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같은 하루였다.
아이도 여자도 행복했다. 마음 한구석 남편의 그림움이 여자의 마음을 허전하게도 했지만
아이와 학교 앞에서 달고나를 먹고 아이와 손잡고 함께 했던 시간은 추억 속에 환하게 빛날 것이다.
여자와 아이는 역 앞에 파는 떡볶이와 튀김 순대를 사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대문을 열고 들어와 보니 할머니가 일찍이 장사를 접으시고 마당 평상에 앉아 계셨다.
평상 아래로 강아지 소리가 들렸다.
가끔 여자가 강아지를 키웠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할머니가 어디서 새끼 강아지 한 마리는 얻어 오신
모양이다.
아이가 활짝 웃었다.
노을이 담벼락을 타고 내려와 마당 평상 끝자락까지 스며들었다.
바람이 식어가는 저녁 마당의 공기는 하루의 이야기로 가득했다. 이른 저녁 냄새가 골목을 타고 집으로 들어왔다. 따스하고 배고픈 냄새였다.
엄마는 집에서 접시와 물병 컵 을 챙겨 나왔다. 평상 위에 상을 펴고 역 앞에서 사 온 떡볶이와 튀김 순대를 접시에 담고 앉아 아이를 바라보았다.
할머니는 강아지를 않아 아이의 품에 안겨 주었다. 할머니의 손길에 오래된 온기가 있어고, 그 온기가 강아지 털에, 아이의 손끝에, 바람에 닿아 마당 안 공기를 따스하게 감싸 안았다.
엄마는 마당 한편 수돗가에서 아직은 차가운 수돗물에 아이와 손을 씻고 평상에서 음식을 먹었다.
할머니는 문간방 주방에서 잘 익은 김치를 접시에 담아 오셨다.
떡볶이국물의 매운 향이 바람에 섞여, 평상 위엔 웃음이 피어났다.
엄마의 젓가락 끝, 할머니손, 아이의 입술, 그리고 강이지의 눈빛이 한 풍경 안에 담겼다.
하늘은 복숭아빛으로 물들고 있었다. 지붕 위엔 늦은 햇살이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할머니는 먼저 들어가셨다.
여자는 평상을 치우고 아이와 마당에서 더 시간을 보냈다.
" 엄마 강아지 이름을 지어 줘야 할 것 같아요. " 아이가 꼬리를 흔들며 빙글빙글 돌는 강아지를 보며 말했다.
" 글쎄 뭐가 좋을까?? " 아이는 곰곰이 생각해 보더니 "엄마 강아지는 내 동생이에요. 내 이름이 "주희" 이니까 "주주" 어때요?" 여자를 행복한 웃음을 지었다.
아이는 무릎을 감싸 안고 강아지 앞에 앉아 강아지를 쓰다듬으며 " 주주야.... 주주야.... 너는 이제 주주야..."
이야기해 주었다.
엄마는 할머니가 주주를 담아 온 박스에 아이가 어릴 때 쓰던 큰 수건을 깔고 잠자리를 만들어 거실 바닥에 놓았다. 아직 새끼 강아지인 주주는 그 자리가 포근했는지 잠이 들었다.
여자와 아이는 씻고 잠자리에 들었다.
포근한 이불속 아이는 꿈같은 오늘이 끝나는 게 싫었다. 잠을 자고 싶지 않았다.
고요한 밤 아이는 이불속을 빠져나와 까치발을 하고 거실로 나왔다.
거실 창으로 스며든 달빛 아래 주주는 잠들어 있었다.
아이는 그 모습을 오래 바라보다가, 아주 조심히 속삭였다. “잘 자, 주주야… 오늘 정말 행복했어.”
새벽빛이 살짝 열린 창문으로 스며들었다.
마당의 감나무 잎사귀가 바람에 살짝 흔들리며,
방 안으로 부드러운 그림자를 던졌다.
주희가 눈을 떴다.
이불속은 아직 따뜻했고, 어제의 꿈이 머리맡에 남아 있었다.
거실로 나가보니, 주주는 꼬리를 살랑거리며 아이를 기다렸다는 듯이 아이에게로 와서 꼬리를 흔들었다.
주희는 소리 내어 웃었다. 어제 꿈같은 하루가 이어졌다.
아침시간은 늘 분주하다.
“주주야, 나 학교 갔다 올게.”
아이가 신발을 신자 주주는 앞발로 아이 운동화를 살짝 눌렀다.
그 눈빛이 마치 조금만 더 놀자 하고 말하는 것 같았다.
문간방 문이 열리고, 할머니가 나오셨다. 늘 먼저 나와 계셨는데 오늘은 아이가 먼저 나와
주주와 놀고 있었다.
아이는 대문 앞에서 잠깐 멈췄다. 마당 끝 평상 밑, 주주가 꼬리를 흔들고 있었다.
바람이 지붕의 감잎을 스치고, 수돗가에서 떨어진 물방울이 햇빛에 반짝였다.
김이 오르는 냄비 냄새, 이른 아침의 젖은 흙냄새, 그리고 아주 작게 들려오는 주주의 숨소리.
“주주야, 기다려. 나 금방 올게.” 할머니의 손을 잡고 골목길을 나섰다.
뒷골목에서 들려오는 달그락 소리 사이로 주주의 짧은 울음이 바람에 실려왔다.
지하철역 앞에 다다랐을 때, 할머니가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조용히 말씀하셨다.
"다녀오렴"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가슴 안쪽이 따뜻하게 간질거렸다.
오늘 하루, 주주의 눈빛이 마음속에서 반짝일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