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노트2-②] 화성 용주사 정조대왕과 조지훈의 ‘승무’
“과인은 사도세자의 아들이다”
조선 후기 새로운 천하를 예고했던 조선 22대 임금 정조대왕(1752~1800, 재위:1776~1800).
영화「역린」(2014)의 명대사로 유명해진 중용 23장을 곁에 두었고, 신하들에게도 마음속에 새기라고 당부했다고 한다.
“작은 일도 무시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
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하면 정성스럽게 된다.
정성스럽게 되면 겉으로 드러나고,
겉으로 드러나면 이내 밝아진다.
밝아지면 남을 감동시키고,
남을 감동시키면 이내 변하게 되고,
변하면 생육된다.
그러니 오직 세상에서 지극히 정성을 다하는 사람만이 나와 세상을 변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其次致曲,曲能有誠,誠則形,形則著,著則明,明則動,動則變,變則化,唯天下至誠爲能化.)
정조대왕이 아버지 사도세자를 위해 지은 절이 화성 용주사다.
부모은중경(父母恩重經)설법을 듣고 감동한 정조대왕이 부친의 넋을 위로하고 사도세자 능을 수호하기 위해 절을 세웠다는데, 낙성식날 정조의 꿈에 ‘여의주를 물고 승천하는 용’이 나타나 절 이름을 용주사로 지었다.
효심이 묻어나는 절집에 궁궐의 모습도 보인다.
일주문은 아예 없고, 사천왕문도 건립당시에는 없었다고 한다. 대신 홍살문이 서 있다. 대궐이나 관아, 능이나 묘의 정면에 세우는 붉은 칠을 한 문이 서 있는 건 사도세자의 위패를 모신 사찰이라는 의미를 내세운 거다.
홍살문을 지나면 만나는 문 3개인 ‘삼문’도 궁궐양식이고, 대웅전으로 가는 길목에 자리 잡은 천보루도 궁궐 양식이다. 누각의 나무 기둥을 돌기둥이 떠받치고 있는데 경회루처럼 궁궐에서나 볼 수 있는 양식이란다.
천보루(天保樓)라는 이름도 왕권을 상징한다.
시경에 나오는 ‘하늘이 보호한다’라는 시 ‘천보’에서 따온 것이다. 시 ‘천보’는 “신하가 아름다움을 군주에게 잘 돌림으로써 보답한다”는 뜻을 품고 있다고 한다.
특히 “사철마다 제사를 올려 선공과 선왕께 드리시니, 선군께서 후대 왕에게 만수무강 복을 내리시네”라는 구절이 의미심장하다. 사도세자에 대한 천륜의 정을 품고 있는 정조대왕이 신하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천보루를 통해 은근히 보여줬다는 해석이 가능하지 않을까?
정조 대왕의 친필 글씨인 대웅보전 현판도 볼거리이지만 대웅보전에 자리한 세 분의 부처님 뒤에 걸린 그림인 ‘삼세불후불탱화’는 매우 독특하다.
세로 440㎝, 가로 350㎝의 비단에 그린 거대한 불화로 1790년 절의 창건과 함께 만들어졌다고 한다. 그런데 여느 탱화와는 다르다.
부처님 얼굴에 광대뼈가 나와 있고 콧날은 오뚝하다. 가사를 걸친 가슴 쪽은 단단하게 그려져 있다. 입 주변은 움직이는 듯 동적으로 보이고, 표정은 풍부하다. 적절한 명암 덕분인지 부처님은 물론 주변 인물들도 입체적으로 보인다.
단원 김홍도가 궁중화원과 화승 등 25명과 함께 그린 것으로 “조선 최초로 원근법과 명암이 들어간 그림”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유교적 이념과 불교적 이념, 궁중화원 양식과 산문화승 양식, 고유한 전통화법과 외래적 서양화법 같은 다양한 이원적 요소들이 창조적으로 융합돼 이룩된 기념비적 걸작으로서 조선 후기의 회화 발달과 혁신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대표적 작품의 하나이다.”
<강관식,「용주사 ‘삼세불회도’의 축원문 해석과 제작시기 추정」,『미술자료』, No.96, 2019.초록>
정조대왕은 “그림에 관한 일이면 모두 홍도에게 주관하게 했다.”고 하는데 ‘팀 김홍도’의 걸작에 대한 흥미로운 해석이 있다. 부처님 얼굴이 누굴 닮았다는 거다.
