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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우 데 자네이루] EP02. 예수상이 바라보는 곳

파벨라, 예수님도 등진 곳

by 임지훈

[리우의 아침]

20240302_083807.jpg 숙소에서 바라본 풍경. 밤과는 달리 평화로웠다

그리 오래 잠들지 못했지만 깊은 잠에 들었는지 개운하게 일어날 수 있었다. 창밖으로 바라본 풍경은 어젯밤 모습과는 달리 평화로운 모습이었다.

간단하게 조식을 먹고, 동행과 만나기로 약속한 장소인 리도광장으로 향했다. 걸어서 20분 정도의 거리지만 주변 풍경을 살펴볼 겸 천천히 걸어가 보기로 했다. 골목 양옆으로 그래피티가 그려져 있고 약간의 쓰레기가 버려져 있을 뿐 소문과는 달리 그리 흉흉한 모습은 아니었다.

어느덧 10분 정도 걸었을까? 3명 정도 되는 아이들이 길목에서 구걸을 하고 있었다. 아이들은 내가 지나가자 툭툭 치더니, 내가 들고 있는 물병을 가리켰다. '그래 물이야 뭐 구하기 어려운 것도 아니고...' 아직 거의 마시지 않은 물이지만 아이들에게 흔쾌히 주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모자랐던 걸까? 아이들은 근처의 슈퍼를 가리키며 뭐라도 사달라는 듯한 눈빛을 보냈다. '하지만 나도 돈이 없는걸...' 나는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연신 미안하다고 말하며 그 자리를 피했다.


리도광장에는 꽤나 많은 사람이 있었지만 동양인은 단 한 명밖에 없었다. 누가 봐도 내 동행임이 확실해 보였다. 동행은 수염을 길게 기르고 머리를 짧게 자른 '자유인의 모습'이었다. 전 세계를 일주하고 있는 중이어서 최대한 손질하기 쉬운 상태로 다니는 중이란다. 나는 생각만 해보고 감히 계획도 못 세워 본 일인데 이걸 실천으로 옮기는 모습은 정말 대단하다 할 수밖에



[세계 7대 불가사의 리우예수상]

20240302_103206.jpg 예수상으로 올라가는 길에 볼 수 있는 빈민가 (파벨라)

우리 둘은 간단히 인사를 나누고 곧바로 예수상으로 향하는 투어를 이용했다. 간혹 예수상이 있는 산을 걸어 올라가는 사람들도 있긴 한데(거의 서양인들끼리 동행을 만들어서 그러는 경우가 많다.) 강도를 만나 탈탈 털렸다는 이야기도 전해지기 때문에, 그냥 투어를 이용하기로 했다.


예수상을 향해 가던 산은 중간에 한번 멈춰 선 후 가이드가 창밖을 가리켰다. 무슨 말인지는 알아먹을 수 없었지만 '파벨라'라는 단어를 들을 수 있었다. 브라질의 빈민가를 칭하는 말인 파벨라는 우리나라의 달동네처럼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시작된 곳이다. 그러나 이후 빈부격차와 마약카르텔 등의 문제가 겹치게 되면서 정부가 통제할 수 없는 장소가 되었고, 결국 그들만의 룰대로 살아가는 곳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물론 외부인이 함부로 들어갔다가는 살아서 나올지도 장담할 수 없는 무서운 곳이다.


하필 이 파벨라가 예수상 뒤쪽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그리스도마저 포기한 곳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그리스도가 빈민들을 위해 고난을 막아주는 모습이다라고 해석하는 사람들도 있다. 각자의 해석이 있지만 고난을 막아주는 모습이라는 해석이 좀 더 마음에 와닿는 해석이었다.


20240302_112235.jpg 예수상의 현실

예수상에 방문하자 아침부터 관광객으로 가득한 모습이었다. 어떻게든 인파를 헤치고 인증샷을 남기려는 사람들부터, 예수상만 온전하게 사진에 담기 위해 이리저리 핸드폰의 각도를 바꿔보는 사람들, 이미 사진은 다 찍었다는 듯 난간에 기대 바다의 모습을 구경하는 사람들까지 인산인해의 모습이었다.


이렇게 많은 인파와 예수상의 거대한 모습에 감탄하면서도 '이게 세계 7대 불가사의에 들어갈 정도인가?'라는 생각은 떨칠 수 없었다.



[소매치기를 당할뻔하다]

20240302_151829.jpg 성당에 가기 전 잘못 들어간 골목

예수상을 구경 후 식사를 마친 우리는 이곳에 있다는 특별한 성당에 방문하기로 했다. 구글지도상 위치는 분명 근처인 듯했는데 이상하게 골목의 분위기는 관광객이 지나갈 듯한 분위기는 아니었다.


사람은 한 명도 없고 길목은 관리되지 않은 것처럼 쓰레기가 버려져 있었고, 철조망이 쳐진 담장의 모습을 보니 이곳은 옳은 길이 아님을 바로 알 수 있었다. 잘못 들었음을 인지하고 돌아서서 나가려고 하는데 이곳에 사는 학생들이 우릴 곁눈질로 쳐다보는 듯한 시선이 느껴졌다.


"쟤네가 우리 쳐다보는 것 같지?" "응 그런 거 같은데 최대한 피해서 나가자." 우리는 최대한 입을 움직이지 않으며 이곳을 빠져나가려 했다. 그 순간 이 아이들과 무리인듯한 다른 아이가 자전거를 타고 우리 쪽으로 질주해 왔다. 우린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오른쪽으로 급격하게 몸을 틀었고, 이 자전거를 탄 소년도 마찬가지로 우리 쪽으로 방향을 틀었지만, 마침 그곳에 있던 기둥에 자전거를 부딪히고 말았다. 우린 상황을 살필 여유도 없이 빠르게 달려 그곳을 피해 빠져나갈 수 있었다.


겨우 진정되고 나서야 한마디 할 수 있었다. "어린애들이 안 좋은 것만 배워서 어휴!"



[하루의 마무리는 맥주 한잔]

Copacabana-beach-one-attractions-Rio-de-Janeiro.jpg 코파카바나 해변 (출처: britannica.com)

하루동안 이런저런 일을 모두 겪은 덕에 고단했지만 이런 고단한 상황에도 코파카바나 해변은 반짝이며 빛나고 있었다. 반짝이는 바다 앞에서 리우의 사람들은 자기들 끼리 축구공으로 패스를 주고받으며 예술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괜히 축구의 나라가 아니구나 할 정도로 일반인들의 패스실력에도 감탄이 나왔다.


우리는 하루를 마무리하며 근처 술집에서 맥주를 한잔 하며 마무리하기로 했다. 여행을 좋아한다는 공통점이 있어서 그런지 이야기는 끝없이 이어졌다. 오늘 소매치기를 당할뻔해서 깜짝 놀랐던 이야기, 지금까지 있었던 여행이야기, 앞으로 방문할 나라 이야기 등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맥주잔을 기울였다.


오늘 하루를 되돌아보면 아침 일찍부터 이어졌던 발걸음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예수상 앞 북적이던 사람들부터, 소매치기를 당할뻔한 아찔했던 기억, 아름다운 바다를 바라보는 지금의 모습까지... 시원한 맥주 한잔으로 오늘의 더위와 고됨이 모두 씻겨 내리면서 피로가 모두 풀린듯했다. 짧은 하루의 만남이었지만 우리는 서로의 여행에 안전을 기원하며 다음의 만남을 기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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