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들레 홀씨처럼 팔랑거렸다

털북숭이는 온 데 간 데 없고

by 명랑 숙영

“11시까지 데리고 오세요.”

자두 미용 예약을 잡았다. 미루고 미루었지만, 더는 견딜 수 없었다. 테이블과 책 위, 거실 바닥, 침대 밑, 반찬 그릇 속, 심지어 내 코와 눈 속까지 어디든 자두 털이 없는 곳이 없었다. 날리던 털은 다시 내려앉았고 이리저리 도망 다니다 어딘가에 자리를 잡았다. 그야말로 '털 천국'이었다.


미용사가 자두는 '이중 모'인 데다 털이 억세서 완전히 밀어야 한다고 했다. 자기 몸에 손대는걸 극도로 싫어하는 자두에게 '털을 다 내어놓으라'라고 하는 건 너무 가혹하다. 하지만 가족과 함께 집안에서 살려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자두는 산책이 끝나면 일어날 일을 알지 못하고 영역표시에 열을 올렸다. 전날 고구마를 먹어서 똥도 시원하게 두 번이나 쌌다. 들고 있던 배변 봉투가 묵직했다. 내 마음만큼이나.

늘 다니던 산책길을 벗어나 미용실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자두는 가지 않고 물끄러미 나를 쳐다보았다. ‘엄마, 왜 이리 가?’라고 묻는 듯했다. 목줄을 당겼지만 버티고 서서 꼼짝하지 않았다. 신호등 없는 혼잡한 건널목을 지나 미용실로 갔다. 자두는 낌새를 체고 안으로 들어가지 않으려고 했다. 힘으로 버티는 자두를 질질 끌어서 들어갔다.


몸무게를 재고, 입마개를 채워 미용실 안으로 들여보냈다. 자두가 어쩌고 있나 궁금해서 창문너머로 미용실 안을 살폈다. 미용 중이거나 마무리하는 개들이 보였다. 자두는 문 앞 쪽에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모든 것을 다 내려놓은 사람처럼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 자두를 두고 오려니 발이 떨어지질 않았다.


미용이 끝났다는 연락이 오기만 기다렸다. 집안일을 하면서도 온통 신경이 거기에 쏠렸다. 약속했던 1시간 30분이 지나도 핸드폰은 울리지 않았다. 그대로 있을 수 없어 서둘러 미용실로 향했다. 두리번거리며 자두를 찾았다. 자두는 미용실 안에 있지 않고 털 말리는 통 속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온몸에 털이 깎인 채 민둥산이 되어있었다. 미안함과 안쓰러움이 밀려왔다.

“자두야, 엄마 왔어. 이제 집에 가자. 우리 자두, 고생 많았어.”

자두는 내 소리를 듣고 달려들었다. 꼬리 끝부분에만 남긴 털이 민들레 홀씨처럼 팔랑거렸다.


미용사는 자두가 바닥에 납작 엎드린 채 힘을 주어 미용하기가 어려웠다고 했다. 으르렁거리며 공격하려고 해서 잠시 쉬었다고 했다. 그래서 약속시간보다 늦었나 보다. 얼마나 힘들고 무서웠을까. 털을 민 자두의 모습은 언제 봐도 생경하다. 털북숭이 자두는 온데간데없고 벌거숭이 자두가 낑낑대며 호들갑을 떤다. 몸에 맞지 않게 커다란 두 귀는 쫑긋, 짧은 다리에 어색하게 긴 허리, 꼭 외계생명체 같다. 꼬리털은 "나 원래는 털 많은 개예요'라고 항변하며 마지막 자존심을 지키려는 몸부림 같았다.


자두가 ‘털 없음’에 적응하려면 최소한 일주일은 걸릴 거다. 그 기간은 특별히 자두에게 신경을 쓰고 배려한다. 벌거벗은 자신이 이상하고 허전해 앞발과 사타구니, 아랫도리를 무수히 핥을 것이다. 자신이 낯설어 예민하고 불안해할 것이다. 우리의 편의 때문에 말 못 하는 자두에게 이루 말할 수 없는 스트레스를 줘 죄책감이 든다.

‘자두야, 일주일만 함께 참고 견디자. 엄마가 잘해줄게.'


자두야, 아침 산책 가자.

자두야, 점심 산책 가자.

자두야, 저녁 산책 가자.

하루 세 번 산책

아니 아니, 그걸로는 부족하지.


자두야, 밤 산책 가자.

그냥 하루 종일 산책하며 살자.

수, 토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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