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만의 영화 잡설(雜說)_90
CA446. 타셈 싱, 〈더 폴: 오디어스와 환상의 문〉(2006)
발화. 이야기. 진술. 복수를 결심한 사연. ‘일당백(一當百)’이라는 말은 어떻게 생긴 것일까. 정말 혼자서 백 명을 해치운 영웅이 있었던 게 아닐까. 데이비드 핀처와 스파이크 존스. 도중에 갑자기 끝낼 때 가장 아쉬운 일은 무엇일까. 식사일까, 섹스일까, 아니면 이야기일까. 이야기에 대한 궁금증. 이야기를 더 듣고 싶은 욕망이 식욕이나 성욕보다 못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구글리’, 무서울 때 외는 주문. 얼굴을 보면, 또는 눈을 보면 그 사람의 마음을 알 수 있다는 것은 편견이 아닐까. 실연당한 상처의 정체는 무엇일까. 그것은 자존심의 상처일까, 상실감의 극한일까, 외로움의 바닥일까. 병이 든다는 것 또한 치유의 한 과정일 수 있다는 것. 환자. 잉글리쉬 패이션트. 스패니쉬 패이션트. 프렌치 패이션트. 모르핀을 원하는 상태. 이야기는 하는 사람의 것일까, 듣는 사람의 것일까. 이야기에 대한 권리의 소재라는 문제. 이야기를 듣는 쪽이 이야기를 하는 쪽에 요구할 수 있는 것의 범위. 이야기를 바꾸는 것과 운명을 바꾸는 것. 무성영화를 볼 때 배경음악의 반주는 바이올린이 좋은가, 피아노가 좋은가. 이야기는 사람을 구원하는가. 그렇다면 이야기의 무엇이 우리를 구원하는가. 그리고 베토벤 교향곡 제7번 A장조 2악장.
CA447. 로저 도널드슨, 〈뱅크 잡〉(2008)
은행털이범이 공주의 엽색 행각을 알았을 때, 또는 그 증거를 확보했을 때. 모든 치부들의 복마전. 은행의 안전 금고가 비리의 온상이라는 것. 보도 통제가 되어서 기사가 사라질 수 있다면, 그 기사의, 또는 그 기사가 다루는 인물도 사라질 수 있다는 것.
CA448. 마에다 테츠, 〈돌핀 블루〉(2007)
마츠야마 켄이치. 인간이 동물원을 운영하는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일본영화 속에서 그 생활이 ‘정돈되어’ 있다는 느낌이 드는 인물들. 돌고래와 친해지지 않으면 돌고래를 치료할 수 없다. 의사와 환자. 돌고래와 수의사. 거북이 방생. 의사소통과 정서적인 교감은 서로 어떻게 다른 것일까. 죽은 것을 되살리는 일은 왜 불가능할까. 괴사 된 부분을 제거함으로써 전체가 살아남는다는 것. 부분과 전체. 인공 지느러미. 헤엄칠 수 없는 돌고래는 더는 돌고래가 아니다. 일종의 의족(義足). 흐르는 물은 썩지 않고, 움직이는 몸은 병들지 않는다. 그러니까 흐르지 않는 물은 썩고, 움직이지 않는 몸은 병든다. 돌고래가 움직인다는 것은 헤엄친다는 뜻이다. 돌고래를 살리려면 움직일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 세계 최초의 인공 지느러미. 세계 최초를 구현하려면, 세계 최초에 대한 두려움이나 거부감이 없어야 한다. 폐를 끼친다는 것. 좋은 폐와 나쁜 폐. 어차피 폐는 끼치게 되어 있다. 그게 삶의 원리다. 그러니 되도록 좋은 폐를 끼치며 살아야 한다. 동물원이 정답이라고 할 수는 없어도 어쨌든 동물원이 있는 이상 동물이 조금이라도 편하게 살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는 것. 그게 최선이라는 것. 이물질 장착 훈련의 의미. 기능이 우수한 것은 모양도 아름답다. 보기 좋은 음식이 먹기도 좋다? 이미 죽은 돌고래의 멀쩡한 꼬리지느러미. 일종의 이식(移植). 헤엄치려는 의지와 살려는 의지의 상동성. 생명력. 장애의 상태를 없애주는 것이 정답인가, 장애 상태 그대로 살아가도록, 그러니까 그 상태에 적응하도록 도와주는 것이 정답인가. 시쿠와사 주스. 오키나와. 오키나와식 장례의 풍경. 동물, 곧 돌고래한테 인공 지느러미를 달 것인가, 말 것인가의 선택권을 준다는 문제. 자기 운명은 자기가 결정하도록 한다. 기계공학과 생체공학. 결국 생체공학 쪽으로 가야 하리라는 것? 유기체의 신비. 파란색의 상징.
