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왔지만
난 오늘이 몇 월 며칠인지 모른다. 햇볕의 뜨거움 정도와 불어오는 바람의 세기, 땅의 기운, 수풀의 냄새로 계절의 시계, 사계절을 느낄 뿐이다.
해가 떠오른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벌써 열기가 느껴진다.
거실에 배를 깔고 아빠를 유심히 살폈다. 아빠는 외출하려는지 분주해 보였다.
어디를 가려는지 검정 배낭을 메고 껌을 주며 내게 인사했다.
“자두야, 아빠 다녀올게. 잘 있어. 좀 있으면 엄마 올 거야.”
아빠의 외출보다 ‘엄마’라는 단어에 귀가 솔깃했다. 잊고 지내던 엄마가 스치듯 떠올랐다.
껌을 급하게 먹어 치우고 창가 베란다로 가보았다. 아빠를 찾으러 안방과 거실을 기웃거렸다. 아빠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침대 위엔 아빠가 벗어놓은 옷가지만 덩그러니 널브러져 있었다.
아빠 체취를 느끼고 싶어 침대 위로 올라갔다. 배를 깔고 앞발에 턱을 고이고 눈을 감았다.
멀리서 둔탁한 소리가 들려 살짝 눈을 떠보았지만 아무런 인기척이 없다.
몸이 노곤해 눈꺼풀이 내려앉았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베란다 창가에서 무슨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귀를 쫑긋 세우고 귀를 활짝 열었다.
희미한 소리가 들렸다가 끊기길 반복했다. 슬그머니 일어나 조심스럽게 소리의 현장으로 갔다. 울타리 너머로 누군가 서 있었다. 창문이 닫혀있어 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았지만 왠지 나를 부르는 것 같았다.
덩굴식물에 가려 형체를 알아보기 어려웠지만 엄마인 것 같았다. 혀는 날름대고 꼬리가 흔들렸다.
입구를 향해 몸을 틀면서 나오라는 몸짓을 보니 엄마인 게 분명했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사인이 떨어지기 무섭게 현관문으로 달려갔다. 급한 마음에 두 앞발로 '박박' 문을 긁고 있을 때 ‘삐삐삐삐’ 소리와 함께 엄마가 들어왔다. 심장이 쿵쾅거리고 열이 오르며 오줌이 '찔끔찔끔'나왔다.
그렇게 기다리던 엄마가 내게로 왔다.
엄마랑 즐겁게 오후 시간을 보냈다. 아쉬움 없이 산책을 하고 얇고 부들부들한 고기도 먹었다.
그런데 어두워지니 아빠가 기다려졌다. 밤이 깊도록 아빠는 오지 않았다. 엄마는 현관에 작은 실내등을 켜놓은 채 누워서 TV 리모컨을 돌렸다.
살며시 일어나 거실로 나가 현관문 앞에 배를 깔았다. 멀리서 지나가는 자동차 소리와 냥이 울음소리만 간간이 들렸다. 베란다 창가로 가 열린 창문 틈 사이로 밖을 바라보았다. 캄캄한 어둠만이 세상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다시 현관문 앞으로 갔다. 납작 엎드려 귀에 안테나를 세우고 바깥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휴~우' 나도 모르게 한숨이 새어 나왔다.
도대체 아빠는 어딜 간 건지, 왜 오지 않는 걸까.
이런 일이 한 번도 없었는데. 나로선 알 길이 없어 답답하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기다리는 것뿐.
햇살이 밝아왔지만, 아빠는 기다려도 끝끝내 오지 않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