썰어서 냄비 바닥에 쭉 깔아준다. 그 위에 깨끗이 씻어 준비한 갈치를 올려준 후 채 썬 양파를 갈치 위에 올려준다. 차곡차곡 정리하듯 쌓아준다. 물은 재료가 찰랑거리고 보일 정도로 넣어준다.
가장 중요한 양념을 넣을 차례다.
우리나라 음식은 기본양념이 거의 비슷하다. 고춧가루, 다진 마늘, 설탕, 간장, 참치액젓_ 기본양념으로 간을 해주고 다진 생강이 있으면 조금 넣어주면 끝이다.
요리를 하며 기본 양념장을 만들어 보니 끓이는 요리에는 참치액젓을 넣고, 겉절이나 샐러드의 소스로 사용할 때는 멸치액젓이 깔끔하고 좋았다.
가스레인지에 냄비를 올리고 강불로 조리를 한다. 보글보글 끓기 시작하면 10분정도 더 강불로 조리를 하고 중간불로 줄여준다. 뚜껑을 닫고 중간 불에서 10~15분 정도 더 끓이며 양념이 갈치에 잘 베도록 졸여준다. 양념이 자작하게 졸아서 갈치와 무에 간에 벤 상태가 되면 불을 약불로 줄여 5분 정도만 더 둔다. 갈치와 무를 뒤적거리지 않아도 간이 잘 벤다. 여기서 뒤적거리는 순간 갈치조림은 폭망한다. 연한 갈치살과 무가 다 부서질 수 있으니 불 조절만 잘 해서 갈치조림을 마무리하면 된다.
퇴근을 하고 온 남편은 맛있는 냄새가 난다며 메뉴를 궁금해 했다.
“뭐야?”
“갈치조림 해봤어. 지난번에 구웠는데 맛 별로였던 갈치로 조림 했어. 양념 맛에 구이보다는 낫겠지?”
큰 접시에 갈치와 무를 넉넉하게 담아내고 따뜻한 밥과 함께 맛을 봤다.
“어머, 무가 살살 녹는다. 내가 했지만 너무 맛있는데…….”
“정말 맛있다. 구이보다 훨씬 낫다.”
“서현아, 안 매워. 먹어봐, 정말 맛있어.”
학원에 간 첫째를 빼고 세 식구가 큰 접시에 담아낸 갈치와 무를 깨끗이 해치웠다.
늦게 학원에서 온 아들에게도 갈치조림을 담아 주었다.
“이거 뭐야?”
“갈치조림이야. 무랑 갈치 먹어봐. 정말 맛있어.”
“어, 나 갈치 가시 발라 먹기 힘든데…….”
“아빠가 해줄게 먹어봐.”
뒤늦게 혼자 밥을 먹는 아들 앞에 앉아 갈치 가시를 발라주는 아빠 덕에 아들은 순식간에 밥 한 공기를 해치웠다.
우리 집에서 생선을 먹을 때면 생선의 가시는 다 남편이 발라준다.
생선에서 가시를 뺀 살 부분만 먹기 좋게 발라서 식구들 밥 위에 올려준다. 결혼 초에 아이들이 없을 땐 나에게만 해주니 본인 입으로 들어가는 생선살이 많았지만 지금은 아이들과 나에게까지 다 주고 나면 정작 본인은 맛있는 생선살을 얼마 먹지 못한다. 참 자상하고 착한 아빠라는 생각에 늘 고맙다.
가부장의 끝판왕인 친정아버지만 보다 결혼해서 이런 남편의 모습을 보니 처음엔 낯설었다.
어릴 때 우리 집은 엄마가 다 했어서 이런 모습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엄마와 자식들을 시녀 부리듯 물 한잔도 가져오라고 하는 분과 살다 남편을 보았으니…….
‘세상의 중심은 나’ 라는 마인드로 사신 분이고, 가족들에게도 그렇게 대하다 보니 가족 모두가 불편해했고 자상한 아버지는 드라마나 영화에 나오는 다른 세상에 존재하는 사람인줄 알았다. 그런데 남편이 아이들에게 하는 모습을 보면 현실에도 존재하니 복 받은 아이들이다. 자상한 아빠와 좋은 관계를 맺고 자란 아이들이 자존감이 높다니 우리 아이들은 자존감이 꽤나 높지 않을까 싶다. 아이들은 이런 아빠가 당연하다 생각하겠지?
결혼하고 시간이 오래 흐르다 보니 생선의 가시를 발라주는 남편의 모습이 지금은 익숙해졌다. 아이들에게 가끔 이야기한다.
“너넨 좋겠다. 자상한, 착한 아빠 있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