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만의 영화 잡설(雜說)_76
CA376. 리카르도 밀라니, 〈피아노, 솔로〉(2007)
궁금하기는 하지만 던질 수는 없는 질문, 어쩌면 던져서는 안 되는 질문. 예술가의 자살에 대해서 왜냐고 물어서는 안 되지 않을까. 다만 그 예술가가 조금이라도 더 살면서 아름다운 작품을 조금이라도 더 만들어내기를 겸손하게 기대할 수 있을 뿐. 어린 시절 뜻하지 않은 사고로 어머니를 잃은 그는 평생을 괴로워한다. 아니, 괴로워한다고 말해서는 안 될지도 모르겠다. 그것은 괴로워하는 것이 아니라, 괴로운 것이다. 괴로워하고 싶지 않지만, 괴롭기에 괴로워하고, 그래서 더더욱 괴로운 것이다. 이 괴로움의 굴레에서 그는 결코 벗어나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는 예술가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설명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 이 괴로움을 끝장낼 수 있는 방법이 자살뿐이라는 결론을 그가 내렸다고 해서 그를 탓할 수 없는 것은 어쨌거나 그는 갈데없는 예술가이기 때문이다. 예술가의 자살에 대하여 왜냐고 추궁하듯 물을 수는 없다. 다만 안타까워할 수 있을 뿐. 예술가란 예술가가 아닌 사람들을 대표하여, 또는 대신하여 삶을 앓는, 또는 앓아주는 이들이므로.
CA377. 산제이 릴라 반살리, 〈블랙〉(2005)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뮤지컬을 보는 듯 싱그럽고, 상쾌하고, 서늘한 감흥. 시청각 복합 장애의 이야기이면서, 그 이야기를 보는 사람은 시청각적인 해방감을 느끼는 이 역설적인 체험. 설리번과 헬렌 켈러. 스승과 제자. 그들끼리의 기묘하고도 감명 깊은 연대. 살아 있는 감각이 그 감각을 갖고 있는 인간을 행복하게 해주지 못한다면 도대체 그 감각의 쓸모는 어디에 있는 것인가. 의지와 사랑의 관계 또는 효능. 첫 깨달음의 낱말이 ‘물’이라는 것의 의미. 어째서 그들의 이야기는 물에서부터 시작되었을까. 불도 아니고, 하늘도 땅도 아니고, 엄마 아빠도 아닌 물. 그리고 선생님. 사람이 감각으로 세상을 아는 것과 낱말과 개념으로 세상을 파악하는 것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워터’라는 말을 내뱉고 ‘WATER’라는 글자를 쓸 때 그 소녀는 무엇을 깨달은 것일까. 그때 그 소녀가 깨달은 세상은 어떤 것일까. 그 소녀가 깨달은 세상과 오감을 모두 지닌 사람이 깨닫는 세상은 과연 서로 다른 것일까.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세계 인식. 사랑과 의지를 매개로 한 깨달음과 그렇지 않은 깨달음의 차이. 보는 것과 보지 못하는 것의 다름. 듣는 것과 듣지 못하는 것의 다름. 아니, 어쩌면 그것은 보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보이지 않는 것일 따름이 아닐까.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보이지 않을 뿐이고, 들리지 않을 뿐이라는 것. 상처받는 여동생의 이야기와 이성애의 목전에서 벌어지는 갈등을 피하지 않고 묘사한 것은 이 영화의 또 다른 미덕, 또는 출구다.