“불보살 및 그 권속들의 얼굴 표현이 바로 단원풍의 얼굴 모습들이다. 길쭉할 정도로 긴 윤곽에 우리 얼굴치고는 코가 너무 크다고 할 만큼 우뚝 솟은 콧날을 가진 청수한 용모가 그것인데, 이 얼굴 모습은 아마 단원 스스로의 용모이었으리라 생각된다.
그리고 유연하고 날렵하게 젖혀지는 손목의 표현이나 그에 비해 무미하다고 할 만큼 아무 변화 없이 미끈하게 처리하는 팔뚝 표현도 단원만이 가지는 인체표현의 특징이며 세장한 손가락과 고운 발 맵시 역시 단원 인물화에서 보이는 품위 있는 표현법이다.” <최완수,『명찰순례①』,대원사,1994,p.320>
정조의 효심과 '김홍도의 얼굴' 그리고 조선 후기 혁신을 상징하는 최고의 불화를 품고 있는 용주사.
한국 문학사의 또 다른 걸작도 탄생시켰다.
시인 조지훈(1920~1968)이 약관의 나이에 지은 시「승무(僧舞)」가 잉태된 곳이다.
“내가 참 승무를 보기는 열아홉 살 적 가을이다. 그 가을 어느 날 용주사…그 밤 나의 정신은 온전한 예술 정서에 싸여 승무 속에 용입되고 말았다. 재(齋)가 파한 다음에는 밤늦게까지 절 뒷마당 감나무 아래서 넋 없이 서 있는 나를 깨닫지 못하였다.
…승무를 비로소 종이 위에 올리게 된 것은 내 스무살 되던 해의 첫여름의 일이다. 미술전람회에 갔다가 김은호의 승무도 앞에 두 시간을 서 있은 보람으로 비로소 무려 7,8매의 스케치를 가질 수 있었다.
…또 다시 몇 달이 지난 그해 10월 구왕궁 아악부에서 <영산회상>의 한 자락을 듣고 난 다음날이었다. 몇 개의 플랜을 세우게 되었으니 시를 이루는 골자가 되는 것이다.…사흘 동안 추고에 추고를 거듭하여…전편 15행의 시 하나를 이루었다.
…이렇게 구상한 지 열 한 달, 집필한 지 일곱 달 만에 겨우 이루어졌다는 이야기로써 나의 <승무僧舞>의 비밀을 끝났다.” <조지훈,『詩의 원리』,나남,1996,pp.184~187>
「얇은 紗(사)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파르라니 깎은 머리 薄紗(박사) 고깔에 감추오고
두 볼에 흐르는 빛이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
빈 臺(대)에 黃燭(황촉)불이 말없이 녹는 밤에
오동잎 잎새마다 달이 지는데
소매는 길어서 하늘은 넓고
돌아설듯 날아가며 사뿐히 접어 올린 외씨보선이여
까만 눈동자 살포시 들어
먼 하늘 한 개 별빛에 모도우고
복사꽃 고운 뺨에 아롱질 듯 두 방울이야
세사에 시달려도 煩惱(번뇌)는 별빛이라
휘어져 감기우고 다시 접어 뻗는 손이
깊은 마음 속 거룩한 合掌(합장)인 양하고
이밤사 귀또리도 지새는 三更(삼경)인데
얇은 紗(사)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조지훈,「승무(僧舞)」,1939>
15행 225개의 글자를 사용했을 뿐인데, 읽는 이의 눈 앞에 뭐라 형용할 수 없는 신비로운 영상을 펼쳐내는 시인의 언어 연금술은 그저 경이롭고 또 경외스럽다.
“정적인 순간에서 동적인 순간으로의 전환을 포착한 예민한 감각과 뛰어난 언어의 조탁은 지훈의 시적 특징을 이 한 편에서 다 엿볼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고깔을 나비로 비유해 마치 꿈꾸는 듯한 장면을 연출하고 있는 이 시는 초월적인 세계를 지향하던 젊은 지훈의 고뇌와 열정이 담겨 있다.”
<최동호,『조지훈 시와 현대 불교시』, 고려대학교출판문화원, 2022, p.77> ///TO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