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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글에 이어서-!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내가 하고 싶은 것과 현실 사이 괴리 때문에 괴로웠다. 예를 들어 서울국제도서전에 가려 얼리버드 티켓도 사고 근처 호텔과 오가는 기차표까지 미리 예약해 뒀는데 입덧 때문에 취소했다. 서울일러스트레이션페어와 불교 박람회, 츠타야 서점 팝업 행사도 못 갔다. 일본 여행에서 가장 좋았던 츠타야 서점이 국내에 온다길래 기대가 컸는데 결국 씁쓸하게 집에서 구경만 했다. 그래도 그땐 '다들 입덧 끝나면 태교 여행하니까 나도 좀만 참자. 올 가을엔 오키나와나 다낭 가야지.'같은 희망이 있었지만 곧이어 찾아온 환도 통증으로 가까운 교외 나들이조차 어려워졌다. 야구도 마찬가지. 대전에 내려왔으니 올해는 어느 때보다 직관을 자주 갈 줄 알았는데.. 새로 생긴 구장 구경도 못 해봤다. 꼭 여가가 아니어도, 가까운 서점의 북토크에 참여하거나 집에서 온라인으로 뭐라도 배우면 좋으련만 한 시간만 앉아있어도 꼬리뼈가 격렬한 시위를 벌인다. 그러니.. 다 내려놓았다.
이참에 생각도 고쳐 먹었다. 언제부터 임신하면 태교 여행 가는 게 당연한 문화였나. 이런 몸으로 직장에 다니는 사람도 있는데(세상의 모든 워킹맘을 존경합니다..), 심지어 첫째, 둘째 아이를 육아 중인 임산부들도 태반이다. (세상의 모든, 아이를 둘 이상 낳은 여성을 존경합니다..) 그에 비하면 아플 때 바로 누울 수 있는 내 처지는 나은 편이다. 츠타야는 무슨 얼어 죽을 츠타야. 복에 겨운 소리 말고 포기하자.
뭘 해보겠다고, 어딜 가보겠다고 기대 가득한 채로 준비했다가 실망하느니 애초에 다 내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쪽이 훨씬 편하다. 여행, 박람회, 팝업스토어, 야구.. 한동안 없는 셈 치기로 했다. 요즘엔 SNS도 일부러 가려서 본다. 아쉬움이나 부러움이 느껴질 만하면 처음부터 싹을 자른다. 비록 트렌드엔 좀 둔감해질지언정 이게 낫다. 알랭 드 보통의 <불안> 속 한 구절이 유독 와닿는 시기다.
제임스의 방정식은 우리의 기대 수준이 높아지면 수모를 당할 위험도 높아진다는 것을 보여준다. 우리가 무엇을 정상이라고 생각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행복이 결정된다. ...(중략)...
이 방정식은 우리의 자존심을 높일 수 있는 두 가지 방법도 암시한다. 하나는 더 많은 성취를 거두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성취하고 싶은 일의 수를 줄이는 것이다. 제임스는 두 번째 방법의 장점을 지적한다.
"요구를 버리는 것은 그것을 충족시키는 것만큼이나 행복하고 마음 편한 일이다."
이 부분을 나는 이렇게 해석했다. 행복은 소유와 성취를 욕망과 기대로 나눈 값이라고. 그러니 행복해지려면 두 가지 방법이 있다. 많이 갖고 많이 이루거나, 적게 욕망하고 적게 기대하거나. 최근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후자로 살게 되면서 정말이지 작은 걸로도 행복을 느끼게 됐다. 심지어 약간 후련하기도 하다.
(또 한 가지 장점, 이 와중에 의외로 쉽게 놓아지는 것과 그래도 절대 포기 못하는 것이 구분되면서 나 자신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됐다.)
노잼으로 살수록 작은 일에도 쉽게 재미를 느낀다. 기막힌 역설이다. 살면서 특별한 추억을 꼽아보면 이상하게 인생 암흑기가 떠오른다. 척박하고 괴로운 와중에 찾아오는 찰나의 즐거움은 유독 진하게 남기 때문이다.
