흘러가는 것들이 유독 붙잡히는 날이 있다. 추우면 옷을 더 껴입으면 되고 배고프면 밥이나 데워 먹으면 되는 일인데 유독 멀리서 들려오는 까마귀 울음소리가 크게 들리는 날이 있다. 그렇게 종종 설웁다. 간절히 바라는 일은 언제나 간절히 패배하는 일이어서 이해하는 것이 편하다는 것을 아홉 살에 알았다. 안아주는 사람이 없는 사람도 있기는 하고 그래야 삶은 다양한 사람들 때문에 다채롭고 좌표가 없는 태생도 있기는 해야 그럭저럭 굴러가기는 굴러가니까 그래서 알겠어요. 그렇겠네요. 라는 말을 사랑한다는 말보다 먼저 배웠다.
어떤 사람의 시간은 유독 느리게 흘렀다. 한참을 아무 말 없이 만나던 들꽃 같은 애인이 어제는 사랑을 나누고 오늘은 당신은 날 사랑하지 않는 것 같아요. 하고 떠난 일도 있었다. 처음부터 밀려 쓴 답안은 고칠 기회도 주지 않는다는 것을 가만히 나의 머리를 쓰다듬고 노란 조명을 자꾸 가져오는 애인을 보면서도 알았다. 언제나 나는 한 번도 불가지론도 아니었다.
쌀은 불려 먹으면 두 배가 되니 불리고 마음은 불리면 낭비가 되니 적게 먹도록 하자. 어린 나를 버렸다는 아빠의 도박은 이을 수가 없으니 주식은 하지 않도록 하자. 나이가 들어서 가난하면 외로움이 되니까 연금을 들도록 하자. 사랑은 재능이고 재능은 조금은 타고나야 하고 나는 재능 없이 태어났으니까 되도록 모르는 척하자. 누군가의 눈물 자국이 가슴 아픈 일, 정말로 없도록 하자.
가끔 나오는 꿈, 살면서는 없는 동화책을 본 것.
아이를 낳고 싶어요, 가 아니라.
아이는 낳아야지 후에 비참하지 않을까요. 라고 대답해 버리는 것.
산에 걸린 운무도 타는 듯한 노을도 모르는 척해야겠다.
내일은 미세먼지가 불지 않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