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휴대폰에 매화 담고…효심 새기고

[순례노트2-①]구례 화엄사 홍매화와 4사자 삼층석탑

by 동욱 Oct 25. 2024

3월 화엄사의 슈퍼스타는 부처님이 아니다. 각황전과 원통전 사이에 서 있는 홍매화 나무다.      

구례 화엄사 각황전 처마와 홍매화

붉은 듯 검은 듯 고운 홍매화는 “세월에 관계없이 300년을 피고 지었듯이, 인간에 어리석음을 꾸짖듯이 24년 올해도 어김없이 제 시간에 피고 말았다”고 주지 스님은 표현한다.

구례 화엄사 홍매화 사이로 본 각황전

그래서 3월 화엄사는 ‘절간’ 같지가 않다. 흔히 사용하는 불교용어 그대로 ‘야단법석’이다. 


손에 든 휴대폰으로, 또 화질 좋은 카메라로 저마다의 각도를 잡고 홍매화를 담으려는 사람들로 한바탕 축제가 펼쳐진다.

화엄사 홍매화 촬영 순례객들(출처:뉴시스•화엄사)

홍매화 피는 한 달 남짓 사진 콘테스트가 열리는 데 첫 해인 2021년 5만 명이 찾았다. 2022년에는 7만 명, 2023년엔 10만 명으로 늘더니 2024년에는 25만 5천명이 방문했다. 절을 찾은 순례객이 4년 만에 5배 넘게 증가한 것이다.      

제4회 홍매화 2024년 전문작가 수상작(출처:화엄사 홈페이지)

시상 분야에 전문작가 부문은 물론 휴대폰 촬영 사진 부문을 만든 게 주효한 것 같다. 홍매화 찍기가 순례객 사이에 일종의 놀이문화 혹은 밈처럼 퍼진 게 아닐까? 여기에 홍매화가 2024년 1월 국가유산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것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제4회 홍매화 2024년 휴대폰 사진 수상작(출처:화엄사 홈페이지)

300여년 전 각황전 중건 때 기념으로 심은 화엄매, 홍매화가 이렇게 잘 나갈 거라고 상상이나 했을까? 웅장한 규모를 자랑하는 각황전 입장에서는 주객이 바뀌었다고 서운해 하지 않을까?     

각황전 앞 석등에서 바라본 홍매화

각황전은 조선 숙종 때인 1699년부터 약 4년 동안 공사해 완공한 2층 48칸 건물로 “그 장엄함은 비할 데가 없다”고 화엄사는 자랑한다. 전각 내부에는 세 분의 부처님과 네 분의 보살이 자리를 잡고 있다.

구례 화엄사 각황전과 석등(출처:연합뉴스)

오죽하면 이름이 각황전일까?


부처님을 깨달은 왕이란 뜻과 임금님을 일깨워 중건했다는 뜻을 동시에 갖고 있다. 공주로 환생한 거지노파의 흥미로운 사연까지 담고 있어 결코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건물이다. 국보 67호다.      

구례 화엄사 각황사 앞 석등. 국보 12호(출처:국가유산청)

각황전 앞에 있는 석등도 웅장하다. 높이 6.4m, 한국에서 가장 큰 석등으로 국보 12호다. 석등은 흔히 부처님의 빛과 진리를 상징해 광명등이라고 한다. 장엄한 각황전과 웅장한 석등을 보고 있으면 부처님 말씀인 ‘자등명 법등명(自燈明 法燈明)’이 절로 떠오른다.


‘저마다 자기 자신을 등불로 삼고 의지하라. 또한 진리를 등불로 삼고 의지하라.’  

화엄사 각황전 앞 석등 부분해체 및 고불식 (23.5.10. 화엄사 홈페이지)

그런데 안타깝게도 국보 12호 석등은 표면이 떨어져 나가고 곳곳에 균열도 발견돼 2023년 5월부터 부분 해체해 보존 처리에 들어갔다. 2025년까지는 실물을 볼 수 없다.          

구례 화엄사 효대. 4사자 삼층석탑

각황전을 바라보고 왼쪽으로 돌아 계단을 올라가면 효대, 국보 35호 4사자 삼층석탑을 볼 수 있다.     


