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지금 이 순간에 집중집중.

[D-351] 지금 나를 위해 해야 하는 것들

by Mooon

D-351. Sentence

지금 나를 위해 해야 하는 것들


IMG_2245.jpg @Kimyk10

오늘 하루를 돌아보며,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련의 모든 일들이 정말 나를 위한 것들인가?’라는 질문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누군가를 위해 하는 일처럼 보이지만, 결국 내가 내리는 선택과 판단은 언제나 내 기준에서 출발한다는 생각이 스쳤다. 좋든 나쁘든, 그 결과를 감당하는 것도 결국 나니까.


어젯밤은 묘하게 길었다. 풀어야 하는 관계적 숙제가 있었고,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했기에 마음을 쥐어짜듯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보니 자정을 조금 넘겨서야 집에 도착했다. 몸이 천근만근이었는데도, 오늘 안성 수업을 위해 도시락을 챙기는 일만큼은 빼먹지 않았다.


서울우유 그릭요거트에 섞어 먹을 그레놀라와 견과류들. 사과 한 개. 땅콩버터 한 숟가락. 좋아하지도 않지만 건강을 핑계로 챙기는 삶은 달걀 세 개. 며칠 전 사둔 먹물치즈빵 두 조각. 텀블러까지. 하나하나 챙길 때마다 ‘내가 이렇게까지 먹고살겠다고 챙기는 사람이었나?’ 싶었다. 도시락 가방이 노트북 가방보다 더 무겁다는 사실에 씁쓸한 웃음까지 났다.


안성 캠퍼스에 도착하자마자, 거의 90%를 해치웠다. 먹는 속도에 깜짝 놀라면서도, 동시에 보고서 수정하고 자료 만들고 최종보고에서 나온 의견 정리하고… 별 생각 없이 일을 처리하는 내 모습을 보고 ‘아, 이 템포로 사는 사람이었지 내가.’라는 짧은 자각이 스쳤다. 11시 30분 오전 수업이 시작되었고, 여느 때처럼 집중도가 좋았다. 조별 발표가 이어졌고, 학생들의 준비 과정 하나하나가 잘 보였다. 피드백을 주면서 나도 흐름에 자연스럽게 몰입됐다. 그런데 오후 수업은 달랐다. 늘 그렇듯 조금 다운된 분위기였고 집중도도 떨어져 있었다.


첫 번째 조가 발표를 시작했는데, 피드백 과정에서 뭔가가 꼬였다. 내가 한 코멘트를 학생들이 이해하지 못했고, 반박과 오해가 겹쳐 분위기가 순식간에 싸해졌다. 그 짧은 순간 동안 머릿속에는 하나의 질문만 맴돌았다. ‘이걸 어떻게든 돌려야 한다.’ 다른 조의 발표를 들으면서도 머릿속은 계속 첫 번째 조의 피드백으로 가 있었다. 쉬는 시간이 되자마자 그 조에게 다가갔다. 어떤 부분이 받아들여지지 않는지, 어디서 막히는지 다시 물었다. 다시 설명하고, 다른 예시로 풀어주고, 또 돌아와서 비틀어 설명하고… 그렇게 반복하는 과정에서 오히려 내가 하는 말도 훨씬 정교해졌다. 내 피드백이 명확해지는 순간, 학생들의 표정에서도 이해의 끄덕임이 조금씩 생겨났다.


조별 워크숍 시간이 이어졌고, 다시 진행 상황을 조별로 공유받으면서 각각의 작업 흐름을 함께 살폈다. 오전부터 정신없이 달려오면서도 이상하게 힘이 남아돌았다. 나는 수업 전에 학생들에게 물었다. “많이 어렵지?” 학생들이 어렵다고 말하자, 나는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다. “어려운 게 맞아. 잘 가고 있다는 증거야.


나는 늘 말한다. 이번 학기가 ‘할 만하다’는 생각이 들면 뭔가 잘못된 거라고. 쉬운 걸 배우러 이 먼 곳까지 와서 비싼 등록금을 내며 앉아 있는 게 아니니까. 버겁고, 힘들고, 머리가 터질 것 같은 그 감각이 사실은 이 시간이 가치 있다는 증거라고. 가끔은 그런 생각도 든다. 학생들은 모를 것이다. 내가 원래 기준으로 하면 지금의 과제를 절반만 시키고 있다는 걸. 누군가 정말 ‘선생님, 저 미치게 공부하고 싶어요’라고 말한다면, 나는 그 학생 붙잡고 끝까지 달릴 준비가 되어 있다. 정말로. 그만큼 나는 가르치는 일을 좋아한다.


그래서 ‘지금 나를 위해 해야 하는 것들’이 무엇인지 묻는다면, 사실 대단한 답은 없다. 기준을 세웠다면, 이 길이 맞다고 생각한다면, 그저 놓치지 않고 계속 달리는 것. 그게 지금 내게 주어진 역할이자, 내가 해야 하는 일이다. 그리고 그렇게 먹고 또 먹은 하루였다. 안성에서 도시락을 다 비우고도, 저녁에 서울에 도착하자마자 베트남 샐러드 한 그릇을 또 뚝딱. 먹어야 버티니까. 지금의 일은, 지금의 선택들은, 결국 나를 위해 해야 하는 것들이니까.



내 안의 한 줄

지금의 선택들이 결국 나를 만든다.


매일의 감정이, 나를 설명할 언어가 된다.

keyword
이전 21화세계 최고의 대학은 침대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