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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니운랑 Jun 29. 2024

어버이인 나에게도 어버이가 계신다

소망 하나

5월 8일 수요일


오늘은 어버이날이다.

아이들이 유치원, 초등학교 때는 수업시간에 만들어온 카네이션과 카드 선물, 안마쿠폰 등을 선물로 받았다. 중학생 때도 편지 한 장정도는 선물로 안겨주더니 이번엔 고등학생이 된 첫째 아이가 빈말로 

"엄마, 뭐 선물 받고 싶은 거 없어?" 하고 물어본다.

그래서 난 당당히 "너의 100점짜리 시험지~"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아~ 내 존재 자체가 선물이라고~"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ㅋㅋ

아이가 능청스러워졌다. 어릴 때 소심했던 아이라 그런 능청스러움마저 왠지 어른이 되어서 세상을 헤쳐나갈 수 있는 하나의 능력치가 되어 줄 것 같아 안심이 되고 밉지가 않다.


둘째 아이는 학교에서 2박 3일 수련회를 갔다. 자기들이 없어주는 것이 최고의 어버이날 선물이란다. 휴식의 시간인가? 하루종일 조잘조잘거리는 아이가 없으니 집안이 너무 조용하고 고요하고 적막하다. 옆에 없으면 허전하고 옆에 있으면 극 ISTJ인 나에겐 너무 과하다. 기가 쏙쏙 빨리는 기분이다.


나도 양가 어머니, 아버지께 오랜만에 전화를 걸었다. 용돈은 지난 주말에 이미 계좌이체를 했다.

친정 엄마에겐 시도 때도 없이 전화를 거는 편인데 친정 아빠에겐 드문드문이고 시어머니껜 가끔 생각날 때 그리고 시아버지껜 특별한 일이 있을 때만 연락을 드린다. 양가 부모님과 만나는 건 서울과 부산이라는 우리나라에선 제법 먼 거리에 살고 있기에 추석과 설날 그리고 간혹 방학이 전부다. 가끔 친인척 경조사가 있으면 그곳에서 대면을 하기도 한다. 난 내가 서울에 살게 될 것이라곤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친정 엄마 옆에 평생 살 줄 알았다. 그러던 내가 결혼을 하고 무려 서울살이라니... 신혼을 경기도 군포에서 2년을 보냈고 서울에 산지도 15년이 넘었음에도 아직까지 믿기질 않는다.


친정 엄마와는 전화로 아무 이야기나 한다. 정말 일상적인 이야기다. 하지만 시아버지와는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 모르겠다. 결혼한 지 거의 만 18년이 다되어가는데도 어색하다. 말을 하다 보면 흐름이 막히고 자연스레 이어지질 않는다. 전화를 걸 때마다 선뜻 망설여지고 마음은 '친정 아빠랑 같아. 아무 이야기라도 길게 하자.'를 되뇌지만 언제나 처음은 "식사하셨어요? 건강하시죠?"이고 그 이후는 아무 말 대잔치다. 그러다 말문이 막히면 "아이들 바꿔드릴까요?"하고 전화기를 아이들에게 넘겨버린다. 시아버지께서 나보고 뭐라 하시는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항상 어러운지 모르겠다. 알고 지낸 지는 오래지만 직접 만나 쌓아온 세월이 없어서인지, 아님 아무리 잘해도 시댁인 건지, 아버님도 나와 같이 서로 서먹서먹이라 전화를 끊고 나면 항상 멋쩍다.


서울에 막 올라왔을 무렵에는 아이들이 20살이 되고 남편이 퇴직을 하면 부산에 가서 살아야지 생각했는데, 이젠 부모님께서 서울 인근으로 올라와서 같이 살았으면 좋겠다. 그렇다고 한 집에 살거나 너무 가까운 거리는 사양이다. 하지만 보고 싶을 때 부담 없이 가서 만날 수 있는 적당한 거리를 늘 갈망한다. 그리고 나 역시도 아이들과 그 거리에서 살고 싶다. 남편과 결혼하고 아무도 없는 서울에 단 둘이 올라와서 아이 둘을 키우며 산다는 것이 아닌 척 해도 힘들고 외로웠던 모양이다. 그래서 그 시간들이 나도 모르게 가슴속에 겹겹이 쌓였나 보다. 그렇다고 부모님께 그동안 쌓아놓은 터전과 인맥을 버리고 내 곁으로 와주세요도 너무 내 생각만 하는 이기적인 욕심이다. 친정부모님이 아닌 시부모님께서 서울로 올라오셔도 괜찮을 것 같지만 나와 같이 혈혈단신으로 결혼 후 두 분만 구미에서 부산으로 가신 친정부모님과는 달리 시부모님께서는 같은 지역에 형제자매들이 많이 살고 계셔서 서울이나 경기도로의 이사는 전혀 현실성이 없다.


나도 나이가 더 들고 부모님께서도 연세가 더 많아지시면 서로 건강하게 긍정적으로 의지하며 함께 살아가는 멋진 그림과도 같은 일들이 이루어질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부디 그렇게 되길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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