고3 수험시절 나는 분명 우울했고 불안했다. 그런데 야자 시간에 옆자리 친구와 은밀하게 나누는 대화는 참으로 진솔했고 이어폰을 숨겨 몰래 듣는 라디오가 그렇게 재밌었다. 교실 창가 커튼 속에 숨어 친구와 나눠 먹던 성심당 부추빵, 급식실 시그니처 메뉴 스팸김치볶음밥, 학교 옆 편의점에서 급하게 해치운 불닭볶음면의 맛은 시간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다. 같은 메뉴도 지금은 그 맛이 안 난다. 저녁 시간 학교 주변을 산책하며 나눴던 수다와 장난은 또 어찌나 웃겼는지. 임용고시 때는 정신과 약을 꾸준히 복용할 정도로 상태가 가관이었다. 그런데도 도서관에서 아이돌 영상을 보면 그보다 짜릿할 수가 없었고 BTS와 오마이걸의 노랫말이 나의 심금을 휘저었다. 학생회관 편의점에서 먹는 핫도그는 뒤집어지게 쫄깃했고 알바생의 소스 뿌리는 솜씨가 가히 예술이었다. 한겨울에도 맥주 한 캔을 들이켜면 무지하게 시원하고 개운했다. 크리스마스에 룸메이트와 방바닥에서 오돌뼈를 먹으며 본 영화는 내 인생 영화가 되었다.
요즘도 비슷하다. 단조로운 일상 틈으로 간간히 끼어드는 낭만이 무척 귀하고 감사하다. 저녁 먹고 산책하며 하늘을 보는 게 하루의 낙이다. 노을로 짙게 물든 여름 하늘도, 일찌감치 별이 보이는 가을 하늘도 저마다 매력이 있다.
아침 루틴을 끝냈을 때, 몰입해서 글 쓸 때, 요가 수업을 무사히 마칠 때면 뿌듯하다. 별 것도 아니지만 지금 몸으론 힘에 부치니까 다 하고 나면 마치 산 정상까지 등반한 듯한 성취감이 든다.
아파서 온종일 누워있던 어느 날, 침대에서 소설책 한 권을 단숨에 읽은 적이 있다. 책 자체는 그저 그랬지만 독서 삼매경에 빠진 게 무척 오랜만이라 인상 깊은 하루가 되었다. 즉석으로 다녀온 전주 여행도 좋았다. 거의 숙소에 누워있다가 밥 때 되면 맛집에 가는 게 전부였지만, 다 맛있었다. 차에서 허겁지겁 먹은 찐빵 맛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 미친 찐빵 덕분에 여행에 대한 갈증이 한결 해소됐다.
지난번엔 처음으로 동네 수영장에 갔다. 관절 통증으로 고생하는 내게 병원에서 권한 유일한 운동이 물속에서 걷기였기 때문이다. 수영장에서 걷기만 해도 되나, 남들 눈에 이상해 보이진 않을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맨 끝 레일이 아예 걷기 전용이었다. 할머니들로 가득한 그곳엔 암묵적인 규칙이 있었다. 한 줄 혹은 두 줄 서기, 끝까지 가면 다 같이 뒤 돌기 등. 각자 온갖 이야기꽃을 피우는 와중에도 걷는 속도나 방향은 묘하게 각이 잡혀있었다. 나는 능숙한 할머니들 뒤를 겸연쩍게 쫓아가며 수다를 엿들(을 수밖에 없)었다. 물속에선 정말이지 몸이 가볍고 관절도 멀쩡했다. 가슴팍은 시원하고, 움직임은 자유롭고, 앞에선 실시간 팟캐스트가 솔솔. 한여름의 낙원이 따로 없었다.
나중에 올해를 돌이켜보면 이런 소소한 순간이 떠오를 것 같다. 누워서 읽은 책, 할머니들과 걸은 수영장 같은. 자기 전 튼살 크림을 발라주는 남편의 부드러운 손길과, 집에 찾아와 주는 고마운 친구들이 두고두고 생각날 것이다. 그때 가면 하늘을 볼 겨를이 없고 전주 여행은 시시하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그러니 지금이어서, 지금만 누릴 수 있는 '소확행'을 소중히 하기. 아쉬워하고 부러워하는 대신 즐겨버리기.
다음 글에 이어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