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닝. 운동의 진입장벽을 낮추다.
육아를 하다 보면 세상 많은 것들의 진입장벽이 높아진다.
'하고 싶은 것 많은 열정녀'. 그런 내 앞에 높여진 '육아'라는 벽.
'육아하는 나한테는 사치지 뭐...' 하고 느껴지는 것들이 있다.
카페에서 따뜻한 아메리카노 한 잔을 여유 있게 마시는 것.
폰이나 태블릿 pc로 미디어노출을 하지 않는 나는 아이들과 카페를 방문할 때 큰 용기가 필요하다.
다른 사람의 편안한 시간을 우리가 방해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항상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시켜 벌컥벌컥 들이켜고 나온다.
마음 편히 쇼핑을 하는 것.
아이들과 함께 하는 쇼핑에서 빠른 결단력은 필수다.
사? 말아? 고심하기에 그들의 인내심은 턱없이 부족하다. 아이쇼핑이 그립다.
내가 좋아하는 전시를 보는 것.
전시회에서의 에티켓을 완벽히 지키기에 내 아이는 너무나 어리다.
아이와의 전시 데이트는 빨라야 10년 후에나 가능하지 않을까?
운동도 그렇다.
아이를 갖기 전, 나는 수영과 커브스, 배드민턴을 했었다.
운동신경은 별로였지만 운동할 때만 느낄 수 있는 '숨 가쁨'은 내 삶의 원동력이었다.
오롯이 내 몸의 움직임에만 집중하는 시간은 갑갑했던 마음을 트이게 하는 일상의 '틈'이었다.
성인이 된 후 다이어트와 함께 운동을 시작해 3개월 이상 쉬어본 적 없을 만큼
운동은 나의 일상이고 일부였다.
하지만 아이를 낳고부터는 달라졌다.
내가 해온 운동들은 정해진 요일과 시간, 같은 장소에서만 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수요일 밤 8시~9시 미래수영장.
*월, 수, 금 저녁 7시 30분 종합경기장.
오늘 내 아이의 컨디션은 어떨지, 내가 자리를 비웠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날지 예상하기 어려운
육아를 하면서 이 일정들을 맞추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이런 나의 속내를 알아챈 남편은 고맙게도 운동하고 오라며 쿨하게 시간을 내어줬으나
퇴근 후 녹초가 된 몸으로 아이들을 돌봐야 할 남편을 모른척하고 운동을 나갈 만큼 나는 독하지 못했다.
그럼 아무 때나 갈 수 있는 헬스는 어떨까?
헬스. 좋지! 그러나 보통 유산소 운동을 즐겨하는 나였기에 헬스에 투자하는 돈마저 아까운 순간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러닝을 택했다.
'나 혼자 산다'의 기안 84 덕분에 요즘 러닝은 대세가 되었다.
대한민국이 뛰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얼마 전 오랜만에 가본 백화점에 러닝 관련 팝업스토어가 즐비한 것을 보고 실감했다.
러닝이 정말 힙해졌구나. MZ들의 레이더망에 제대로 걸렸구나!
하지만 러닝은 MZ들뿐만 아니라 어쩌면 육아맘에게 더 적격일 수 있겠다.
고맙게도 러닝의 진입장벽은 매우 낮기 때문이다.
현관문만 나가면 된다. 일단 뛰어! 하면 된다.
전문 장비? 다 갖추면 좋겠지만 운동화와 튼튼한 다리만 있으면 시도는 할 수 있다.
정해진 시간 따위도 없다. 아이가 잘 때, 아이 하원하러 가는 길에, 잠깐 마트 가는 길에 산책 삼아 할 수 있다.
내 체력과 시간이 넉넉하지 않아 러닝을 오래 유지하지 못한 탓에 그 효과가 얼마나 좋을지는 미지수지만
'내가 운동을 했다! 조금 더 건강해졌다! 나름 관리하는 사람이다!'라는 성취감만은 충분히 느낄 수 있다.
그런 마음으로 산후 회복기가 끝나자 꾸준히 달렸다.
어느 때부터는 욕심을 내 조금씩 더 달리다 보니 10km 마라톤을 1시간 내에 완주하기에 성공했다.
육아 덕분에 새로운 취미 하나를 더 갖게 된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페이스를 조절하며 긴 호흡으로 원하는 거리를 오랫동안 달릴 때는
'자기 통제력'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몸상태가 좋다고 섣부르게 달려서는 금방 지치고 만다.
오버하지 않고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는 끝에 맛보는 완주의 맛!
1, 2년 내로 끝나지 않을 '육아'라는 마라톤을 시작한 나이기에
더욱 절실히 느끼는 러닝의 참맛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