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뾰족한 기억의 파편과 그리움의 조각들이 반갑게 달려와 나를 찌릅니다. 나는 그냥 울기 그래서 핑계 대고 우는 습관이 있습니다. 그래서 산책을 나갑니다. 산책을 하면 울 핑곗거리가 많습니다.
눈 안에서 글썽거리는 이물감에 세상의 하단下段이 물결칩니다. 그 속에서 사람도 헤엄치고 자동차도 헤엄치고 가로수와 가로등도 바닷속 미역처럼 춤을 춥니다. 물바다로 변한 세상의 하단 속에 모든 것을 질식시키기 전에 내가 울어야 합니다.
산책을 하며 울 핑곗거리를 잘도 찾아냅니다. 아픈 감정을 참지 않고 일부러 울려는 똑똑한 계획입니다. 얼른 많이 슬퍼하고 이 감정 끝내버리자는 심산입니다. 나는 슬픔을 건강하게 대한다고 생각하였기에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웁니다.
강아지가 쩔뚝거리며 내 앞을 지나가서 웁니다. 뱃살이 없는 할아버지가 뱃심 없이 간신히 한걸음 한걸음 떼는 모습을 보며 울었고 벤치에 같이 앉게 된 할머니의 서글픈 사연을 듣고 울었고 새소리가 울음을 넘어 비명같이 들려서 울었고 어쩔 수 없이 낙엽을 밟는데 그 소리가 잔인해서 울었습니다. 이런 식으로 갖은 핑계를 대며 울었는데 슬픔의 초반인지라 마음이 쉬이 나아지지 않고 계속 아픈 상태 그대로 머물러 있었습니다.
핑곗거리를 더 찾기로 합니다. 하늘이 파랗게 멍들어서 울었습니다. 노을이 빨갛게 부어올라서 울었습니다. 나무가 가려운 곳을 못 긁고 있어서 울었습니다. 곱게 빗은 머리칼을 바람이 함부로 헝클어서 울었습니다.
슬픔이 나를 잠식하기 전에 눈물을 멈춰야 하는 지점을 잘 알고 있습니다. 울 핑곗거리를 그만 찾고 산책을 멈추어야 하는 지점입니다. 수도꼭지 잠그듯 두 눈을 질근 감았는데 하필 그때 멀리서 들려오는 구급차 소리에 그만 또 눈물이 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