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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70. 그들이 눈물을 흘리지 않는 까닭은?

- 〈마더 테레사〉 & 〈말아톤〉

by 김정수

C70. 그들이 눈물을 흘리지 않는 까닭은? - 파브리지오 코스타, 〈마더 테레사〉(2005) & 정윤철, 〈말아톤〉(2005)

실존 인물, 그리고 눈물

〈마더 테레사〉와 〈말아톤〉의 공통점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실존 인물을 소재로 하고 있다는 점이고, 또 하나는 주인공이 결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이 두 번째 공통점에 이 두 영화가 표명하는 주제의 가장 중요한 측면이 걸려 있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눈물 따윈 필요 없어

먼저 〈마더 테레사〉입니다.

이 영화에서 우리는 그간 귀동냥으로 들어 익히 알고 있는 테레사 수녀(올리비아 핫세)의 모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낯선 것은 하나도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영화 〈역도산〉(2004, 송해성)의 대사를 흉내 내어 표현하면, 마더 테레사야말로 명실상부한 ‘세계인’인 것입니다.

하지만, 단 하나 우리가 아무리 눈여겨 관찰해도 끝내 확인할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눈물입니다.

마더 테레사는 어떤 경우에도 절대로 눈물을 보이지 않습니다. 철저합니다.

병들고 헐벗은 사람이 속절없이 숨지는 모습을 목도하면서도, 함께 일하던 동료가 사역을 포기하고 떠날 때도, 고대하던 소망이 천신만고 끝에 마침내 이루어지는 순간에도, 믿었던 사람한테 배신을 당한 때도, 굶주린 아이들에게 거친 빵 한 조각이나마 제대로 줄 수 없을 때도, 뭇사람들한테 터무니없이 오해받을 때도, 최고의 영예인 노벨평화상을 수상할 때조차도 테레사 수녀는 슬프고 안타깝고 감격스럽고 원통하고 분하고 기쁜 그 낱낱의 감정들을 한사코 눈물로는 표현하지 않습니다.

눈물이 메말라서가 아닙니다.

심성이 모질어서가 아닙니다.

억지로 참아서가 아닙니다.

이유는 단 하나, 오로지 눈물을 흘릴 여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어떠한 난관에 부딪혀서도 테레사 수녀는 결코 후퇴하거나 좌절하거나 절망하거나 포기하지 않습니다.

무엇보다도 고민하지 않습니다.

‘가장 낮은 자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라는 예수님의 가르침 그대로, 테레사 수녀는 다만 인도 캘커타의 그 참혹하고 비루한 인생들을 위하여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바쳐 수고하고 봉사하고 헌신할 뿐입니다.

그러기에만도 시간은 턱없이 부족합니다.

한가롭게 눈물 따위 흘리고 앉았을 겨를이 없는 것이지요.

마더 테레사는 줄기차게 앞으로 나아가고 또 나아갈 뿐입니다. 삶 그 자체로서 이미 감동인데, 굳이 눈물 따위가 필요할 까닭이 없습니다.

이것이 이 영화가 지닌 가장 중요한 덕목이라고 저는 평가합니다.


울보가 아냐

다음은 〈말아톤〉입니다.

이 영화에서 우리는 자폐아(조승우)를 기르는 어머니(김미숙)의 절절한 내면 풍경을 그야말로 절절한 마음으로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출연 시간의 비율을 무시한다면, 이 영화의 실질적인 주인공은 어머니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은 느낌입니다.

이야기가 지닌 정서의 물줄기는 어머니한테서 흘러나와 다시 어머니한테로 흘러 들어갑니다.

어머니의 마음이 영화 전체 서사의 기조를 이루고 있는 셈이지요.

하지만, 이 어머니는 울지 않는 어머니입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울지 않으려 안간힘을 다하는 어머니입니다.

이 어머니 덕분에 자폐아 아들 초원은 신기하게도 전혀(!) 울지 않습니다. 정말입니다.

‘말아톤’이 아무리 힘들어도, 무신경한 ‘코치 선생님’(이기영)께 꾸중을 들어도, 지하철역에서 낯선 사내한테 얻어맞아도, 행인에게 명품 소매치기로 오해를 받아 파출소에 끌려가서도 초원은 결코 눈물을 보이지 않습니다.

심지어 그 길고 긴 마라톤 42.195킬로미터를 천신만고 끝에 완주하고 났을 때도 초원은 감격의 눈물을 흘리는 대신 오히려 해맑은 미소를 지어 보입니다.

초원은 그 어떤 고약한 감정도 결코 눈물로는 표현하지 않습니다. 어머니는 아들을 울보로 키우지 않은 것입니다.

아들은 어머니가 가르쳐주신 대로 자기 다리를 ‘백만 불짜리 다리’로 믿습니다.

마음만 먹으면 못 할 일이 없습니다.

아들은 스스로를 존귀하게 여깁니다.

이 아들의 마음이 어머니의 마음과 함께 영화의 바탕에 깔린 정서의 흐름을 이끌어가는 또 하나의 동력입니다.

초원은 울지 않을 뿐만 아니라, 포기하지도 않습니다. 중단하지도 않습니다. 대충 하지도 않습니다. 초원은 끝까지 최선을 다합니다. 줄기찹니다.

어머니조차도 이런 초원의, 이상하리만큼 올곧은 의지를 꺾지는 못합니다.

초원은 스무 살 그 나이에 고작 다섯 살의 지능으로도 이미 우리에게 주어진 인생이라는 시간이 헛되이 낭비해도 될 만큼 충분하지 않다는 진리를 깨달은 것 같습니다.

아니, 인생을 낭비하는 것은 죄악임을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들이 자기보다 하루 먼저 죽기를 소망하는 어머니 앞에서 이 아들은 시간이 없습니다. 달려야 합니다. 멈춰서는 안 됩니다.

그러니, 한가롭게 눈물 따위 흘리고 앉았을 여유가 있을 턱이 없지요. 그 삶 자체가 감동입니다.


열심히 살아야 해

당연히, 〈마더 테레사〉와 〈말아톤〉 사이에는 차이점도 있습니다.

마더 테레사는 끊임없이 누군가를 돌보고, 누군가에게 베풀고, 누군가를 위해서 헌신하지만, 초원이는 거꾸로 끊임없이 누군가가 그를 돌보고, 그에게 베풀고, 그를 위해서 헌신해 주어야 한다는 차이입니다.

하지만 이 차이야말로 가장 결정적인 공통점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그 결과가 똑같기 때문입니다. 구원입니다.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은 우리에게 삶의 소중함을 가르쳐 줍니다.

뒤돌아보지 않고 줄기차게 앞으로 나아가기만 하는 그들의 행보를 살피는 동안 우리는 삶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별수 없이 깨닫게 됩니다.

부정하고 싶어도 부정이 되지 않습니다.

이 깨달음 자체가 구원입니다.

그렇습니다. 열심히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얼마나 소중한 삶인데, 눈물로 허송할 겨를이 도대체 어디에 있다는 말입니까.

이것이 그들이 눈물을 흘리지 않는 진정한 이유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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