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 오늘은 목련이 다 졌어 세상은 막 태어난 태아처럼 응앙응앙거리는 데 목련은 다 졌어 그날 나는 아무것도 이기지 않기로 해봤지 기억나는지 모르겠어 목사의 딸을 사랑한 소년이 모과향을 맡겠다고 강물에 몸을 던진 날을 나는 그날을 기억하다가 언니의 운명을 감지했지 아무것도 모른다는 말을 하는 사람들이 가장 영리하고 영리해서 제일 먼저 다친다는 걸 알지 심장에서 가장 멀리 흐르는 피가 가장 맑아서 바스라지고 그러다가 나에게 가장 해가 된다는 것도 알지 그런 일들이 도처라서 견딜 수 없을 때면 땅거미 지는 하늘을 봐 언니 목련은 왜 처참할까
유리창을 주먹으로 내리치고 싶은 마음 자꾸 넣어두고 살게 되는 것이 지는 건지 묻고 싶어 대답을 해 줄 은사님은 나에게만 없는지 그 질문도 할 사람이 없는 밤이면 나는 백야에 시달리지 언니 나는 때때로 달아올라서 들썩거리는 냄비 뚜껑처럼 쌕쌕거리고 그러다가 블랙홀을 떠올려 아득한 것들을 사랑하고 마는 이유는 그런 이유 때문일 거야
아마도 그곳은 영영 편한지 넘어갈 수 없는 문을 그리던 날들은 어떤 심정이었는지 나는 모르지만 이곳에서 친구들과 울고 웃고 사랑했던 애인을 그리워하며 백지를 까맣게만 칠하고 있는 손가락들을 생각해 그러고 있자면 달밤이 좋아지지 낮달이 생기는 이유를 골몰해 본 적 있을까 그건 꽤 시린 일이야 나는 아주 어려져서 발가락도 내 맘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몸을 가지고 누군가를 조건 없이 사랑하고 싶어져
나는 악수 대신 결투를 신청한 일이 있고 사랑 대신 폭력을 행사한 일도 있지 언니 서글퍼 하지는 말아 이런 일들은 나그네의 외투가 젖는 것처럼 흔한 일이지 언니의 세상에도 목련은 지는지 나는 단지 조금만 이상한 사람인지 그럼에도 좋아서 펑펑 울고 싶은지 그래 언니야 아마 조금만 더 살까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