CA449. 틸 슈바이거, 〈귀 없는 토끼〉(2007)
독일어는 로맨틱 코미디에 잘 안 맞는 느낌이다. 발음, 악센트, 어감 따위가 다 그렇다. 야한 영화의 격렬한 신음과 제키 찬. 섹스에 관한 영화를 보는 것과 섹스에 관한 대화를 나누는 것, 둘 가운데 어느 쪽이 더 야한 체험일까. 바람둥이가 딱지를 맞을 때. 어디서나 전화를 걸고 받을 수 있다는 사태는 교제를 도울까, 방해할까.
CA450. 스티븐 셰인버그, 〈FUR〉(2006)
디앤(또는 다이앤) 아버스. 사진. 기록되지 않은 역사. 야사. 나체촌. 깡그리 벗은 몸으로 산다는 것. 아무것도 숨기지 않는다는 것. 자유롭다는 것과 떳떳하다는 것. 1958년의 미국. 뉴욕. 모피. 살갗이 의상이 되는 사태. 살갗과 옷. 짐승은 옷을 입지 않는다. 옷이 필요 없는 인간? 사진가는 제가 아니고, 제 남편이에요. 그럼, 당신은 뭘 하죠? 저는……. 남편의 일과 아내의 역할. 이 질문에 맞닥뜨려 디앤은 무엇을 생각했을까. 아니, 무엇을 느꼈을까. 난 뭐지? 모든 것은 여기에서부터 출발한다. 디앤은 이런 의문을 품고 느낄 줄 아는 여자였다는 것. 1958년의 미국 여성. 지금은 이런 질문을 던지는 것이 실례라는 것이 상식이 되어 있는 시대이기도 하다. 하지만 어느 쪽이 더 여성에게 이로울까. 아니, 어느 쪽이 여성을 더 깊이 자극하는 것일까. 그래서 집을 벗어나 ‘현장’으로 여성을 끌어들이는 구실을 하게 될까. 슈만의 아내 클라라. 말러의 아내 알마. 남편의 재능이라는 그늘에 자신을 숨긴 여성들. 어쩌면 베토벤은 이 모든 부당함을 꿰뚫어 보고 결혼을 하지 않기로 한 것은 아닐까. 어쨌거나 적어도 그는 이런 ‘남편의 죄’를 짓지는 않았으니까. 이것이 팩트다. 그냥 사진과 광고사진의 차이. 또는, 예술사진과 광고사진의 차이.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사람의 뜻이 얼마나 반영되느냐, 하는 것. 디앤이 느끼는 문제점이 안고 있는 시대정신. 번지르르한 생활 이면에 숨어 있는 추함. 그 추함의 바탕 위에 서 있는 생활. 남성을 받쳐주는 여성이라는 구실. 추한 이면이라는 구실. 디앤을 다이앤으로 불러주는 남자. 자기식의 명명법. 내 생각에 당신은 디앤이 아니라 다이앤이야. 카메라를 손에 들기로 결심하는 순간. 셔터를 자기 손가락으로 누르겠다고 결심하는 순간. 누군가의 사진을 찍고 싶다는 욕망의 시작. 수면장애. 불면증과 다모증. 신체 기형의 제 형태들. 롤라이 카메라. 신체의 노출과 카메라의 노출. 남편의 아내, 남편의 조수. 그러니까 누구의 무엇이 아닌 나 자신으로 무언가를 하고, 어딘가를 가본다는 것. ‘다른’ 사람들과 가까이 지내기. 익숙해지기. 남편이 수염을 기르기 시작하는 순간. 흡연의 시대. 거의 100분이라는 시간이 다 지나서야 비로소 드러나는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얼굴. 몸에 털이 없어야 멀리까지 수영할 수 있다는 물리학의 원리. 난쟁이, 샴쌍둥이, 거인. 그냥 사진 한 장이 작품이 되는 순간. 니콜 키드먼이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숨결을 들이마시는 장면. 〈공기 인형〉(2009, 고레다 히로카즈)의 숨결. 비밀을 듣고 싶다면 당신이 비밀을 먼저 말하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