CA378. 구로사와 기요시, 〈로프트〉(2005)
진흙, 구토, 미라, 천 년, 인류학, 소설, 집필, 원고, 비밀. 미처 육탈(肉脫)이 되지 않은 시체. 여자. 강에서 건진 미라의 뱃속이 진흙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 그래서 썩지 않았다는 것. 죄책감, 꿈. 불멸의 시체. 로맨스 소설. 난 네가 천 년 동안 못 한 일을 마침내 처리할 거야. 차츰 지워지는 귀신.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지워지는 것. 그래서 투명해지는 것. 투명해짐으로써 없어지는 것. 위와 폐에 들어차 있는 진흙이 시신의 부패를 막는다. 진흙은 자살의 징표. 어떤 까닭으로 여인은 자살했을까. 아니, 어떤 까닭으로 여인은 진흙을 먹는 자살 방법을 택했을까. 그건 어디에서 어떻게 얻은 아이디어일까. 특권층에 속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여인의 시체 또는 미라. 진흙을 섭취하는 방식의 자살. 살인과 원귀. 남자를 파멸시키려고 기다린 천 년이라는 시간. 파멸시키려는 남자는 어떤 위인일까. 시체는 말을 하면 안 된다는 것. 그 시체의 화장(火葬). 화장이 과연 시체의 또는 미라의 원한을 최종적으로 끝장낼 수 있는 방법일까. 남자는 어째서 자꾸만 여자한테 기도해 달라고 말하는 걸까. 그는 무엇을 두려워하는 걸까. 망상의 확인. 그 망상이 망치는 자유. 살인사건과 고고학적 발굴의 느슨한 연결. 이 느슨함은 기요시다우면서도 기요시답지 않은 설정이다. 왜 감독은 이 두 가지를 뚜렷한 개연성을 바탕으로 튼튼하게 묶으려 하지 않았을까. 소설가와 인류학자의 만남. 편집자라는 방해꾼 또는 살인범. 살해당한 여자 또는 소녀. 그리고 깊디깊고, 어둡디어두운 강물.
CA379. 조민호, 〈10억〉(2009)
어째서 그녀가 10억을 차지해야 하는 걸까. 10억의 자격? 또는 그녀의 자격? 그 아내에 대한 마지막 응시가 그녀의 것이었기 때문에? 아니면, 그저 최후까지 살아남은 대가, 순수한? 그만한 고생이라야 아내의 봉변과 죽음에 견줄 만하다는 판단의 결과? 하지만 이 모든 기획이 복수라면, 이것은 너무나 많은 비용이 드는 복수다. 요컨대 아무나 감행할 수 없는 복수라는 뜻이다. 복수가 이렇게나 많은 돈과 궁리와 인내심과 용의주도함의 심모원려(深謀遠慮)가 필요한 작업이라면 그 복수는 이미 사치다. 마지막 순간 그가 스스로 추락하는 것은 이 사치를 분에 넘치게 누린 대가가 아닌지. 복수와 사치, 그리고 자결. 궁금한 것은 마침내 10억을 손에 넣은 그녀가 장차 어떻게, 어떤 삶을 살아갈 것인가 하는 점. 이에 대한 답을 관객 각자의 몫으로 돌려놓는 것은 혹 직무태만이 아닌지. 유감스럽게도 영화는 이에 대한 답을 하지 않은 채 발을 빼버린다.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공허한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한데, 도대체 왜 제목을 ‘10억’이라고 지은 것일까. 10억은 이 영화에서 아무것도 아니다. 맥거핀이라기에도 너무나 싱겁다.
CA380. 안톤 후쿠아, 〈더블 타겟〉(2007)
1.5Km 또는 2Km 저격. 그 정밀한 쾌감. 저격의 거리가 멀면 멀수록 쾌락도 그만큼 더 커진다는 이 기이한 역설. 하지만 바로 그 거리가 음모의 빌미가 된다. 은둔, 추모, 애정, 호명, 애국심, 유혹, 함정, 그리고 저격이 아닌 피격. 가공할 만한 신체 능력. 강력한 의지. 자기 증명의 욕구. 정치의 추악한 이면. 공적 심판과 사적 심판의 차이. 허용되는 응징과 허용되지 않는 응징. 보이지 않는 견고한 벽을 뚫는 방법, 지혜로운 또는 물리적인. 민주주의에 대한 뿌리 깊은 혐오. 그 혐오를 부정하는 기개. 비슷한 체격, 비슷한 능력, 비슷한 성격, 비슷한 운명. 맷 데이먼과 마크 월버그, 또는 제이슨 본과 밥 리 스웨거. 킬러와 저격수. 개인과 국가기관. 거대한 음모의 작은 틈. 은폐의 부도덕. 학살의 비윤리. 권력의 가차 없는 오만. 그것에 대한 마땅한 증오. 조직의 세력과 개인의 힘. 이중의 목표물. 또는 목표물의 교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