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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손에게도 볕 들 날 온다.

똥손 소원권

by 박수미

나는 똥손이다. 손재주가 전혀 없다. 아이들 교구를 만들 때 도안을 프린트해서 고대로 그리고 오려야만 가능하다. 내 자발적인 손놀림으로 했다가는 이름 모를 것이 탄생한다. 한번은 뽀로로 친구 ‘크롱’을 생각하고 펠트지로 주머니를 하나 만들었는데 그걸 본 아이들이 웅성거렸다. 개구리라고 했다가 뱀이라고도 하고, 악어라면서 서로 싸웠다. 아이들 주의 집중하라고 꺼냈는데 산만해지기만 했다.


내 똥손은 뽑기에도 약하다. 꽝을 제일 잘 고른다. ‘공짜 좋아하지 말라’는 아빠의 가르침 덕에 불로소득을 가까이하진 않지만, 행사 참여로 가끔 행운권 추첨이라도 하게 되면 걸리는 법이 없다. ‘다음 기회에!’라고 쓰여 있는데 그때가 오긴 할까? 그건 ‘밥 한번 먹자.’의 ‘한번’처럼 기약 없이 날아가는 말이다.

그런데 이번에 뭔가 하나 걸렸다! 뒷걸음치다 얻어걸렸다. 코피 쿠폰~

스타벅스에 갔던 날이었다. 여느 때처럼 톨 사이즈 따뜻한 라떼를 받아서 2층 콘센트가 딸린 책상에 자리를 잡았다. 작업 시작 전 손을 씻고 왔는데 쟁반에 커피 자국이 보였다. 웬걸 세상에나 이런 일은 처음이다. 컵에 삐뚤어진 사각형 모양으로 금이 생겨 커피가 스며들듯 새어 나온 거다. 눈으로 보고도 신기해서 한참을 봤다. 그리고 주문대 직원에게 내보였더니 연신 죄송하다며 새로 커피를 내려주었다. 직원은 새로 잡아든 컵을 안팎으로 살피면서 혹시나 금이 또 가진 않았는지 재차 살폈다. 흔치 않은 상황에 직원분도 당황하긴 마찬가지였을 거다.


그렇게 나는 ‘땡큐 쿠폰’이란 걸 받았다.

쏘리 쿠폰 대신 ‘땡큐 쿠폰’에 미안함과 이해해줘서 고맙다는 마음이 같이 담겼으니 더욱 좋다. 무엇보다 공짜 음료를 먹게 되었다는 점이 맘에 든다. 날아갈 듯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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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하시는 모든 사이즈의 제조 음료 한 잔과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해 드리겠습니다.최상의 서비스? 눈치 보지 않고 아무거나 먹고 싶은 거 골라도 된다는 거겠지.

병음료, 리저프, 트렌타 사이즈 음료는 제공 불가합니다. 예외 조건이 붙어 있지만 내게 큰 의미가 없었다. 리저프, 트렌타 사이즈? 듣도 보도 못한, 뭔지도 모르는 것들이라 어차피 고르지도 않을 거다.


행복한 고민에 빠졌다. 소원을 물어보는 ‘지니’를 만난 기분이었다. 마냥 이뤄주는 건 아니고, 소원 딱 하나만 들어준단다. 여러 메뉴 중 한 가지 고르는 거다. 신중에 신중을 더했다. 어렸을 때 들었던 이야기 '세 가지 소원'이 생각났다. 어느 날 노부부에게 찾아 온 소원 요정. 세 가지 소원을 들어준다고 했다. 할아버지가 엉겁결에 ‘소시지나 잔뜩 먹었으면.’하고 말하는 바람에 소시지가 집안에 넘쳐나게 되었다. 허투루 소원을 써버린 할아버지에 화가 난 할머니. ‘할아범 코에 소시지가 붙어버려라.’라고 쏘아붙여서 두 번째 소원을 쓰고, 어쩔 수 없이 할아버지 코에서 소시지를 떼어 내는 것으로 마지막 소원까지 날려버렸다. 허무하고, 황당하게 끝나지 않으려면 심사숙고해야 했다. 내 생에 흔치 않은 기회인데 그렇게 날려 먹을 수는 없다. 아무렇게나 얘기했다가는 두고두고 후회할지도 모른다.


보통 카페나 식당에 가면 메뉴를 고를 때 오래 걸리지 않는다. 고민 없이 매번 먹던 거로 주문하니까 말이다. ‘땡큐 쿠폰’으로 늘 먹던 라떼 톨사이즈를 먹자니 아까운 생각이 들었다. ‘이 집에서 가장 비싼 것’이 먹고 싶어졌다. 휘핑크림을 잔뜩 얹고, 바닐라 시럽도 듬뿍 추가해서 말이다. 그렇게 하면 주문을 받은 직원이 “탁월한 선택이십니다.”라고 응대해 줄 것만 같다. 영화 ‘아이 엠 샘’에서 주인공 샘 아저씨가 카페 손님에게 습관처럼 하던 말처럼.

가격으로 선택하자니 하나가 걸렸다. 가격이 올라가니 칼로리가 덩달아 올라간다. 가장 비싼 메뉴는 칼로리 폭탄이다. 스트레스로 당이 당겨 달달한 걸 찾는 상황은 아니었다. 내 취향이 가격을 따라 다니지도 않았다. 가격과 기호 사이 중간지점에서 하나를 찍었다. 객관식 문제처럼 몇 가지 선택지를 두고, 소거법으로 하나씩 날리고는 최종 후보 2번과 3번 중에서 고민하다 찍듯이 골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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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심 끝에 고른 최후 승자는 바로 토!피!넛!라!떼!

평상시 먹던 라떼 고급 버전이다. 겨울 한시적으로 제공하는 음료라서 그런가 추천 메뉴로 토피넛라떼가 올라와 있었다. 그게 결정적 요인이었다. 왠지 믿음직하고, 후회하지 않을 거 같았다. 그리고 사이즈는 그란데로 과감하게 질렀다. 한 번도 시도해보지 않았던, 내 돈 내고는 절대 안 할 사이즈. 폭설로 쌓인 눈처럼 휘핑크림이 수북하게 덮여있었다. 고소함과 달달함이 잘 어우러졌다. 입안에 감도는 단내에 기분이 더욱 좋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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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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