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는 자만 기분 좋은 선물?
“쌀을 보냈어.”
엄마의 카톡에 순간 짜증이 올라왔다. 보내지 말래도 참. 그러시네.
쌀은 그냥 온라인으로 주문해서 사 먹는 게 제일 속 편하다. 엄마가 굳이 택배비 들여서 직접 우체국에 가서 우리 집으로 택배 보내는 건 여간 번거로운 게 아니다. 그럼에도 엄마는 그러고 싶단다. 여주에 계시는 엄마는 지역 쌀이 특가로 뜨면 몇 포대 사서 이 집, 저 집 돌리신다. 그중에 한 사람이 나다. 노나 주시면서 그렇게나 좋아하신다. 그렇게 나는 엄마한테 쌀을 받아먹는 형편이 되었다.
그런데 얼마되지 않아 문제가 생겼다. 쌀벌레가 말썽이다. 뽀얀 먼지처럼 쌀가루 같은 게 보이길래 몇 번이고 닦아냈는데 계속 쌓인다. 인터넷 검색하니 가루응애라고 한다. 자세히 보니 먼지 같은 게 정말로 조금씩 움직였다. 쌀통을 비워서 소분한 쌀을 페트병에 담고 냉장고에 넣었다. 이제는 10kg짜리 쌀 포대가 처치 곤란이다. 1인 가구가 쓰는 냉장고라 많이 보관도 못한다. 그때부터 큰 쌀 포대 대신에 엄마 집에서 봉지 쌀을 받아오게 되었다.
배급받듯이 쌀을 조금씩 갖다먹는 내가 엄마는 안쓰러웠나 보다. 옛날 생각이 난단다. 돈이 없어 봉지 쌀 사 먹던 그 시절이 떠오른다면서 나를 짠한 눈으로 보시곤 했다.
두 번 정도 봉지 쌀을 수급했을 때쯤 엄마는 쌀을 택배로 보내도 되겠냐며 운을 띄우셨다. 여차저차 내 상황을 다시 설명하고 발송을 막았다. 봉지 쌀 수급이 한 차례 더 이어졌다.
그리고서 이번에 사전예고 없이 '발송 중' 메시지를 받은 것이다. 냉장고에는 김장 김치가 이미 한가득인데 이놈의 쌀을 어쩌라고. 어쩔티비 저쩔티비다. 분명히 엄마한테 말했었는데 잊어버리셨나? 쌀벌레 사건도 우리 집 냉장고 크기도 알고 계실 텐데. 그리고 요즘에 쌀을 잘 먹지 않는다고도 했었다. 잡곡을 섞어 먹거나 두부 호박, 계란을 쌀 대신 먹기도 해서 쌀이 도통 줄어들지 않는다고.
아무래도 내 말이 먹히지 않았나 보다.
실컷 얘기하는 중에 말이 싹둑 잘린 기분이다. 말이 씹히고, 빈정 상했다. 내가 그러거나 말거나 엄마식으로 생각하고, 엄마가 하고 싶은대로 밀어붙이는 모습에 답답했다.
엄마의 본심을 모르는 게 아니다. 그래서 어렵다. 이를 너무나도 잘 알기에 서운한 마음을 비칠 수가 없다. 삼시 세끼 식탁에 쌀밥이 올라오는 부모님의 식단으로 보면 엄마는 우리 집에 벌써 쌀이 똑 떨어졌다고 생각할 게 뻔하다. 엄마는 내가 손가락에 발가락까지 빨고 있을까 봐 걱정했던 거다. 밥은 제때 챙겨 먹고 다니는지 자식의 끼니 걱정에, 일용할 양식을 챙기는 어미의 심정에 토를 달기 어렵다.
원하지 않은 선물을 받았을 땐 좋든 싫든 일단은 '고맙다'고 해야 한다. 주는 사람이 무안해지지 않게, 내민 손이 무색해지지 않게 말이다. 그래야 주는 사람의 마음이 딴 데로 튕겨 나가지 않고 잘 받을 수 있다.
그렇게 서운한 마음을 꾹꾹 누르는데 택배가 도착했다.
쌀 포대인 줄 알았는데 스티로폼 상자가 왔다. 쌀 말고도 얼린 사골 곰국, 고기, 곶감, 떡가래, 고구마가 같이 딸려왔다. 쌀이 보였다. 내 마음이 녹아내리는 순간이었다. 쌀은 작은 지퍼백 세 봉지에 나눠 담겨있었다. 엄마가 내 생각을 한 거다. 우리 집 형편을 염두에 두셨다. 흘려들은 줄 알았던 내 말이 엄마에게 닿았다. 괜한 걱정과 오해로 엄마가 보낸 소포를 맞이했던 게 무안하고 민망해졌다. 받은 먹거리를 냉장고, 냉동실에 차곡차곡 넣었다. 당분간은 장 보러 가지 않아도 될 듯싶다. 엄마의 마음도 소중히 담았다. 냉장고만큼이나 내 마음도 가득 부풀어 올랐다.
"안녕하세요. 식사하셨어요?“
종종 인사치레로 건네는 말이다. 별 뜻 없이 주고받는 인사말이지만 묻는 이에 따라 상황이 달라지기도 한다.
"밥은 먹었고?"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엄마 목소리. 통화할때마다 나오는 단골멘트지만 엄마는 건성으로, 그냥 던지는 게 아니다. 찐심으로 궁금하고, 뭐라도 챙겨 주고 싶은 마음에 물어보고, 또 물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