각 모퉁이 기둥에 네 마리의 사자가 입을 벌린 채 날카로운 이를 드러내고 서 있다. 네 마리 사자들이 보호하듯 에워싸고 있는 중앙엔 손을 합장한 존재가 우뚝 서 있다.

구례 화엄사 4사자 삼층석탑 중앙부

1층에는 사천왕상과 보살상 등이 새겨져 있는데 매우 정교하다. 불국사 다보탑과 쌍벽을 이루는 이형(異形)석탑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4사자 삼층 석탑 맞은편엔 오른쪽 무릎을 꿇은 채 손에는 찻잔을, 머리에는 장명등을 이고 공양을 올리는 석상이 있다.      

구례 화엄사 4사자 삼층석탑 맞은편 석등 (출처:국가유산포털)

4사자 석탑 안에 서 있는 존재가 누구인지, 맞은 편 석상은 누구인지 해석이 분분하다. 불교 학술적으로 이렇게 해석할 수 있단다.      


“탑을 머리에 이고 있는 형상이 아니라, 탑이 공중으로 솟아오른 형상처럼 보인다. …내면적 존재를 둘러싼 외면적 존재가 거둬지는 순간, 내면적 존재가 드러나는 순간으로 해석하면 어떨까 한다. 단지 그 탑이 공중으로 솟아오른 것을 표현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사자들이 이를 떠받치고 있는 것이고, 이를 통해 탑 내부에 있던 부처가 비로소 모습을 드러내게 된 것이다.”

<주수완,‘화엄사 4사자석탑 중심 존상의 도상문제’,법보신문,2015.7.27.>     

탑이 공중으로 솟아오르면서 그 안에 있던 부처님이 짠~하고 실제 모습을 나타냈고, 네 마리 사자가 솟아오른 탑을 떠받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게 맞다면 맞은 편 석상은 부처님께 공양 올리는 스님으로 해석할 수 있겠다.      


맞는 해석일지는 몰라도 순례객에게는 흥미를 잃어버리게 한다.      

이렇게 멋진 조형물인데 무언가 다른 신비로운 이야기가 숨어 있겠지? 화엄사 창건설화가 좋은 대답이다.     


화엄사를 창건한 인물은 인도에서 온 승려 연기조사라고 한다. 연기조사는 백제 성왕 때인 544년에 백제로 건너왔는데, 그때 어머니를 등에 업고 함께 왔다고 한다.      


불법을 전파하는 연기조사가 어머니를 극진히 모시는 것에 주민들이 크게 감동했고, 그 효심을 기리기 위해 화엄사에 효대(孝臺)를 마련하고 이 탑을 세웠다는 이야기이다.    

4사자 삼층석탑 중앙에 서있는 존재는 연기조사의 어머니이고, 맞은 편에서 차 공양을 올리는 연기조사의 지극한 효심을 형상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4사자 삼층 석탑은 통일신라시대에 세워졌는데, ‘효대’라는 단어는 고려 시대에 처음 등장했다고 한다. 또 효가 강조된 건 조선 유학자들의 의도가 투영됐다는 해석이 나오면서 역사학자들은 이 설에 그다지 신빙성을 두지 않는다고 한다.      


그렇다 하더라도 창건 설화가 더 매력적인 건 부인할 수 없다. 어머니께 차를 올리는 연기조사의  효심이 석탑의 아름다움과 어울려 울림을 주고 있다.

화엄사 견성전과 4사자 삼층석탑

천년 풍상을 겪은 4사자 삼층 석탑.     


2011년 정밀심사때 균열과 절단, 벌어짐 같은 구조적인 문제가 노출돼 2016년 해체되는 비운을 겪는다. 하지만 2018년부터 원래 석재를 재사용하고 과학적인 보존처리와 구조 보강이라는 작업을 거치면서  본 모습을 되찾았다.  

구례 화엄사 4사자 삼층석탑과 석등(출처:화엄사 홈페이지)

그리고 2021년 9월 높이 7.1m, 너비는 4.2m, 무게는 50톤의 모습으로 중생들 앞에 회향했다.  ///TOK///     

브런치 로그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